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피격 사망한 아베 신조에 관한 단상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7.11 17:03 | 최종 수정 2022.07.13 09:47 의견 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양주 할머니가 5월 1일 별세했다. 2차 가해자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거리 유세 도중 사제총私製銃에 맞아 7월 8일 사망했다.

피해자 김양주는 1940년께 일본 순사에 의해 만주로 끌려갔다.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가 된 김 할머니는 반항하다 폭행을 당해, 오른쪽 귀 고막을 다쳐 청력을 잃었다. 해방 후 귀국한 고인은 아이 보기·청소·식모살이·날품팔이 등을 하며 신산한 삶을 살다, 향년 98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했다.

2차 가해자인 아베 신조는 ‘세습 정치인’으로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중의원에 당선됐다. 아베가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계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강경한 입장에 서면서 우익들의 주목을 받은 데 있다. 말하자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양수 할머니의 존재를 부정하고, 할머니의 고통에 콧방귀를 뀌면서 거물정치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베의 모델 정치인은 A급 전범 용의자인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1896~1987)이다. 기시도 1960년 미국과의 새 안보조약을 체결한 후 괴한에게 넓적다리에 칼침을 6방이나 맞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고, 아베는 총을 두 방 맞고 68세에 사망했다.

김양주의 평생소원은 억울함의 해소가 아니었을까? 인권 개념이 보편화하기 전 ‘위안부’ 전력은 동포들에게도 멸시 받고 모멸의 눈길을 감내해야 할 ‘치부恥部’였다. 자신의 잘못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 억울함을 어떻게 감당해냈을까? 가해자가 공식적·공개적으로 반인륜적 죄악을 인정하고, 참회하고, 배상함이 마땅치 않은가. 이 마땅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김양수 할머니는 평생소원으로만 간직한 채 눈을 영원히 감았다.

일본의 우익은 큰 틀로 봐서 ‘위안부’를 부정한다. 이 우익을 등에 업고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한 이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총리는 지냈다. 그는 전력(戰力·war potential) 보유를 금지한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베 전 총리는 그 뜻을 이어받아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았다.

전범국에게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군대 보유를 금하는 건 어떤 논리적 모순이 없다. ‘정상국가’로 회귀하려면 과거 전쟁에 대해 속죄를 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고, 국제사회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데 아베 전 총리는 ‘위험한 국수주의적 역사수정주의자’(a dangerous strain of nationalist revisionism)이다. 과거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반성은 없다. 하여 ‘위안부’까지 부정하는 것이다.

아베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자 했다. 그의 역사인식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군사력 강화의 논거로 주변 정세를 들었다. 부상하는 중국, 호전적인 북한, 적대적인 러시아, 그리고 예전보다 덜 미더운 미국. 그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2022.5.26.)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본은 (세계)평화와 안정에 책임을 져야 하고, 세상을 ‘이상적인 세계’로 보는 마음자세와는 결별해야 한다.”

앞 문장은 ‘타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이고, 뒷 문장이 ‘혼네’(본심)인 것 같다. 힘의 균형에 의해 국가 간의 평화가 유지된다. 힘이 한쪽으로 기울면 평화를 보장 받을 수 없는 냉엄한 국제질서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범국으로서 과거 전쟁범죄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이 어떻게 세계평화에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

10일에 참의원 선거를 아베 전 총리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치러졌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이른바 ‘개헌 세력’이 압승했다고 한다.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아베 생전의 ‘필생의 과업’이 사후에 달성될 수 있을까?

<아사히신문>(2022.7.11.사설)에 따르면, 이번 선거의 큰 쟁점은 물가앙등, 신형코로나의 감염 재확대에 대한 대응,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국제사회의 결속 강화 등 긴급한 과제에 대처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번 선거를 통해 ‘국가안전보장전략’의 재검토 의론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계열의 <아시히신문>은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방위비 배증倍增과 적기지공격능력 보유에 대해서, 수상은 시종 애매하게 설명해 왔는데, 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려 악설을 밟는 일 등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송원 작가

일본에도 양심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경화는 심각할 정도다. ‘타케시마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극우들은 실제 ‘타케시마’의 지도상 위치를 모를 정도로 맹목적 국수주의자들이다. 이렇게 우경화한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탈바꿈 자체가 대한민국 안보에 중차대한 위협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는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미 서자逝者인 아베에게 무슨 시비를 물으리오. 영전에 조화 한 송이를 놓는다. 그러나 죽음과 ‘역사의 평가’에 현안을 미루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고 김양주 할머니를 비롯해 이미 가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께 거듭거듭 추모의 정을 올린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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