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48) '신비한 힘'이란 없다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7.18 15:51 | 최종 수정 2022.07.23 10:06 의견 0

#1. 2013년 4월 23일, 시리아 해커들이 연합통신의 공식 트위터 계정을 뚫었다. 13시 07분에 해커들은 백악관을 공격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다쳤다고 트윗했다. 항상 뉴스피드를 지켜보고 있는 주식거래 알고리즘들은 순식간에 반응해 미친 듯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다우존스 지수가 곤두박질쳐 60초 만에 150포인트가 빠졌다. 이는 1360억 달러에 상당하는 손실이었다. 13시 10분, 연합통신은 그 트윗이 해커들의 장난이었음을 밝혔다. 알고리즘들은 후진했고, 13시 13분 다우존스 지수는 거의 모든 손실을 회복했다.

그보다 3년 전인 2010년 5월 6일 14시 42분부터 14시 47분까지 5분 만에 다우존스 지수가 1,000포인트 떨어져 1조 달러가 사라졌다. 그런 다음에 다시 반등해, 3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폭락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 이것이 바로 초고속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돈을 책임질 때 일어나는 일이다. 이 사건 이후로 전문가들은 이른바 이 ‘깜짝 폭락(Flash Crash)’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알고리즘들이 범인인 것은 밝혔지만, 정확히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

'셈'을 해보이는 한스[위키피디아]

#2. ‘영리한 한스증(Clever Hans Syndrome)’. 20세기 초에 독일의 한 수학교사가 한스라는 자기 말(馬)이 아주 영리하여 셈본을 잘 한다고 하면서 그 묘기를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보여주었다. 주인이 “셋 보태기 넷은?” “열 빼기 다섯은?” 등등 하고 물으면, 한스가 앞말굽으로 땅을 쳐서 정답을 주곤 하는 것이었다. 소문이 너무 자자해지자 과학자들이 이를 조사해 봤다.

말이 보태기·빼기 등을 할 수 있을 만큼 영리했던 것이 아니라, 정답이 다가왔을 때 주위 군중의 얼굴표정이나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을 눈치 채고 그때 발굽으로 땅을 치던 동작을 멈추더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십중팔구 정답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단서는, 군중이나 실험자 자신이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눈치도 주지 못했을 때,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말의 양쪽에 서서 저쪽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숫자를 하나씩 말의 귀에 속삭였을 때는, 한스가 전혀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고 계속 땅을 치더라는 것이다.

영리한 개가 “앉아”, “이리와”, “악수” 등등 주인의 말을 잘 알아듣고 복종하는 경우도 ‘영리한 한스증’에 불과하다. 개가 이러한 말의 뜻을 알아듣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 받은 대로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앉아”, “이리와”, “악수” 라는 어휘 대신에 “하나”, “둘”, “셋”이라는 신호로 처음부터 훈련을 시켰더라면, “하나” 하면 앉고, “둘” 하면 이리 오고, “셋” 하면 악수를 했을 것이다. 음식이 안 보여도 종소리만 나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Pavlov)의 개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김진우/언어(1985)-

#3. 三夢詞(삼몽사)/서산대사

主人夢說客(주인몽설객) 주인은 나그네에게 자기 꿈 이야기를 하고
客夢說主人(객몽설주인) 나그네는 주인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네
今說二夢客(금설이몽객) 지금 꿈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
亦是夢中人(역시몽중인) 그들 역시 꿈속의 사람이네

우리는 세상을 운명을 모른다. 그래서 흔히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말한다. 변수의 수효가 너무 많아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변수는 상호작용해 변수는 무한히 증식한다. 이해력=지혜/무한대,이므로 ‘0’, 곧 ‘모른다’이다. 하여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현상現狀이건 우리의 삶이건 세상의 흐름이건 간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류가 살아온 궤적인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신비한 힘’이 역사의 물줄기를 튼 적이 있던가!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다소의 행·불행은 있을지언정 ‘신비한 힘’이 작용한 흔적이 있던가. 물질과 그 물질에 약간의 지혜가 보태진 결과로 역사가 진전돼 왔을 뿐이다.

휴정은 연산군 때 폐지되어 명종 6년(1551)에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한다. 31세 때다. 이어 36세 때 승직의 최고직인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오르고, 보우普雨의 후임으로 봉은사 주지가 된다. 그러나 38세 때 세상의 명리名利 추구가 출가의 본뜻이 아님을 자각하여 판사와 주지 직을 버리고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다시 발길을 지리산으로 돌려, 내은적암內隱寂庵에서 3년을 지낸다.

이 내은적암에서 『삼가귀감三家龜鑑』 집필을 시작한다. 1560년 41세 때다. 이 책은 ‘유불도儒彿道가 이루려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불교(선가귀감), 유교(유가귀감), 도교(도가귀감)의 좋은 내용을 골라 합본한 것이다. 1568년에 완성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출판하기 위해 판각해 놓은 목판을 진주 유생 성여신과 그 일행이 깨부숴버리고, 절의 사천왕상의 모습이 괴기스럽다고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이 사건 이후 휴정은 지리산을 떠나 전국의 산천과 명산대찰을 풍운처럼 떠돌아다녔다. 이렇게 떠돌던 중 금강산에서 지은 시가 위의 ‘삼몽사’이다. 삼몽사을 읊은 이후에 향로봉에 올라 세상의 명리가 허망함을 절감하며 ‘향로봉에 올라’란 시 한 수를 읊는다.

만국의 도성들은 개미집 같고
천하의 호걸들도 하루살이라
밝은 달 아래 허공 베고 누우니
끝없는 솔바람 곡조가 아름답구나

선조 22년(1589년) 기축옥사己丑獄死가 발생한다. ‘정여립 모반 사건’이다. 정여립이 진짜 역모를 도모했는지 여부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건, 휴정은 도성을 떠난 후 산문山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여립 일당에는 승려 출신이 많았다. 그 중 문초 받던 무업無業이란 승려가 휴정의 ‘향로봉에 올라’란 시를 들어 모반에 가담한 것처럼 진술했다. 남이 장군의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휴정은 묘향산에서 역모 혐의로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된다. 세수世數 69세 때다.

물론 선조는 휴정의 결백함을 인정하고 석방한다. 그리고 3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모두가 잘 알다시피 휴정은 승병장으로서 국난 극복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당대의 선지식善知識 휴정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위대한 ‘지적 인물’도 역사나 사회의 도도한 흐름에 미미한 종속 변수의 하나일 뿐이다.

무당이니 도사니 서글픈 단어들이 지금도 떠도니 참 서글픈 일이다. 가물 때 하늘이 노해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믿어, 기우제 지낼 적에나 존재 의미가 있던 직업군이다. 그들을 시험할 좋은 방법이 있다. 하루 앞을 내다볼 필요도 없다. 10분 아니 1분 앞만 내다보면 된다. 그들을 주식시장에 보내 그 성적표를 내보면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사기꾼인지 예지자豫知者인지를.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도사가 천리天理를 안다고? 그냥 개이고 사람일 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라면 사람다운 일에 진력해야 할 뿐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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