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4)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전다형 승인 2019.04.27 14:58 | 최종 수정 2019.04.27 15:14 의견 0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함민복 시인
▷1988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 랑 말랑한 힘』 등.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이 왔다.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뎠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오른 팽목항, 흘린 눈물만큼 높아진 수위, 그 때 그 슬픔과 마주한다. 가슴에 묻은 봉분을 어루만지듯 이 시를 읽는다. 팽목항에 가서 물에도 흉터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아빠 사랑해’를 외치는 물방울로 쓴 유언장들,

인재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어처구니다. 홈 패인 맷돌에 제 생살을 넣고 갈아버리면 슬픔을 줄일 수 있을까? 환장할 봄날, 밝은 햇살이 깊은 그늘을 만든다. 속수무책束手無策, 봉두난발蓬頭亂髮, 침몰 현장을 향해 달리는 사월의 바람을, 이 공기를, 숨 쉬기도 미안하다.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공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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