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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숙이 새로 이사한 인호의 집을 찾느라 근처 골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침 또래들과 놀고 있던 인호가 한복 차림의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모!”
“아이구, 이기 누고? 우리 인호 아이가. 그새 마이 컸네!”
경숙은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반갑게 웃었다. 인호 역시 입가에 미소를 날리며 이모를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그녀의 보따리를 제가 들겠다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보따리 속엔 틀림없이 맛있는 과자가 들어 있지 싶었다. 이모가 부산에 오거나 인호가 엄마 따라 대구의 이모집에 갔을 때도 이모는 그에게 미리 준비한 과자를 내놓곤 했다.
“우리 인호 진짜 마이 컸구나. 이모 짐 들어줄 생각도 다 하고. 이건 이모가 들 텐께 인호는 집꺼지 앞장서거래이.”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였다. 집은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인호를 따라 들어선 집안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자 경숙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입구에서 바로 부엌이 연결되고 열려 있는 미닫이문을 통해 들여다본 방은 가운데를 칸 질러 두 개로 나눈 구조임을 알 수 있었다. 천장 한 가장자리에서 비가 새어 벽을 타고 흘러내린 흔적이 보였다. 안쓰러운 얼굴을 다 못 지운 경숙을 덕희는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언니, 잘 찾아오신네예. 마중 나갈 준비 막 하던 참인데.”
“저 밑에서 인호를 용케 만났다 아이가, 준호는?”
“인호가 같이 안 놀아준다고 막 떼를 써쌌더니 좀 전에 잠든 모양이네예.”
“음, 인호가 동생 잘 데꼬 놀지 와 그랬노?”
이모가 웃으면서 바라보는 동안 인호도 실실 웃기만 했다. 동생을 데리고 꽤나 먼 곳으로 동전이나 빈병 따위를 주우러 다닐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은 굳이 길바닥을 훑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모가 들고 온 보따리 속엔 며칠 먹고도 남을 과자가 들어 있음을 인호는 확신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모가 보따리를 풀었다.
“인호야, 준호 깨거든 사이좋게 노나 먹거래이.”
이모가 꺼내놓은 것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초콜릿과 비스킷이었다. 인호는 보물을 얻은 것 같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초콜릿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소중한 것을 아끼는 심정으로 먹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놓은 다음 이모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와 본께 내 혼자 반듯한 집에서 사는 기 맘이 안 편타. 너거 식구들 대구로 와 같이 살믄 딱 좋을 낀데.”
“이서방은 없는 사람 살기는 부산이 좋다카네예. 언니, 양장점만 자리 잡으믄 다시 아랫동네로 돌아갈 낀께 너무 걱정 마이소.”
그러면서 덕희는 양장점 할 만한 빈 점포를 봐둔 게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경숙은 동생의 손재주라면 양장점을 능히 해나갈 것으로 판단했다. 자신도 소일 삼아 집에서 한복 삯바느질을 해본다며 벌린 일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일감이 심심찮게 들어왔다. 어떨 때는 주문이 밀려 밤늦도록 일을 해야 했다. 그녀가 보기엔 동생은 양장 쪽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고 수요도 그 쪽이 훨씬 많으니 잘만 하면 벌이가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덕희는 잠에서 깬 준호를 데리고 언니와 함께 아랫동네로 내려와 자신이 점찍어둔 가게를 보여주었다. 큰길에서는 좀 떨어졌지만 사람들 왕래는 있는 편이라 경숙도 적당하다고 여겼다. 처음부터 세가 비싼 대로변은 부담도 되거니와 아이들이 어려 집에서 먼 거리도 문제였다. 경숙이 주고 간 돈으로 덕희는 양장점 개업 준비를 서둘렀다. 개업을 하루 앞두고 대구에서 다시 경숙이 와서 준호를 데리고 갔다. 인호는 그 해 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아직 어린 준호는 누가 돌보아주어야 했다. 경숙은 덕희의 양장점이 안정될 때까지 준호를 맡기로 했다. 늘 적적하던 그녀는 친자식 같은 조카를 돌보는 역할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며칠 가지 못했다. 준호가 밤이면 엄마를 찾아 하도 울고 보채는 바람에 도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준호를 달래고 재우느라 밤잠을 설친 경숙의 얼굴이 그새 핼쑥해져 있었다.
덕희는 이정식의 출근과 인호의 등교를 챙긴 다음 준호를 데리고 나와 양장점 문을 열었다. 인호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엄마의 양장점으로 갔다. 그리고 준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인호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양장점 주변을 눈에 익히던 준호가 길 잃은 사건도 그 무렵에 일어났다. 근처에 인호의 학교가 있을 줄 알고 찾아 나섰는데 둘러봐도 학교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인호는 준호에게 학교 운동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다. 미끄럼틀도 있고 시소도 있다고 형이 자랑한 운동장을 보고 싶어서 무작정 나선 걸음이었다. 지나가던 군인이 학교 이름은 대지 않고 그냥 ‘운동장! 운동장!’ 하고 울면서 헤매는 아이를 공설운동장 정문 앞까지 안고 갔다. 울음을 멈추고 안겨 있던 준호는 아주 낯선 곳에 자신이 놓여 있음을 알고 더 큰 울음을 터뜨렸다. 젊은 군인이 오도 가도 못하고 난감해하고 있을 때 이정식의 표현대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침 두부 배달을 하고 지나가던 이정식이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정식은 군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준호를 자전거에 태웠다.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준호를 앉히고 두 손은 핸들 중간을 잡게 했다. 아버지를 보자 울음을 그친 준호는 자전거 위에서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학교 운동장 대신 뜻밖에 누리는 자전거 체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페달을 밟을 때마다 움직이는 허벅지의 근력이 그의 엉덩이로 연이어 전해졌다. 이정식은 곧장 양장점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아니, 뭐가 그리 바쁜 기라? 아 없어진 것도 모르고.”
이정식이 양장점 문을 열었을 땐 손님은 없고 덕희 혼자 재봉틀 앞에 앉아 페달을 밟고 있었다. 덕희는 볼멘소리로 갑작스레 나타난 이정식과 그의 손에 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준호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정식이 준호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의 심기는 차츰 누그러졌다. 그리고 그간 염두에 두고 있던 얘기를 꺼낼 생각이 들었을 땐 어느새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올 한해만 이리 고생하제이. 내 기회 봐서 운전면허 딸 생각이야. 요새 부두 화물이 늘어 차만 갖다 대믄 짐은 문제 없다카네. 돈 쫌 모이거든 양장점 보증금 빼서라도 트럭 한번 장만해보자. 당신 애 마니 쓰는 거 안데이. 다 내가 몸을 웅크리고 있어서인 기라. 조금만 참자,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안 카더나. 우리 식구 포실하게 살날이 머잖아 올 끼잉께.”
양장점은 돈이 모일 만큼 장사가 잘되진 않았다. 주변 손님들이 대부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라 새 옷을 해 입는 경우가 드물었다. 옷을 수선하거나 외국에서 건너온 구제품 의복을 줄여주는 일 등 품값이 박한 일감이 대부분이었다. 그녀가 솜씨를 한껏 발휘하여 만든 쇼 윈도우의 멋진 원피스는 지나가는 여자들의 눈길을 자주 붙잡았지만 발길을 끌어들이진 못했다. 선뜻 들어왔다가도 만만찮은 가격에 물러서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햇수로 삼 년째 접어들어도 양장점 수입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정식은 양장점을 내놓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때가 아닌 듯했다. 트럭 한 대 장만하는 게 양장점 가게보증금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좀 더 참고 견디기로 했다. 그래도 둘이 벌기에 조금씩 저축도 가능하여 통장에 돈이 불어나는 재미는 있었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두부공장 일을 계속했다. 더운 여름철 넘기기가 고역이었다. 물에 퉁퉁 불은 이정식의 손등은 두부 빛을 띠고 있었다. 덕희는 남편의 손이 보기 딱했지만 그녀 역시 양장점 일하랴 애들 키우며 살림하랴 늘 빠듯한 생활이었다.
이듬해 인호는 국민학교 4학년이 되고, 준호가 신입생으로 입학을 한 얼마 후였다. 밖에서 누굴 만나 술을 했는지 이정식은 거나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와 가까운 아랫동네로 이사할 계획도 미뤄가며 돈을 모았건만 자신이 꿈꾸는 사업을 벌이기엔 여전히 부족한 밑천이었다. 수년 사이 부산항 물동량이 크게 늘어날 거라는 예전 검수회사 동료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기상 움직여야 할 때가 왔음을 이정식 또한 꿰뚫어 보고 있었다. 본인과 가족의 앞날을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는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지만 덕희와 부딪히기로 했다.
“암만 생각해도 이러고 있단 죽도 밥도 안 되겠어. 이왕 운수업을 할라 마음 묵었으믄 하루라도 빨리 하는 기 맞다 싶데이. 여러 가지 다 따지봐도 지금이 딱 사업 시작할 적기인 기라. 이런 말 할라카이 뭐하지만 당신, 언니한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손 벌리믄 안되겠나? 돈은 버는 대로 꼬옥 갚을 끼다 하고......”
덕희는 남편의 퉁퉁 불은 손을 보며 생각에 잠기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도 그런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이왕 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정식은 자신의 결연한 의지에 대한 그녀의 말없는 동의를 확인했다.
“내 맘 알아줘서 고맙데이.”
두부공장을 그만 두기로 하고 이정식은 운전면허 시험 준비에 임했다. 그는 휴일 오후 인호와 준호를 데리고 구덕산 저수지로 갔다. 전에도 몇 번 올라온 적이 있었지만 인호는 늘 보아오던 물빛과는 다른 저수지의 수면 속으로 눈을 푹 빠뜨렸다. 잔잔하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저수지의 그윽한 물빛을 보고 있으면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한 경외심이 일었다.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기운이 저수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산 아래 도시의 거리를 내려다보자 전차가 다니는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이정식이 손을 들어 왼편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너머가 너거들이 태어난 영주동 아이가. 저기서 대신동이 살기 좋은 동네라 해서 이리로 온 긴데...... 인자 아부지 돈 마이 벌믄 좋은 집으로 이사 갈 끼다. 너거 학교 근처 동네로 가제이.”
덕희는 대구의 언니를 찾아갔다. 경숙은 짓고 있는 한복의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덕희가 생각하기엔 집에서 하는 언니의 한복 일이 자신의 양장점보다 벌이가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경숙은 집 근처에 성당이 새로 지어져 그곳을 다니면서 자신이 한복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성당 교우들과 이웃에서 간혹 주는 일이 전부였는데 알음알음으로 손님도 소개하고 일도 돕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안나라고 하는 같은 성당 교우였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문을 받아오면서 일이 부쩍 늘어났다고 했다. 그녀도 한복 바느질을 익히길 원해 손이 필요할 때마다 경숙은 안나를 불러 일을 가르치며 함께했다.
“언니. 우리 양장점도 시간이 가믄 손님이 조금씩 늘 줄 알았는데 내나 거기서 거깁니더. 아랫길 부자 동네 사람들한텐 우리 양장점이 눈에 안 차고, 윗동네 사람들한텐 여전히 그림의 떡이고.”
“우짜겠노, 나도 그랄 끼란 생각은 미처 몬했는데. 제부는 일 그만 둔다꼬?”
“운전면허 준비하고 있어예. 건데 고걸로 취직할 생각은 안하고 사업을 하겠다카이, 우째야 좋을지 모르겠심더. 예전에 해본 경험이 있으이 자신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나도 이서방이 자기사업 하믄 잘할 끼란 생각은 든데이.”
경숙은 동생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다는 듯 그녀가 말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었다.
“차를 샀으믄 하제?”
엄마나 다름없는 언니이긴 하지만 손 벌리는 입장이 무안하여 덕희는 바로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뒤를 잇는 경숙의 제안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나도 생각을 몇 번이나 해본 긴데 우리 이라믄 어떠캤노. 차 살 돈은 내가 마련해보꾸마. 양장점은 당장 처분하지 말고, 제부 사업 돼가는 거 지키보다가 나중에 이때다 싶으믄 내논는 걸로 하고. 그 대신 말이데이, 인호는 당분간 내가 키웠으믄 하는데...... 양자로 달란 소리는 아이다.”
경숙은 동생의 표정을 살펴가며 자신의 의중을 피력했다. 그녀는 한복 바느질로 생활비 충당이 가능하여 남편이 남긴 재산을 축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통장엔 부산의 집과 사이다 공장을 넘기면서 받은 돈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 남편과 대구로 온 후 그의 병구완을 위해 돈을 찾아 썼고, 그 다음으론 동생네를 도울 일이 생겨 꺼내 썼을 뿐 그녀 자신의 호사를 위한 지출은 철저히 삼갔다. 하나 뿐인 동생을 도우는 일이라면 저승의 남편도 기꺼이 승낙하리라 믿었다. 그녀는 남편의 제사뿐 아니라 시부모의 기일도 챙겼다. 시부모 제사를 모실 땐 이국땅 어딘가에 시숙들이 살아계신다면 제사를 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정 부모는 맏딸인 자신이 아니면 제사 지내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막막해지곤 했다. 그녀는 당시 학살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사망이 추정되는 달의 초하룻날을 기일로 하여 부모의 제사를 지냈다. 또 하나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자식이 없어 제사가 대를 잇지 못하고 끊긴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호와 함께 살면 자신이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인호가 어른이 되어 그 제사를 물려받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게다가 그녀는 정을 쏟아주고 싶은 누군가가 간절할 만큼 외로울 때도 있었다.
언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덕희의 마음도 무거웠다. 언니가 부모님 제사를 모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제사의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하는 걸 보면 역시 맏이는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양자로 달라는 건 아니라 했지만 제사를 물려주겠다는 건 양자로 삼겠다는 뜻이 담긴 발상이었다. 그녀는 부산으로 돌아오는 동안 이 일을 남편과 어떤 식으로 상의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야 했다. 언니의 제안을 무시하고 돈만 부탁할 순 없고, 그렇다고 없었던 이야기로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덕희는 아무리 언니라지만 자식을 보낸다는 게 온당한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고향에서 자식이 없는 형님을 위해 동생 부부가 아들을 낳자마자 보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길러온 제 자식을 품에서 떼어놓고 마음 편할 어미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고 나서야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에선 세 부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호와 준호는 종일 보이지 않던 엄마가 나타나자 평소보다 더 반갑게 매달렸다. 이정식은 그녀의 얼굴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색을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의 의사가 어땠는지 듣고 싶은 그에게 덕희는 다소 쌀쌀맞게 나중에 얘기하자며 말을 딱 끊어버렸다.
아이들이 다 잠든 밤 덕희는 언니의 제안을 이정식에게 전했다. 자신은 도무지 답을 내지 못할 것 같은 난제를 남편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않던 이정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양자로 달라는 건 아이란 말이제. 호적을 안 옮긴다믄 처형 원하는 대로 인호를 보내자. 엄마나 다름없는 이모 아이가.”
아들을 보내는 것으로 너무 쉽게 결정을 내리는 남편의 얼굴을 덕희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날 밤 그녀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건 이정식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식은 바람 좀 쐬러 나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밤하늘에서 북두칠성 자리를 보며 북극성을 찾았다. 그가 어렸을 때 타지를 떠돌다가 잠깐 와 쉬고 있던 아버지한테서 전해들은 유일한 지식이었다. 북극성이 나그네의 밤길에 나침반 구실을 하듯 그에겐 정작 있어야 할 때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부모가 옆에 없었다. 그는 장차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곁을 지켜줄 것이란 다짐을 굳게 하곤 했다. 그랬던 그가 제 자식을 처형에게 보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처지가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는 자신더러 잘 듣고 명심하라는 듯 또박또박 혼잣말을 남겼다.
“참아야지. 암, 참고 기다렸다 삼년, 삼년 후엔 데려오는 기다.”
◇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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