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적적할 수밖에 없는 등말리 골티골짝 명촌별서에 하필이면 코로나19로 개미새끼하나 구경하기 힘든 판에 어쩌자고 텔레비전이 고장 났는데 간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스카이라이프와 소비자 간의 연결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으로 아내와 제가 한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온갖 시도를 하다 실패를 하다 망연자실하는데 마침 1588-3002, 별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하는 마초할배가 스카이라이프 민원전화번호를 떠올려 전화를 걸자 전국적으로 신고 들어온 데가 많아 오늘 낮에 수리원이 방문할 수도 있지만 지역이 오지라 한 2, 3일 걸리겠다는 참으로 황당한 답변이 왔습니다.
저는 아침을 먹으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잔 뒤에 한 시간 반 정도 대하소설 <신불산>의 교정을 보거나 <포토 에세이>에 매달리는데 작업이 끝나고 서재에서 나오자 무료해진 아내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졌습니다. 달리 할일도 없는 저도 침대에 누웠는데 어쩐지 잠이 오지 않고 온갖 잡생각이 나더니 마침내 아하, 제가 가장 바쁘게 살던 시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55세쯤 되던 해 명색 고참 사무관이면서 좌천에 좌천을 거듭한 저는 <방재안전과>라는 현업부서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재난관리, 민방위, 도로관리를 업무로 하는 과에서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송도해수욕장과 새벽시장, 자갈치시장 등 유난히 시장과 노점이 많은 서구의 시장골목을 관리하는 업무였습니다. 시장상인들이 보통 <노랑차>라고 부르는 커다란 덤프트럭에 반장을 비롯한 10여명의 건설인부가 타고 다니며 도로상의 노점과 무단적치물을 단속하여 평소에 행인이 다닐 수 있는 노란 선(線)을 확보하는 일이 주업무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속업무라는 것이 너무 태만하면 관할전체가 무질서한 무법천지가 되고 좀 심하게 단속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점상과 영세민의 생계가 막막한 사안이라 저를 비롯한 웬만한 공무원은 그야말로 적당히, 너무 심하지 않게 단속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구청장의 성격이 좀 독하고 모진 구석이 있는데다 한 번 마음이 상해 이를 악물어 소위 <한 번 찍히는 사람>은 죽도록 고생을 해도 절대로 용서를 않는 그야말로 독일병정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로 관내를 순찰하던 구청장이 그날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은데다 또 하필 너무 심하게 어질러진 도로를 발견하는 날이면 당장 과장부터 혼쭐이 나는데 그 모욕적인 언사가 너무 심해 차마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고 대적할 기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손발이 잘 안 맞는 저와 구청장이 스로 슬슬 피하지만 한 번씩은 정말로 모진 질책이 쏟아질 때가 있어 도로담당계장이나 직원이 과장 앞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저녁에 소주를 한 잔 사며 떡 빌듯이 빌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시에는 주로 관내의 등산로를 순찰하던 방향을 해수욕장과 새벽시장, 자갈치시장 방향으로 돌려 너무 심하면 계장이나 담당에게 슬쩍 전화를 하면 이내 노랑차가 달려와 깨끗이 정비하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 달 너무 도로가 어지러워 제가 담당계장에서 전화해 금방 시장골목을 깨끗이 정비하고 인부와 노랑차가 철수를 서두는데 하필 키가 젤 크고 눈치가 좀 모자라는 단속인부가 제게 다가와 모자를 벗고 아주 정중히 인사를 해 제가 제발 모른 척 하라고 제 입을 엑스자로 가렸습니다. 그건 절대로 서로가 안다는 표시를 내어서는 안 되는 상황, 눈치 빠른 상인들이 대번에 그 갑작스런 단속의 주범을 찾아낸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 후에도 저는 구청의 피복비예산으로 단체로 맞춘 때를 덜타고 품이 넉넉한 회색 점퍼를 입고 가끔씩 시장순찰을 하는데 어느 날은 제가 방금 지나온 저만큼 뒤에서
“아이구, 저 대가리 허연 영감이 또 왔네.”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의 가게에서 우당탕탕 무단적치물을 치워 금방 도로가 깨끗해져 노랑차가 왔을 때는 아무 단속건수고 없어졌는데 그 후로는 제가 새벽시장이나 자갈치시장을 뻐뜩거리기만 해도
“저 대가리 허연 영감은 왜 저래 쓸데없이 부지런한고?
“월급에 수당에 보너스가 넉넉한 우리 같은 영세민들 사는 고충을 알 택이 없겠제?”
“아이구, 밥맛이야. 가다가 자빠져서 코나 깨져 버려라.”
차마 다시 그 골목에 가기 힘들 정도의 악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국장승진을 해 유독 시간이 더디게 가는 봄날오후에 충무동골목시장의 찌짐 포장마차의 가장 깊숙한 자리에 앉아 잡채나 찌짐을 먹으며 간혹 천원을 주고 좁고 긴 술잔에 소주라도 한 잔 마시면
“아이구, 저 대가리 허연 영감이 또 왔네.”
“대가리 허연 영감이 아이고 비서까지 있는 엄청 높은 사람이래.”
“비서가 있으면 따신 방에서 주는 커피나 마시지 우리 시장에는 또 와 내일 단속을 붙일라카노?”
회색점퍼에 대가리가 허연 영감 오른 쪽 다리를 약간 저는 엄청 높은 영감이라고 소문이나 저는 정말 사장골목을 한번 지나가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공지영의 <고등어>란 소설을 읽어보면 저 넓은 태평양을 수많은 무리가 각자 나름대로 지느러미와 푸른 등을 번쩍이며 헤엄치는 고등어들은 누가 어느 개체를 특별히 구별하거나 그런 필요성이 없는 익명(匿名)성 때문에 진정한 자유(自由)를 누린다고 했는데 저는 잠깐 동안 업무상 도로관리를 맡은 바람에 그 익명성이란 자유와 화평을 그만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다음 회엔 그 반대쪽 입장이 시장이야기를 한번 하겠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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