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윤의 비트코인 방랑기(2)
정세윤의 비트코인 방랑기(2)
정 세윤
승인
2018.04.20 00:00 | 최종 수정 2018.05.10 00:00
의견
0
필자가 섭렵한 각종 코인 모형들. 출처 : the Merkle
라이트코인, 오로라코인, 도지코인, 맥스코인 ... 비트코인
우여곡절 끝에 가상화폐 채굴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길은 결코 꽃길이 아니었다. 2013년 말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를 넘자 깜짝 놀란 중국 정부가 탄압에 나섰다(당시에는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90%를 중국이 차지했다).
중국 정부는 금융권에 압력을 넣어 비트코인 거래소로의 위안화 입금을 금지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비트코인은 우표 수집 같은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모으는 것이야 상관이 없지만 국부 유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중국 거래소들은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위안화 입금을 받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2014년 초엔 일본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에서 해킹 사건(또는 자작극)이 터졌다. 마운트곡스의 운영자는 비트코인의 결함 때문에 해킹을 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이 걸 믿은 일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덤핑해 비트코인 가격은 당시 최고점에서 10분의 1로 토막이 나기도 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날개 잃은 천사처럼 심연을 향해 떨어지자 필자가 캐던 ‘비트코인 동생’ 라이트코인도 마찬가지였다. 전기요금을 내고도 많이 남는다고 생각하고 채굴에 뛰어들었지만 캐면 캘수록 손해인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언제나 희망의 빛은 있었다. 시작은 오로라코인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아이슬란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데 아이슬란드 국민에게 오로라코인을 무상으로 나눠 줘 새로운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참신한 의도가 입소문을 타자 채굴자와 투기꾼들이 몰리면서 오로라코인은 한때 개당 80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필자도 오로라코인 채굴을 시도했지만 채굴자들이 너무 몰려 단 1개도 캐지 못했다.
다음은 도지코인이었다. 일본의 시바견을 마스코트로 내세운 도지코인은 비트코인과는 다른 세계관을 어필했다. 비트코인은 다소 심각한 코인이다.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에 세계 경제 시스템을 비판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 팬들중 일부는 반정부주의나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을 띄기도 한다.
그러나 도지코인은 경쾌하고 농담 잘하고 근심 걱정 없는 세계관을 내세웠다. 코인 수부터 1000억 개가 발행됐고 특정 블록을 채굴하면 보너스가 주어지기도 했다. 농담 같았던 이 코인이 기적처럼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도지코인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시가총액이 한때 라이트코인을 뛰어넘기도 했다.
또 하나는 맥스코인이었다. 한때 월스트리트에서 금융업에 종사했고 현재는 언론인인 맥스 카이저라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가상화폐계의 유명인사인 맥스 카이저가 유명 거래소에 맥스코인을 상장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이 퍼지며 가격이 급등했다. 여기에 작전세력까지 붙으면서 맥스코인은 하룻밤 사이 가격이 10배가 오르기도 했다.
오로라코인, 도지코인, 맥스코인 모두 한때 가상화폐계를 풍미했던 코인들이었지만 현재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코인은 도지코인뿐이다.
라이트코인도 이 시기 한때 가격이 급등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중국 거래소 3곳에서 거의 동시에 라이트코인을 상장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있던 비트코인을 라이트코인으로 교환했다. 0.03 비트코인당 1개의 라이트코인으로 교환했는데 라이트코인은 이후 한 번도 이 가격을 넘어서지 못했다. 라이트코인이 지난 2017년 말 한국에서 개당 45만 원에 거래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더 올라 있었다.
비트코인은 왜 여러 매력적인 가상통화들이 나타남에도 시가총액 1위를 한 번도 빼앗기지 않았을까. 비트코인은 왜 가상화폐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을까. 다음 연재분에서 설명을 시도해 보겠다.
# 더 읽기 :
정세윤의 비트코인 방랑기(1)
정세윤의 비트코인 방랑기(3)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