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의 ‘시 밥상’ ... (1)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 / T.S 엘리엇
전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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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10:50 | 최종 수정 2019.04.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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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시인 전다형 시인이 한 편의 시로 매주 한 차례 두레밥상을 차려 드립니다. 모두들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메마른 감성을 적시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T.S 엘리엇(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 1922년작)에서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mixing Memory and desire,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Winter kept us warm, 겨울은 따뜻했었다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이 시 ‘황무지’는 5부로 구성된 장편 서사시로 1922년에 T.S. Eliot 이 발표한 장시 "The Waste Land"의 처음 부분이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전후戰後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하고 있다.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한 것은 봄이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쓴 이 시의 행간에는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본 인간의 잔혹성이 숨어 있다.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형상화한 역설의 시다.
우리에게도 “자유여! 혁명이여! 민주주의여!”를 외쳤던 사건이 있었다. 올 사월 71주년을 맞는 제주 4·3사건, 59주년을 맞는 4·19혁명과 5주년을 맞는 세월호의 참사다. 이 화사한 봄날에 일어났던 참혹을 되짚어보아야 하리라. 세상의 봄은 아낌없이 자기를 피운다. 저 환한 봄, 세상 꽃들 배면이 아프다. 누구의 목숨을 담보로 이 봄을 누리고 있나? 상한 영혼에게 그림자를 줄여줄 수 있나? 평화와 민주는 스스로 주어졌나? 역린逆鱗,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보는 사월, 귀한 목숨으로 일군 이 땅에 울울창창, 무궁무진을 파종할 것을, 이 시 한 편을 빌려 차린 두레밥상에 세상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기를.
◇전다형 시인은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졸업, 박사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등단
▷시집 '수선집 근처'(푸른사상사)
▷연구서 '한하운 시 공통 연구'
▷제 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annaj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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