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저자 : 김영란 전 대법관
서평자 : 오동석(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ohdos@ajou.ac.kr]
“생각과 상상을 그치고 주어진 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된 알고리즘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판사들, 나아가 법률가들이 법규주의의 왕국에서 나와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법의 지배를 사유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226p.)
정의가 판결을 심판하게 하라
주권자 국민은 법관에게 많은 권한과 신뢰를 부여하고 있다. 법관은 신체의 구속 여부 판단(헌법 제12조제3항·6항) 또는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 여부 판단(제16조)을 비롯한 재판(제27조)을 한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지 않는다면 징계로써는 파면되지 않는다.(제106조제1항)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퇴직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제106조제2항) 법관의 헌법적 책무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이다.(제103조)
김영란 전 대법관의 『판결과 정의』는 로스쿨 강의에서 다룬 판결을 비평한 첫 번째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필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에 받은 충격에서 얘기를 시작한다. 10년 이상 재직한 재판연구관의 보고서에 대해 대법관이 다른 결론의 추가보고를 요구하는 일을 보고 나서다. 정의를 좇은 결과가 아니라 대법관의 ‘선택’이 판결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욱 경악할 일이 최근에 일어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이다. 상고법원 도입 정책을 추진하려고 주요 재판에 대해 박근혜 행정부와 의견을 비밀리에 교류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국민과 헌법의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 아직 재판 중이지만, 의문과 불신이 꼬리를 문다. 판결이 정의를 담보한다고 계속 믿어도 되는 건지, 대법원장이 바뀌었다고 법원을 다시 신뢰할 수 있는 건지, 법원의 잘못된 과거를 법원이 스스로 청산할 수 있다고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건지.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주제를 다루는데, 두 개가 과거사 문제다. 제6장은 조봉암 사건 재심과 인혁당 손해배상 사건, 제7장은 진도민간인학살 사건과 정원섭 사건 재심이다. 필자는 과거사 청산에서 법원의 이중적인 지위를 말한다. 법원이 다른 국가기관의 과거사를 다루면서 동시에 법원의 판결 자체가 과거 청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결에 대한 과거 청산은 개별 형사판결에 대한 재심의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과거 피해자들이 다시 소송을 걸어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법원에서 과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조사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부담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된다. 인혁당 사건에서는 배상금 이자 계산 문제로 당사자들은 다툴 기회도 박탈당한 채 210억여 원을 반환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정부는 20% 이자를 붙여 반환을 구하는 소까지 제기했다. ‘국가범죄’에 따른 피해를 구제하기는커녕 2차, 3차 가해를 행한 꼴이다. 필자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또한 그러한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과거사 청산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지 법원에 묻고 있다.
제4장은 ‘계약이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로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통상임금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을 다룬다. 제5장은 ‘‘갑’의 자유방임에 책임은 없는가’로서 강원랜드 사건, KIKO 사건을 다룬다. 피해자의 피해를 오직 경제적 계량으로 논하는 판결의 한계는 시장의 완전성을 전제하는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그 결과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가장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는 사람이다. ‘사법의 정치화’는 또 다른 이면이다. 정치계 또는 경제계 등 외부의 힘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심이다.
제8장과 제9장에서 정치적 판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삼성엑스파일 사건과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이 그 예다. 법원이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법원이 아니라 국회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법원은 국회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 또는 약자의 정치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 그 반대였기 때문에 우리는 법원의 과거와 현재를 추궁하는 것이다. 필자는 리처드 포스너를 인용하면서 “법관에게는 아주 많은 자유가 허용된다. 법관에게 허용된 자유가 정확히 어느 정도이며 법관들은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어떻게 판결이 정의를 구현하도록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 어떻게 판결을, 법관을, 법원을 심판할 것인가? 법관 스스로, 법원 스스로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제3장까지 내용은 가부장제, 성인지 감수성, 사적(私的) 단체에서 헌법 적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법원 판례의 변화를 끌어낸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여성들의 사회운동과 재판 투쟁이다. 주권자 시민이라면 법원의 법관에게만 판결의 정의(正義)를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러한지 늘 지켜볼 일이다. 판결비평이 중요한 까닭이다. 공직자라면 이 책의 저자처럼 안과 밖에서 헌법적 책무를 실천하고 성찰하며 말할 일이다. 그것만으로 여의치 않다면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자인 국회가 입법으로써 감당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의 필자는 입법과 사법(司法) 모두 세계의 미래와 법의 미래를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로써 마무리한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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