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24)잠든 아내를 보며

말년일기 제1225호(2021.1.24)

이득수 승인 2021.01.23 23:24 | 최종 수정 2021.01.25 05:54 의견 0
 사진2 2010, 불과 11년 전 우리부부의 젊은 모습
2010년, 불과 11년 전 우리부부의 모습.

코로나19로 사람을 구경하기 힘든 사골마을 KBS1의 <인간극장>과 <아침마당>이 방영되는 사이에 아침식사와 커피타임, 설거지까지 끝난 아내가 노오란 겨울햇살이 찾아온 따뜻한 거실바닥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심심한지 무단히 자나가는 바람을 보고 컹, 컹, 짓던 마초도 이웃으로 마실을 나간 모양으로 온 세상이 쥐죽은 듯 고요한데 한 번씩 아내가 푸우, 좀 거칠게 내뿜는 숨소리와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끊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신혼 때를 지나 아이들이 학교에 한창 다니던 40대만 해도 남편에게 저런 흐트러진 자세를 보인 적이 없었는데 벌써 45년의 부부생활과 5년간의 긴 간병에 파김치가 된 아내는 갱년기가 오면서 점점 살이 찌더니 이제 저보다도 훨씬 몸피가 커져 남편 보는 데서는 절대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지만 계단을 오를 때 숨소리가 거칠어진다든지 잠잘 때 가볍게 코를 고는 게 점점 심해져 모임에서 여행을 가는 것도 겁을 내어 제가 떠밀다시피 보내면 인간세상 참으로 묘한 것이 한 7,8명이 모인 모임에서는 반드시 같이  고는 <코파>가 하나쯤 더 있기 마련이라 <비코파>틈에서 그럭저럭 버티나 봅니다.

부부가 평생반려자라 하여 거울처럼 마주 보고 서로 돕고 사는 존재라지만 지금 우리 집엔 제게 병이 온 후로 일상의 대부분을 제가 아내에게 의지하는 처지라 이제 그 잘나가던 기세가 다 꺾이고 단지 살아서 숨만 쉬는 <할매의 할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이 난지 얼마 안 되어서는 채마밭의 농사도 제가 알아서 짓고 아내는 주로 화단의 꽃을 가꾸는 것이 일과라 저는 외로운 아내를 위해 그 몸으로도 아내의 꽃밭을 더 넓혀주고 했는데 왼쪽 갈비뼈적출 수술을 받고나서는 도저히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으니 대부분의 농사일이 자동으로 아내에게 넘어갔는데 이럴 때는 당당한 체격도 밑천인지 무거운 것도 잘 들 뿐 아니라 몸을 사리거나 망설이는 법도 없이 시원시원 농사일도 잘 밀어붙였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농사는 제가 주관하고 아내는 조금 돕는 편이어서 무얼 좀 심어도 언제 심고 몇 골을 심고 거름은 무엇을 얼마나 칠지 늘 물어보고 해 이제 저보다 더 훤하게 알아도 무슨 파종기만 되면 굳이 저에게 뭔가 물어보고 힘이 없어 크게 도와주지 못해도 제가 밭 가운데 같이 서있으면 너무나 기뻐하는 것이 아내는 아직도 심정적으로는 매사 남편을 의지하고 그런 남편이 곁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행복한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든 아내의 모습 

부부생활을 보통 <백년해로(百年偕老)>라고 하는데 그건 장수를 첫째 행복으로 치며 그저 오래살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나온 말이고 못 먹고 헐벗기 예사인 우리 조상들은 결혼햇수와 관계없이 그저 환갑을 넘기는 것을 경사로 쳤고 우리내외도 벌써 70대 초반과 60대 후반으로 결혼생활 45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결혼기념 50주년을 금혼식(金婚式)이라 하여 최고의 가치 골드를 붙이는데 우리부부도 어쩌면 이 최고의 부부생활 골드에 진입할 지도 모르겠습니다.(꿈도 너무 야무지다고 질책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아내와 한 30년 넘게 살아 아이들도 다 자라고 큰 딸은 시집가 손녀까지 안겨준 나이가 되자 아내의 몸이 조금씩 불어나면서 망미주공이 자연친화적이긴 해도 계단이 많은 아파트에 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고 옆에서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간 보잘 것 없는 공무원 박봉으로 친가 7명, 처가 5명의 그 궂은일을 다 넘기고 이제 그 고생한 시절의 애틋한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아내가 조금이라도 몸이 가볍게 또 숨소리가 고르게 잠들까 늘 걱정했지만 1남 4녀 5남매 중 유독 아내만 비만체질인지 장모님과 처가형제가 다 날씬한데 아내는 갈수록 우량아가 되어 제가 관록과 인품이 잘 어울린 <종갓집 맏며느리> 같다고 하자 요즘은 <부잣집 맏며느리>라는 말만큼 심한 욕이 없다면서 껄껄 웃었습니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어차피 서로 의지하는 것, 나이가 들어 어느 하나가 병이 들면 상대는 운명적으로 모든 수발을 다 들어야 하는 법이지만 저는 비교적 일찍 심하게 병이 와서 아내가 유독 고생이 많은 편입니다. 

제가 무단히 몸이 가렵다고 갑자기 목욕을 하기 원하면 동그란 의자에 앉혀놓고 제 몸을 구석구석 꼼꼼히 씻고 머리를 감기고 마지막엔 손이 안 닿는 등까지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주는 걸 보면 아무리 부부라도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제가 개운한 몸으로 침대에 누우면 아내는 더운 물이 아까워 자신도 샤워를 하고 목욕탕을 깨끗이 정리하고 나오면 저는 벌써 잠이 든 경우가 많은데 전에 항암제를 먹을 때는 종일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잠을 잘 못 이루고 밥을 못 먹어 어떻게든 좀 먹이고 재우려고 온갖 고생을 하던 아내가 남편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얼마나 흐뭇했을지 오늘 같이 반대로 제가 잠든 아내를 보는 날 그 알뜰한 부부의 정이 새롭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쯤 아이엠에프로 다들 고생할 때 박봉의 우리부부는 서울에서 등록금이 제일 비싼 사립대학 연세대와 부산에서 제일 비싼 동아대에 다니는 두 아이들 때문에 그야말로 코밑이 달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아껴 써도 다달이 나는 적자와 연금에서 대출받는 학자금은 늘어나고 그 때 사무관으로 동장과 구청과장을 번갈아 지내던 저는 단체원이나 동료들과 공식점심스케줄이 없을 때면 주로 국제시장 먹자골목에서 2천 원짜리 손짜장면, 밀면, 칼국수로 때웠는데 한 번은 우리 집에 다니러 온 장모님이 아내의 옷장을 열어보고 모조리 낡고 구멍이 나 멀쩡한 속옷하나가 없는 걸 보고 남들은 우리 큰 딸이 잘난 서방 만나 부자로 잘만 산다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냐며 엉엉 운적도 있습니다. 가난해도 하루하루가 늘 보람에 가득 찼던 시절, 그 시절에 쓴 시 한편을 올립니다.

   
중년의 아내에게

몇 번째일까 
같이 산 스무 몇 해 봉급날마다
詩 몇 줄로 얇은 봉투 채워보려고
다가서다 멋쩍게 웃다말기를...
  
가난도 익숙하면 아름다워
줄이고 쪼개고 아끼는 살림 
오래오래 닦아서 은은히 낡은
화장대 자개무늬 기러기처럼 
내 중년의 座標를 비추는 거울
손마디 까칠해진 내 아내여,
하루쯤 내 다시 少年이 되어
지난 삶의 절반인 당신에게 
풀꽃반지 하나 만들어 주랴
주택공사 아파트 밭은 진입로
계단이나 몇 개 들어내어
나머지 삶의 太半이 넘는 
그대, 몸 가벼이 살게 해 줄까...

오늘밤엔 菊花꽃을 사가야겠다.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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