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5)씀바귀 이주기 / 권애숙

전다형 승인 2019.05.04 13:08 | 최종 수정 2019.05.04 13:34 의견 0
ⓒ권애숙

씀바귀 이주기 / 권애숙

이 골목에서 낡은 모자를 벗는다
이 골목에서 굽이 떨어진 신발을 던진다

멀리서부터 끌고 온 주머니를 털어내는 별과
애써 발자국을 만드는 바람과
오래 손 잡는다

골목은 입맛을 다시고
나는 구부려 나를 구겨 넣는다
고맙다,
중얼거리는 너의 목소리를 듣는다
고맙다, 골목 안으로 은근하게 메아리를 깐다

작은 꽃들에 달달한 살내를 붙이며
꿈틀거리는 구석,
골목은 모퉁이를 세워 아늑한 방을 내 준다

더 이상 나는 세상을 믿지 않는다
이미 오르막 저쪽 바퀴를 버렸고
떠나온 너머가 더 이상 뒤집혀지지 않듯
더 이상 누런 발목을 비탈 밖으로 뱉아내지 않는다

◇권애숙 시인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 등단
▷시집 『흔적극장』 외
 

▶언제 헐릴지 모르는 산동네, 구월산 아래 재개발지역으로 이주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 골목으로 이주한 씀바귀의 생을 눈여겨본 시인의 시를 읽습니다. 골목이란 말 참 정겨운 이름이지요. 우리는 8할이 골목이 키운 자식들이지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고을이 필요하듯 골목은 사회생활을 배우는 놀이터 이지요 소꿉놀이, 술래잡기, 구슬치기, 말 타기, 딱지치기를 하면서 세상을 배웠지요.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수직의 아파트군락지에는 씀바귀 따위는 발붙일 곳이 없겠지요. 자연과 더불어 수평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말은 무색해진 지 오래지요. 그러나 시인이 사는 골목에는 씀바귀가 쓴 모자를 벗어던지고 낡은 신발을 벗어던져도 좋은 곳이라 하네요. 내세울 권위도 자신의 이력도 흠이 되지 않는 그런 곳이네요. 이주를 부추기는 시 한 편, 씀바귀 목을 길게 뽑아 올리고 시인을 기다릴 아름다운 골목길에,

멀리서부터 끌고 온 주머니를 털어내는 별과 애써 발자국을 만드는 바람과 오래 손잡는다 하네요. 화자와 시인은 수평의 관계네요. 입맛을 다시는 골목에 자신을 구부려 구겨 넣으며 오히려 고맙다, 하네요. 척박한 골목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씀바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아름다운 귀를 가졌네요. 달달한 살내를 붙인다는 이 골목으로 이주민 늘어나겠어요. 구석들이 바빠지겠어요. 여기저기 구석이 꿈틀, 모퉁이를 세워 아늑한 방을 만드네요.

우리 또한 씀바귀처럼 어디로부터 랜덤으로 온 존재지요. 주어진 운명의 그늘을 벗어던지려 했으나 세상을 믿지는 않는다 하네요. 이미 오르막 저쪽 바퀴를 버렸다 하네요. 버림으로서 더 많은 것을 얻었으리라 믿네요. 오월은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석가탄신일, 5·18, 노동자의 날이 들어있네요. 씀바귀의 이주로부터 이어달리는 고맙다, 고맙다 푸른 물을 서로에게 건네는 달이네요. 어디서 왔을까? 근원적 물음에서부터 부처를 보는 심안까지 생의 질문이 피는 계절이네요.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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