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미훈련 유예·'CVID→FFVD' 사용 등에 北 꺼낼 카드는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폐기·영변 핵시설 가동중단·감시단 수용 등 가능성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방북하면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비핵화 논의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우선 이전 두 차례 당일치기 방북했던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는 평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정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백화원영빈관에서 머물 것으로 보이며, 이날 저녁 만찬을 겸한 회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준비 주역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KMC) 센터장, 판문점 실무회담 멤버인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의 한반도 문제 담당 핵심 당국자들을 대부분 동행시킨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로 미뤄볼 때 미국 측은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합의사항 전반에 대한 후속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따라서 폼페이오 장관 일행은 평양 도착후 먼저 북한 카운터파트와 협상하고 나서 김정은 위원장 면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1인 체제'인 북한의 특성상 모든 사업에서 김 위원장의 결심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적극적인 비핵화를 통한 북미관계 개선 의지에도 불구하고 노동당과 외무성 관료들이 기존의 '관성'대로 움직이고 있어 북미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 합의 사항 이행이 지체된다는 해석도 있다. 그만큼 김 위원장과 면담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협상 카운터파트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전날 남북통일 농구 참석차 방북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환담한 자리에서 방북하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6일 만날 일정이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 실무협상에선 비핵화 조치와 대북체제안전보장, 그리고 6·25전쟁 미군 유해 송환 문제 등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 사안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폼페이오 장관도 평양 도착에 앞서 경유지인 도쿄의 주일미군 요코타(橫田)기지에 도착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북미정상간 나눈 약속의 세부 내용을 채워 넣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기운(조성)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후 한 달이 가까워지는데도 공동성명 이행 후속조치가 없다는 우려도 있다. 미 조야에서는 북한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 중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조치 이후 추가적인 비핵화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주로 거론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요 미사일 엔진 시험장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북미정상회담후 밝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언급도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한 북미정상회담 후속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대북 부정 기류가 더 확산할 수 있어 보인다.
이와는 달리 북한이 화답할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북미정상회담 직후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유예를 선언해 한반도의 긴장지수가 낮아졌고, 근래 조지 부시 행정부 이후 북한을 겨냥해 고집스럽게 사용돼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대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사용하는 등 미국의 유연한 대응에 북한이 화답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CVID를 대미 항복 또는 투항의 의미로 평가하고 있어 받아들이기 힘들다. 미국 정부가 CVID를 의미하되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비핵화의 목표를 부드럽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며 FFVD 사용의 의미를 정리했다.
김 원장은 "사실 판문점선언과 북미공동성명에 담긴 '완전한 비핵화'는 검증과 불가역성을 모두 담고 있는 포괄적인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를 만드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북한의 능동적 이행조치를 끌어내는 쪽으로 초점을 맞춘 데 주목하고 있다.
실제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이 이달 3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1년 이내 시간표' 발언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부 인사들이 시간표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런 시간표를 내놓지(provide)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해 어떤 합의가 도출될지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의 폐기 일정을 구체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평안북도 신의주 지역을 방문한 것도 그 주변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시설을 둘러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영변 핵시설의 가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서 파견되는 감시단의 수용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북한이 핵물질·핵시설·핵무기 신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그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비핵화 조치 이외에 미군 유해송환 문제도 관심사다.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희생자를 절대시하면서 그 희생자의 뼈 한 조각까지도 찾아내겠다는 미국 정서로 볼 때 유해 송환은 북미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 5월 북한이 미군 유해 5구를 처음 송환한 것을 시작으로 1990~1994년 북한이 단독으로 발굴한 미군 유해 208구가 송환됐다. 1996년부터는 북한 지역에서 북미 양국의 공동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돼 229구의 미군 유해가 미국으로 보내졌다.
외교 소식통은 "미군 유해 송환에는 물리적 준비가 필요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관측이 있다"며 "폼페이오 장관 방북과 더불어 이 문제가 풀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미 양측은 공동성명에 명시한 북미관계 정상화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 방안 등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추가적인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약속이 담긴 만큼 김정은 위원장의 방미 등에 대한 의견 교환도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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