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2)전태일 / 맹문재

전다형 승인 2019.07.17 07:49 | 최종 수정 2019.07.17 08:01 의견 0

전태일 / 맹문재

나는 완전에 가까운 그의 결단을 믿네
지천명처럼 믿네

그에게는 하루 44시간의 작업이나
단수(斷水) 같은 월급이
문제가 아니었네
위장병이나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문제가 아니었네

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였네

내게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최후까지 알려줄 것이네

◇맹문재 시인은

▷1963년 충북 단양에서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전태일 문학상, 윤상원 문학상, 고산문학상, 현재 안양대 교수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쓰러졌다. 근로기준법 책 ‘화형식’을 한 전태일은 좁은 의미의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를 바꾸려는 사회 변혁가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오늘도 유효하다. 죽음만한 ‘참’인 것도 없다. 분신자살한 전태일! 그는 갔으나 전태일의 정신을 우러르는 그의 “완전한 결단”을 믿는 한 사람이 있다. 지천명처럼 믿는 한 사람이 “내게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세세 만만세까지 ”최후까지 알려줄 것이네“라고 한다.

전태일 “그에게는 하루 44시간의 작업이나/ 단수(斷水) 같은 월급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위장병이나/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체적인 고통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였“다고 한다.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왜 문제가 되었을까? 선의의 행동이 선동의 행동으로 오인의 요인이 된 이런 사건의 발단에는 다른 요인이 숨어있다.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쓴 편지⟨외침의 창⟩을 귓등으로 넘기지 말아야 하리라. 오늘날 눈부신 산업 발전에는 어린 여공들과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70년 인정으로 배수진을 치는 전태일을 소환하는 제2, 제3의 전태일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분신으로 항거한 전태일도 한 어머니의 귀한 아들이고 형이고 오빠다. 시인의 “완전한 결단”은 아직도 1970년 배고픈 어린 여공의 ‘풀빵’이 2019년에도 여전히 ‘문제’로 소환된다. 배고픈 어린 여공의 ‘풀빵’은 노동자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이고, 사용자에게는 돈이 달린 ‘문제’였으리라. 50년이 지난 오늘날에게 ‘풀빵’의 ‘문제’는 내가 속한 집단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여전한 대립각을 세운다. “인정으로 배수진을 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전태일의 “완전한 결단”을 “최후까지 알려줄” 이 시의 결기에 응원의 힘찬 박수를! 

전다형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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