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애숙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 - '경계 짓는 세상과의 불화와 극복 의지'

권애숙 승인 2020.12.02 23:01 | 최종 수정 2020.12.03 10:02 의견 0

경계를 넘은 것들

이제 홀가분해졌으면 좋겠어
새가 밟고 간 강물의 정면처럼
바람이 건너간 나무의 뒤편처럼
금방 바래질 웃음으로는 그림이 되질 않잖아

누군가 던져 넣은 돌멩이가 바닥을 쳤겠다
경계를 넘은 것들의 힘을 믿어

떠오른 물의 바닥이
나무의 길로 번져갈 때
풍경을 익히는 골짜기를 봐
홀로 소용돌이친 새들은 앉기만 해도 절창이다

보름을 지나 그믐으로 가는 하현,
구부러지며 만든 품은
골방마저 뜨겁다
능청스럽게 계절의 저편으로 그만
옮겨 앉아도 좋겠어
이미 정결한 숨과
진한 울음 잎잎이
완성의 빛깔로 너에게 닿아 있으므로

권애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

부산의 중견 시인 권애숙 시인이 최근 발간한 다섯 번째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달아실)에 수록된 시다.

60편의 시를 하나의 경향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전편에 경계 짓는 세상과의 불화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김형술 시인은 2012년 ‘권애숙의 시세계’에서 “권애숙의 시는 흰 차돌 같다. 옹골차게 단단하고 서늘하다”고 했다. 그 속에 눈물처럼 반짝이는 서정도 깃들어 있어 더러 단단하고 서늘한 인상을 조화롭게 배치시키기도 하지만 어슬프게 관념으로만 맴도는 감정들을 가차없이 배격한다고 했다.

이번 시집의 시편들에서도 “옹골차고 서늘하다”는 느낌을 가질 법하다. 경계 짓기가 버릇인 사람들, 그게 만연한 사회와 불화하는 시인에게 마냥 아름답기만 한 시어들을 기대할 수 없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황정산 씨는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권애숙 시인의 시들은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좋은 시다. 이 모든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 모든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이 아름답고 올바르고 좋은 것인지 그의 시들은 우리를 이 의문 속에 던져준다.
......
우리는 너무도 쉽게 경계를 지어 나를 ’우리‘라는 집단에 가두고 나와 너를 구별해왔다. 그런 구별 안에서는 상투적 세상 인식과 편 가르기만 존재할 뿐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 시집의 시들을 쓰며 이 경계를 넘고자 한다. 이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아름다운 발자국이 바로 이 시집에 한 자 한 자 뚜렷하게 찍혀 있다.”

권애숙 시인

어떤 설렘은 참 끈질기다.
수천 개의 얼굴로 처처를 살린다.

모르는 이름으로 내 어둠의 바다에 와 닿은 수많은 당신들에게
마디마디 찬란한 가을을 부친다.

-시인의 말-

권애숙 시인은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1995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차가운 등뼈 하나로》 《카툰세상》 《맞장 뜨는 오후》 《흔적 극장》이 있고 부산작가회의, 시인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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