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6)어머니의 편지 / 문정희
전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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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14:29 | 최종 수정 2019.05.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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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편지 / 문정희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는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속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 시인은
▷1969년 『월간문학』 시 등단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오라 거짓 사랑아』, 『사랑의 기쁨』, 『작가의 사랑』 등
▷소월시문학상, 육사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수상
▶문정희 시인의 「어머니의 편지」는 이 세상 모든 딸들에게 보내는 유서로 읽힙니다. “그 어떤 슬픔도 남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고 하시네요. 돌이 된 어머니, 제 몸에 구멍을 뚫은 반지가 된 어머니의 삶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겠네요. 보석반지도 아닌 돌로 된 반지를 끼신 어머니는 한 가문의 며느리와 어머니의 자리에서 약속과 굴레를 견딘 거네요. 어머니의 편지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딸에게는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라하십니다. 한 번 온 세상,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이라 하십니다.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라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은 어머니께선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에게" 나처럼은 살지 말라고 합니다. 그 말씀 새겨듣고자 태종대 바닷가로 달려갔습니다. 재갈재갈 파도를 타넘는 몽돌이 검게 빛났습니다. 어머니의 몸을 오래 쓰다듬고 왔습니다. 모가 깎이고 둥글어지기까지 어머니의 곡진한 삶을 노래하고 있는 세상바다와 만나고 온 날, 나는 나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는지 물었습니다. 제겐 해이고 달이고 바다이고 강이고 어둠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주이고 세계 전부였습니다. 때로는 부끄러움이고 원망이고 상처고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종내는 그리움이고 사랑입니다. 화자가 대물림하지 싶지 않은 당부를 나는 내 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유서를 남길까? 녹음방초 우거진 오월에 그늘도 깊어집니다.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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