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 출발은 희망이라는 알을 품고 시작한다. 첫 등굣길도 첫 출근길도 희망의 정서적 반응인 설렘으로 발길이 힘차다. 새 출발을 지켜보는 이들 중 그 발길이 아슬아슬해, 희망보단 우려 감정이 더 강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들도 반신반의, 행여나 하며 우려를 애써 누르고 짐짓 희망에 방점을 두고자 노력한다. 인지부조화를 감당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행여나’가 ‘역시나’로 진면목을 드러내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치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이 증명한다. 여론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세는 진실의 잣대로서 제 몫을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윤 대통령 국정운영 긍·부정 평가 격차를 보자. 5월 넷째 주 15.4%포인트(긍정 54.1%-부정 37.7%), 6월 첫째 주 11.8%포인트(긍정 52.1%-부정 40.3%), 6월 둘째 주 3.8%포인트(긍정 48.0%-부정 44.2%), 6월 셋째 주 2.6%포인트(긍정 48.0%-부정 45.4%)로 ‘추세적’으로 긍정은 하락하고, 부정은 상승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받은 득표율은 48.56%였다. 통상 정권 출범 초기에는 우려보다는 희망이라는 기대심리가 더 높다. 한데 취임 2개월도 되지 않아 득표율을 밑도는 지지율의 함의는 무엇일까?
일단 새 정부가 출발하면, 국민들의 기대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경제와 미래이다. 곧 내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겠느냐와 내일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이다. 이 글에서는 경제 문제에만 한정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물가가 심상찮다. 소비자물가가 3월 중 4%를 웃돈 데 이어 5월(5.4%)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를 상회했다. 물가는 개별 상품의 가격변동이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에 긴요한 거의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의 종합적인 가격 수준을 말한다. 소비자물가지수가 5% 상승했다는 말은 내 소득이 5%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소득이 올라도 시원찮은 판에 소득이 깎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는가. 지난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인하, 규제철폐 등이 핵심이다. 한마디로 14년 전 이명박 대통령의 ‘엠비노믹스’,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미 실패로 증명된 ‘낙수효과’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웃음거리다. 14년 동안 학습한 게 그리도 없는가. ‘학습부재’는 윤석열 대통령의 DNA인가.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쓴 글은 이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경제정책 기조에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 우선 있는 자들에 대한 세금 경감과 재벌과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추론에 의존한다. 막연하고 비현실적이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낙수효과로 국민들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하지만 오히려 강자들만을 위한 힘의 질서를 강화하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
<이코노미스트>(2022.6.14.인터넷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지속되는 코로나 팬데믹이 인플레이션 상승의 2/3 정도 책임이 있다고 평가한다. 국제교역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 경제는 국제 정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쨌건 물가 상승으로 고통 받는 계층은 경제적 약자들이다. 빈곤층은 말할 것도 없고 서민과 중산층에게 물가상승은 독약이다. 한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는 부자감세로 ‘부자에게 퍼주기’를 감행한다. 무슨 심산일까. 권위주의와 기득권과 관계가 깊다.
서민에게 치명적인 물가상승은 국내·외적 요인에 의해 유발된다. 그러나 병이 있으면 약도 있는 법이다. 정부의 대처에 따라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불가항력적인 불행은 감내할 수 있다. 그 불행의 고통을 골고루 나눠진다면, 어깨가 아플지언정 주저앉지도 않고 불행감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다.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게 정말 물어보고픈 게 있다. 국제발이든 국내발이든 경제위기에서 당신을 포함해 대다수 국민들이 고통 받을 때,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그 경제위기를 타개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봅니까?
‘영어를 잘해서’라고 군색하고 생뚱맞은 이유를 대며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앉힌 대통령이다. 그런 안목을 가진 대통령이 경제부처 수장을 고를 때라고 그 안목이 어디 달라지겠는가.
경제전문가들은 장기화되는 전쟁, 발본이 불가능한 코로나 팬데믹, 격화되는 미·중의 패권경쟁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은 당분간 지속되리라고 전망한다. 이 전망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내 소득이 계속 줄어든다는 것이다. 소득감소는 경제적 의미의 이상의 자존감과 관계 된다.
소득이 줄어도 평소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는 중산층 이상이거나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이다. 필부필부匹夫匹婦는 자존심을 죽이고 비굴해져야 현재의 경제적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갑질의 횡행은 물론, 을질을 넘어 병들끼리의 싸움을 목도하게 된다. 이래서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서민들의 자존심으로 유지되는 제도이다. 권위주의자들과 기득권 세력들은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을 외려 부채질한다.
현실을 냉소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봐서야 남는 게 없다. 허나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희망의 근거가 희박하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용한 무당이라도 찾아봐야 할까?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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