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7)담쟁이 / 최광임
전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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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8 08:21 | 최종 수정 2019.05.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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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 최광임
이제 나는 더 이상 벽이 아니다
내 살 속 뿌리를 내리고 키돋움하며 오르는 일
처음엔 나의 알맞은 집은 아니었다 어느날
달그락거리는 뼈만 모여 살던 삶
떡잎의 네 사다리가 되어도 좋을 듯 했다 옆에는
흐드러진 능소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내가 너를 만났다는 것이다
다족류의 곤충처럼 셀 수 없는 네 손길은
갈비뼈를 어루만지며 살을 붙이기도 하고
뼈와 뼈를 맞추기도 하고 살과 뼈 사이
아귀틀림을 다듬기도 하며 나를 지워갔다
미처 허공에 줄을 긋지 못한 거미들이
너와 나 사이를 지나쳐 가기도 하였으나
벌레들이 네 몸을 뒤집어 집을 짓고
얼크러진 꿈들을 채우는 일 보며
나 없이 너의 뼈가 되어 살아도 좋았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계절풍처럼
일정하게 떠나기도 하지만 이내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길 지워지지 않도록
검게 야윈 금들을 붙잡은 축원
끝나고도 식지 않는 사랑이다
-담쟁이 전문-
◇최광임 시인
▷전북 부안 출생
▷2002년 『시문학』 등단
▷시집 『도요새 요리』 외 『디카시 해설집』,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 등.
▷대전 문학상 수상, 현재 『디카시』 주간, 『시와 경계』 편집인으로 활동.
▶벽은 장애물이 아니라 지렛대며 바지게작대기며 비빌 언덕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고지를 향해 아이젠을 꽂는 등반자다. 이 시에서 푸른 삶을 밀고 가는 사람인人자를 보게 된다. “내 살 속 뿌리를 내리고 키돋움하며 오르는 일/”이 되기까지 시인은 담쟁이를 통해 삶을 방식을 말한다. “처음엔 나의 알맞은 집은 아니었다 어느날/” 문득 깨닫는다. “달그락거리는 뼈만 모여 살던 삶/”을 지나 “떡잎의 네 사다리가 되어도 좋을듯했다”고 한다. 낮은 포복의 자세로 밀고 가는 시살이가 믿음직스럽다. “함께 산다는 것은 내가 너를 만났다는 것이/”며, 담쟁이 덩굴손을 닮은 ”다족류의 곤충처럼 셀 수 없는 네 손길은/ 갈비뼈를 어루만지며 살을 붙이기도 하고/ 뼈와 뼈를 맞추기도 하고 살과 뼈 사이/ 아귀 틀림을 다듬기도 하며 나를 지워갔다“고 한다. 지워도 지워보아도 자꾸만 돋아나는 아상我相을 지워갔다는 것은 어디에도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제 안의 벽을 무너뜨리고 광장으로 나아가는 길을 짓는 담쟁이 넝쿨손이 불안한 하루를 타 오르고 있다. 금간 벽을 이어붙이고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을 밟는다.
이젠 “벽”이 아니라고 말하는 화자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자다. 나는 화자의 전언에 귀를 바짝 대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들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소리를 한 땀 한 땀 받아 적은 시인의 시를 만났다. 숨 막히는 벽을 감싸 안고 절벽을 견디는 사람에게 푸르게 건네는 우거진 말씀, 우리 함께 들어요. 이미 모든 벽에는 문이 있음을, 벽을 밀면 광장으로 통하는 길이 있음을 이 시는 말합니다. 벽을 지렛대 삼아 벽 너머 푸른 세상으로 이끄는 시인의 푸른 혜안이 눈부십니다, 손에 손을 이어 잡고 담쟁이는 낮은 포복의 자세로 총총 걸음으로 자기 세계를 밀고 가네요. 벽이 벽을 부축하는 울울창창한 푸른 연대를, 허름한 담장을 에워싸고 있는 화자를 만나게 되거든 힘내라 응원의 박수 부탁드려요.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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