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독주회 / 성군경
최첨단 거대도시를 밀림, 정글, 광야로 표현한 그림들
도시의 물고기가 된 호모사피엔스들의 머리와 가슴을
믹서에 잘 갈아서 반죽해 놓은 듯한 그림
누구는 그것이 머리였고 누구는 그것이 가슴이었을지라도
그곳에선 뒷모습만 보이며 모두 바삐 걸어간다
흰 블라우스, 파스텔하늘색 스커트를 입고 우산을 쓴
하얗고 싱싱한 종아리 아가씨도 뒷모습만 보여주고 걸어갔다
스스로 생각과 호흡을 멈추는 것은
영원한 자유와 안식을 얻는 일일까
굴레와 덩굴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일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하는 미지세계로 가는 길일까
자의든 타의든 강제로 멈추는 것은 불행이고 비극이라 했는데,
이것도 맞는 이야기일까
서툰 무당 장구 쓰다듬고 진짜 무당 귀신 음복례 하는 날
세월이 부순 바위 모래 속 계란에서 병아리가 깨어나고
미운 풀, 고운 풀 어깨동무 하며 하는 말 “조금 삐뚤어져도 돼”
조금 삐뚤어지더라도 언젠간 세상과 교차할거야.
지금은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가면 돼
인생은 언뜻언뜻 소비하는
하찮은 것이라는 글귀가 사치고 모욕이라 느꼈는데
낡은 미닫이 나무문 삐거덕 소리가 무심한 아다지오로 들리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생각만 했다면
어찌 멀다는 것이 있었겠는가라는 단상(斷想)이 덩달아 삐거덕거린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저 선율이 흘러흘러 모이는 곳은 어딜까
고요 속에 숨소리 일깨운 기류처럼, 기류를 일으킨 숨소리처럼
가슴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 중간쯤에서 어느덧 노래 소리 되었다
초유 가득한 젖가슴 노래 소리 들린다
세상 첨보는 갓난쟁이 노래 소리 힘차게 들려온다
◇성군경 시인
▷1958년 대구 출생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장, 낙동강문학 대표,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구한국일보 '이달의 명시' 시해설위원장(15~17),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시해설 위원장
▷시집 『영천댐옆 삼거리정류장』 외 몇 권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는 “그림은 말이 없는 시이며,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이 시인의 수채화는 회색 톤이다. 이 그림의 프레임은 세상을 담은 거대한 어항이다. 그 어항에 사는 물고기로 은유되는 호모사피엔스는 어항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시류에 휩쓸려 바쁘게 살아온 화자의 삶을 짐작할 수 있겠다.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사이 머리에서 가슴의 중간쯤 대척점을 찾는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파스텔 톤의 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종아리만 보인 채 바삐 걸어간다. 흐린 날 밝은 옷을 입고 외출을 하기는 얼룩이라도 생길까 부담스럽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우리가 사는 도시는 최첨단의 “밀림, 정글, 광야”로 인식한다. 화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큰 그림을 보면 우리의 삶 또한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는 늘 강요받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도와 규범이라는 액자 속에 갇혀 기계부품처럼 살아간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생각과 호흡이 멈추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굴레와 덩굴을 벗어날 수 있을까” 화자는 자신에게 묻는다. 덩굴손으로 연결된 관계망들로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숨 막히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조금은 삐틀어져도 돼 ” 그간의 화자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었으리라. 몸은 살아 있어도 정신은 임사臨死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삶일까? 화자는 세상의 잣대와 나의 잣대를 견주어 본다. 누구의 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살고 있는 이 땅의 남자들의 보편적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의 동경은 후회의 다른 말이리라.
명석한 머리로 세상을 건넌 시인의 삶은 직선과 직진이었으리라. 더디 틔는 문리로 뒷북만 친 생은 남의 이목에 휘둘렸다. 허명과 허울에 전전긍긍했다. 늘 고픈 젖배는 불룩하게 일어서지 않았다.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진 욕망이 “삐걱거리던 단상斷想이 “낡은 미닫이 나무문 삐거덕 소리가 무심한 아다지오로 들리기” 까지 제 속을 달달 볶았을 것이다.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속마음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데, 속마음을 잘 들키는 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이 구멍 메우는데 반생을 탕진했다. 메우고 나면 더 큰 구멍이 생겨났다. 살아서 매울 수 없는 그 구멍은 죽음만이 매울 수 있다. 이 구멍 메우려다 검은 줄무늬 애벌레*처럼 누구를 밟고 오르려고 하지 않았는지? 뭉크의 “절규”가 내 현옹수 생목을 땄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내 뒤통수를 내리쳤다. 제대로 맞은 죽비 한 방, 오래 얼얼하겠다.
* 『꽃들에게 희망을』 주인공
**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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