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손초전孫楚專」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진(晉:265~317)나라 초엽, 풍익 태수를 지낸 손초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 간에는 속세의 도덕이나 명성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이에 대해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초도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石潄流침석수류)’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潄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면서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함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단련하기 위함이라네.”
‘요란한 내조’는 말이 된다. 내조內助란 본디 조용한 법이다. 그런데 조용히 진행되어야 할 내조가 요란하게 되면, 비난의 의미로 ‘요란한 내조’란 제목을 뽑을 수도 있다. 반면, ‘조용한 내조’는 말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가십성 기사가 언론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민망한 일이지만, 그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지 분식’이다. 부실한 기업이 ‘분식회계’를 하듯, 이미지를 조작하려는 것이다. 분식회계의 분식粉飾은 몸치장을 뜻하는 분식扮飾과 다르다. 사전의 정의는 '내용이 없이 거죽만을 좋게 꾸밈'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고 사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꾸밈' 이다. 화장하여 더 예뻐진 사람은 거리를 미화한다. 마는, 회계를 분식하면 뭇 사람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힌다.
“대통령께서 지난번 쇼핑 때 굽이 없는 편한 신발을 좋아하신다는 말씀 드린 적이 있었잖아요. 늘 그런 구두를 신고 다니시는데, 김 여사께서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니까 오늘은 제대로 된 구두를 신고 가라 그렇게 말씀하셔 가지고, 결혼식 때 신었던, 보통 양복에 신는 구두를 신고 가라 하셔서, 대통령께서 그 구두를 닦아서 신고 왔고, 어제는 그 구두를 특별히 신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분이 얘기하시다가 윤 대통령 구두를 바이든 대통령이 보면서 대통령 구두가 너무 깨끗하다고, 나도 구두를 더 닦을 걸 그랬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구두 내조’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된 내용이다. 세상에, 남편 구두 하나 고른 게 뭐 대단한 내조인가? 아니면, 이 보도의 저의는 대통령 본인은 구두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위인임의 폭로인가?
한·미 정상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관람에 김 여사가 동행했다. 이를 두고도 여려 매체들은 “직접 전시를 안내하지 않고 뒤따라 걸으며 ‘조용한 내조’에 주력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안내는 전문가가 맡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을 ‘조용한 내조’라니, 혹 김 여사가 나댈까봐 우려했단 말인가.
이 외에도 뉴스 가치가 지극히 낮은, 상식적인 일에 비상식적 해석을 곁들인 기사가 많다. “국정내조 김건희 여사, 12일 비공개회의에 샌드위치 대접”, “‘벌써 품절됐다’ 김건희가 신은 슬리퍼, 의외의 가격”, “후드티 김건희”, “김건희 여사, 첫 공식 패션...‘흰색은 단아·순수·백의민족’”, “〔단독인터뷰〕김건희 여사 팬클럽 회장 강신업 변호사 ‘건희 사랑은 여사 요청으로 ... 통 큰 커리어우먼” 등등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4월8일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 매체들은 4월6일~8일 사이 김건희 씨 동정 기사에서 ‘김건희 미화’ 내용을 278회 언급한 반면, ‘김건희 의혹’을 언급한 건 단 4회에 그쳤다.
‘김건희 의혹’은 잘 알다시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허위 이력’ 의혹, 논문 표절 의혹, 그리고 ‘7시간 녹취록’ 관련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의혹이다. 특히 녹취록 속에는 김건희가 “내가 정권을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 하는 발언도 있다. 윤 대통령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수구언론이 이 발언을 미루어, ‘나대지 않음’을 ‘조용한 내조’로 표현하며 안도하는 것일까?
어쨌건 김건희 여사 미화 보도가 봇물을 이룬 사이, 김건희 씨 의혹을 다룬 보도는 자취를 감췄다. 일단 ‘이미지 분식’이 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분식회계는 조작임이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다. 그냥 한때 ‘그렇게 보이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세월에 따라 이미지는 실체에 자리를 내어주는 법이다.
서두의 ‘수석침류’란 고사성어는 두 가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쓰는 궤변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수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재빠르게 대응하는 임기응변이라는 것이다. 하나는 비난이고 다른 하나는 칭찬이다.
수석침류와 이미지 분식은 닮았다. 수구 언론의 의도대로 겉꾸림한 이미지에 놀아나느냐, 덕지덕지 바른 분을 떼어내고 이미지의 실체를 파악하느냐, 의 두 갈래 길이 있다. 어느 쪽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판가름 날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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