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26)화려한 사자성어 취생몽사(醉生夢死)

말년일기 제1227호(2021.1.26)

이득수 승인 2021.01.25 23:10 | 최종 수정 2021.01.27 09:59 의견 0
 반동(反動)화가 쿠르베 - <오르낭의 매장>

나이든 사람이면 누구나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자신이 직접 죽는 죽음이 아니라 그사이 죽어간 주변사람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죽음이지 굳이 자신도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건 아주 먼 훗날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일로 치부해버리고 일단은 자신과는 별고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알고 

“아, 그거야 그 때 가서 생각할 일이지.” 하고 넘겨버리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그러나 늙고 병든 사람이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제 그 막연했던 죽음이 바로 목전에 닥쳤으니까요. 또 타고난 겁쟁이라고 할까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당장은 잘 닥치지 않는 막연한 위험이나 죽음에 대해 특별히 겁을 내는 예민한 사람, 북한의 도발로 사람이 한두 명만 죽어도 곧바로 전쟁이 일어나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자신은 어디론가 피난길에 나서는 공포에 휩싸이는 사람도 있는데(주로 안온한 가정에서 곱게 자란 여성) 그런 사람들은 지금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전염병에 엄청난 공포를 느껴 시장이든 마트든 아예 외출을 할 용기를 내지 못 하고 생필품도 결혼한 자녀들이 공급해주면 그 자식마저 전염이 겁이 나서 

“수고했다. 그러나 방에는 들어오지 말고 현관에 두고 가거라.” 하는 기막힌 겁쟁이도 있습니다.

불치병인 암에 걸린 저는 자연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경우가 많고 어떤 때는 저승사자가 방금 대문을 넘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공포에 휩싸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젊어서 역사나 철학, 특히 한문이 많이 들어간 동양의 철학 사서삼경이나 노자, 묵자, 한비자 같은 잡가(雜家)를 다독한 저는 그 때부터 당장 내 문제는 아니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다 겪어야 하는 철학적 명제인 죽음, 특히 죽을 사(死)자가 많이 익숙한 사람입니다. 거기다 젊은 한 때 민원창구에서 <사망신고>를 접수하고 사망통계를 내는 업무를 맡아 당시 사람들이 대체로 어떤 원인(질병, 사고, 자살)으로 죽는 지까지 전문가가 되고요.

그래서 심심할 때 저는 같은 음의 한자를 몇 자나 내가 알고 있을까 하고 써보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가(家)자의 경우 한 30자, 또 사(事)자의 경우도 그 이상 한 자를 찾아내곤 합니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입 구(口)자에 단 두 획만 더 해 한자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글자를 찾아보기고 하면 점(占), 가(可), 지(只)자등 그 또한 한 20자를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몸이 아프면서 가장 많이 한자 찾기 게임을 하는 글자는 날 생(生)자와 죽을 사(死)자가 같이 들어간 사자성어(四子成語)나 고사(古事)성어를 찾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이 태어남으로 시작하고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만큼 매우 많지 싶지만 뜻밖에도 생과 사가 동시에 들어간 한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통 사람이면 한 대여섯 단어를 찾고 나면 머리가 텅 빌 수도 있습니다.
 저 경우도 컨디션이 좋은 날은 한 10여개 생사(生死)가 들어간 고사성어를 찾는데 예를 들어

생로병사(生老病死), 사생결단(死生決斷), 생사불문, 생사여부, 구사일생, 생사여탈 등으로 한 단어를 찾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생몰연대(生沒年代), 생자필멸(生者必滅)처럼 죽을 사자를 동의어인 몰이나 멸자로 쓴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럼 생과 사가 한꺼번에 들어간 사저성어 중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문득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단어를 찾아내고 너무나 기분이 좋아 무릎을 쳤습니다. 늘 얼큰히 취해있다 꿈꾸듯이 죽어가는 사람, 말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쉬운 일은 아닙니다. 늘 술에 절여 산다면 자는 잠에 꿈결처럼 죽기보다는 대체로 간암이나 간경화증이나 황달로 죽어가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도 기막힌 반전하나가 있습니다. 옛날 전라도 장성 땅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라는 올곧은 선비가 있어 <백련초해(百聯抄解)>라는 시집을 남길 정도의 멋진 선비였지만 사색당파에 찌든 조정이 싫어 일체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들을 양성하며 늙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품과 학문을 전해들은 임금이 당장 입궁해 벼슬을 받으라는 전교를 내리자 노새 한 마리에 술을 잔뜩 싣고 종자하나를 거느리고 천천히 한양을 향하는데 성황당이나 장승이 선 고개가 있으면 반드시 내려 종자에게 술상을 차리게 해 취하도록 마시고 넓은 강이 있어 나루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조그만 개울에 징검다리만 놓여 있어도 역시 술상을 차리게 해 취하도록 마시고 작은 정자라도 나오면 아예 하루를 묵으며 천천히 상경하다 이제 하루만 더 가면 한양에 당도하는 과천(果川)어름의 강가에서 술판을 벌이다 그 때까지 누적된 술독에 못 이겨 손에 술잔을 든 채 그만 숨을 거두었으니 그야말로 취생몽사의 멋에다 자신의 소신도 꺾지 않은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힐스 - <기분 좋게 취한 술꾼>

젊어 누구보다 술을 즐긴 저 역시 한 세월을 취생몽사로 보내고 바야흐로 코너로 몰린 셈입니다. 그러나 감히 자부하건데 거의 날마다 습관처럼 술을 마시면서도 저는 나름대로 시를 구상하고 보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세상, 정감이 넘치는 휴머니즘의 땅을 꿈꾸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단지 이제 취생이 다 끝난 마당에 과연 몽사(夢死)가 이루어질지가 문제인데 내 마음속의 아쉬움과 미련을 다 버리고 풍선처럼 둥둥 뜨는 기분이 되어 황홀한 음악에 묻혀 떠났으면 하지만 그 역시 너무 과분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비록 술을 안 먹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돈에 취하거나 권력(지배욕)에 취하거나 자신이 아름답다는 착각에 취하거나 심지어 질투나 명예에 취해 누구나 다 취생몽사를 하므로 무언가 취해서 죽기는 피차일반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음악이나 조각, 환경운동이나 별자리 찾기, 자원봉사와 기부천사가 되는 멋진 취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어쩜 단순하게 술을 자주 마시고 몽롱한 눈으로(그 몽롱한 눈에는 꿈이 어리는 법이니까요.) 살다가는 사람이 더 인간적으로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자, 이제 여러분은 여태껏 무엇에 취해 살았고 어떤 꿈속에서 떠나갈지 한번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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