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14)혀를 잘랐다 / 강 순
전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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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15:59 | 최종 수정 2019.08.1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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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꺼냈다
검은 말들이 딸려 올라왔다
혀를 만졌다
검은 말들은 어둡고 음습한 곳에
검은 습성으로 굳어 있었다
검은 말들은
혀에 안착해서
혀의 숙주가 되어
혀를 점점 검게 물들이고
당신의 가슴에서 악몽이 되고
당신의 호흡에서 천둥이 되고
벼락 속에도 알을 낳고
깊은 동굴의 괴물로 포복하고
나는 어쩌다 당신의 검은 혀
10분 간 목 놓아 혀를 잘랐다
태초의 언어를 찾았다
“엄마”
붉은 피가 한참 쏟아지고 나면
나의 혀에 꽃이 필까
바람이 불어 검은 혀가 차가워진 밤에
당신에게 내 잘린 혀를 보낸다
『미래시학』 2019년 여름호 게재
◇강 순 시인은
▷제주 출생,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현대문학』에 ‘사춘기’ 외 4편의 시로 등단
▷시집으로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혀는 말의 상징이자 마음의 붓이다. 혀끝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인격 수양에 힘쓰는 자의 기본자세가 된다. ‘아름다운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설저유부舌底有斧’, ‘장설삼촌長舌三寸’, ‘설망우검舌芒于劍’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처럼 혀를 잘못 사용하면 무기가 된다. 무기로 변한 혀는 자랑과 시비를 부르기도 하고 혀 아래 숨긴 도끼와 날카로운 칼은 타자의 마음을 베기도 한다. 화자의 부정적 “검은 말”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여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위의 시는 죄 사함이며 번제(燔祭)의 제물로 받치는 의식이다. 검은 말은 어둡고 엄습한 곳에서 번식도 빠르다. 검은 말이 당신에게로 건너가는 순간 심장에 천둥과 벼락을 때리는 괴물로 변한다. 화자는 “10분 간 목 놓아 혀를” 잘라서 “당신에게 내 잘린 혀를 보낸다.” 이는 화해와 용서를 비는 단죄의 행위이자 자기만의 속죄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태초의 혀 꽃이 피기를 기도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해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1위가 ‘엄마(Mother)’라고 한다. 화자는 이 아름다운 단어 “엄마”를 부름으로써 태초의 언어를 되찾는다. 우리도 세 치 혀로 인해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 많았으리라. 화자는 혀와 말을 버리겠다는 결단 앞에서 내 혀가 뱉은 말을 되짚어보았다. 나도 화자처럼 혀를 벨만큼 타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일이 없는지 화자의 잘린 혀에 내 혀를 대어 보았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미움이 미움을 낳는다.’는 뜨거운 한 말씀 건네주셨다.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고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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