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윤의 비트코인 방랑기(1)
정세윤의 비트코인 방랑기(1)
정 세윤
승인
2018.04.13 00:00 | 최종 수정 2018.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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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운영하는 비트코인 채굴장. 사진: 정세윤
필자가 비트코인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13년 말경이었다. 당시 한 지역신문의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국제면에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기사가 났다. 호기심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토시는 2009년 초 비트코인을 만들면서 첫 번째 블록(비트코인의 거래기록을 써 놓은 장부)에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라는 글을 남겼다. 영국의 더 타임즈의 1면 헤드라인을 옮겼는데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을 위해 두 번째 구제금융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당시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등 금융계가 부실한 부동산을 기초로 한 증권을 마구잡이로 판매해 파산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결국에는 각국 정부가 돈을 찍어내 금융계에 지원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부작용이 컸다. 부도위기에 몰린 월스트리트가 전 세계에서 달러를 거둬들이니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수입 물가가 대폭 올랐다. 또 미국 정부는 달러를 대량으로 찍어내니 국제 곡물가가 치솟았다(즉 달러의 가치가 떨어짐). 이에 따라 이집트 같은 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뀌는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토시가 만든 비트코인은 달랐다.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총 2100만개로 고정돼 있어 그 누구도 더 찍어내거나 덜 찍어낼 수가 없다. 비트코인은 또 발행하는 주체가 없다. 비트코인 생태계의 누군가가 미국의 월스트리트처럼 사고를 치더라도 구제금융은 불가능하다.
꽤 흥미로운 장난감이라고 생각한 필자는 비트코인을 채굴해보고 싶었지만 2013년 말경에는 일반 PC로는 비트코인 채굴이 불가능했다. 비트코인 채굴 경쟁이 불붙어 채굴업자들은 PC보다 수백배 빠른 전용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주문형 반도체) 기계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동생 격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라이트코인은 아직 일반 PC로 채굴이 가능했다. 비디오 편집이 취미였던 필자는 마침 PC용 그래픽카드가 한 장 있었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채굴용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고 채굴풀(Mining Pool, 인터넷 공동 채굴장)의 아이디만 입력하니 채굴이 시작됐다. 그래픽카드 한 장으로 1주일을 채굴하니 라이트코인 1개가 모였다.
그런데 채굴을 시작할 때 개당 2달러쯤에 불과하던 라이트코인 가격이 1개를 모으자 10달러로 껑충 뛰어 있었다. 당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른 2017년 말의 대거품에 비교되는 2013년 말의 소거품 시기였다. 전기요금을 계산해보니 확실히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채굴 이력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래픽카드를 더 구입해 채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중 학계와 언론계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즈에 ‘비트코인은 악이다(Bitcoin is Evil)'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크루그먼 교수의 글의 주된 논지는 비트코인은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금의 경우 장신구로 쓸 수 있는 ’바닥‘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그런 ’바닥‘이 없다는 것이다. 돈의 중요한 속성에는 ’교환의 매개‘와 ’가치의 저장‘ 기능이 있는데 비트코인은 ’교환의 매개‘가 될 진 몰라도 ’가치의 저장‘ 기능은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대경제학자의 일갈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금이라는 것도 항성의 핵융합 작용에 의해 탄생한 하나의 물질일 뿐이지 않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금은 부식되지 않고 아름답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에서 돈의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비트코인도 해킹만 되지 않는다면 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언론계에서의 주된 비판은 비트코인이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로 유명한 언론인 정규재 씨는 비트코인이 튤립 버블이라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이 꽃이라고 주장하는 언론인들을 향후 수없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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