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54) 열쇠 - 이송희

이광 승인 2022.10.26 09:12 | 최종 수정 2022.10.28 10:41 의견 0

열쇠
                이송희

 

너는 이미 떠났을까

단단하게 잠긴 안쪽

지상의 암호들도

서성이다 돌아갔나

비틀면 열리던 사랑

등 돌린 채 말이 없다

 

이송희 시인의 <열쇠>를 읽는다. 시를 감상하는 방식을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과 대면하여 느낌이 오는 대로 수용하는 공감의 방식이다. 또 하나는 대본을 받은 배우처럼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작품 내면으로 몰입하여 감정이입이 이루어진 경우이다. 후자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본다.

초장의 ‘너’를 정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화자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상대로 파악한다. ‘단단하게 잠긴 안쪽’은 ‘너’의 부재를 뜻하는 건 아니다. ‘너’라 불리는 그는 현재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이 이미 떠났다고 단정하기도 아직 이르다. 일시적인 단절을 꾀하며 다시 돌아올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를 풀어내기 위한 ‘지상의 암호들도/서성이다 돌아갔’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도록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숙제로 주어진다.

종장 ‘비틀면 열리던 사랑’에서 서정자아와 ‘너’의 관계가 드러나며 ‘등 돌린 채 말이 없’는 연유마저 짐작케 한다. ‘비틀면’이라는 행위는 열쇠를 넣고 돌리는 단순한 동작만 말하지 않는다. 그 한 마디에 일방적인 물리력 행사가 연상되지 않은가. 서정자아가 자신의 태도에서 문제점을 찾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이 동일한 필자의 졸시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 결국 사람이 열쇠인 것이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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