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39) 가슴에 품은 칼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4.30 20:39 | 최종 수정 2022.05.01 09:39 의견 0

예약이 되어 있으므로 1층 접수처에는 들릴 필요가 없다. 2층 관절센터로 직행하면 된다. 엘리베이터는 7층에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기다렸다. 한 개 층을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니! 예전 같으면 이 상황에서 머뭇거림 없이 걸어 올라갔을 것이다. 여느 성한 다리의 사람들도 응당 그럴 것이다.

절감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이동능력’이 필수임을. 좁은 소견을 반성한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외침의 절박함을 남의 일로만 여겼음을. 우리나라 장애인은 2백만 명이 넘는다. 이 중 선천적인 장애인은 10% 정도이고, 90%는 정상으로 태어났지만 살면서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다. 더구나 사람은 늘그막에서 대부분은 장애인이 된다. 이동능력이 지극히 제한된 사람은 사람다운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값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냥 미랭시(未冷屍), ‘따뜻한 시체’일 뿐이다. 한데 ‘잠재적 장애인’인 나는, 우리는 장애인에 대해 어떤 시선을 보내는가?

“먼저 병실로 가셔서 환자복 갈아입고 오늘 해야 할 검사부터 하세요.” 관절센터 간호사는 이름과 아픈 곳을 확인하고, 검사 항목과 순서를 설명해줬다. 10층 4인 병실로 가서 준비해둔 내 침실에 짐을 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10층 병실은 간병인이 상주하는, 보호자가 없는 병동이다. 엑스레이(x-ray)부터 찍었다. 채혈실에서 피를 뽑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받았다.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병실로 오니 이미 저녁밥이 와 있다. 식사시간은 아침 7시, 12시, 오후 5시란다. 장거리 기차를 타서일까, 병원 밥이 달았다.

공동 병실에서 강적은 TV이다. 안 본 지가 십 년이 넘었다. 내가 안 본다고 TV를 꺼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 읽을 공간도 찾지 못했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입원을 기회로 술과 담배와 커피를 끊으려고 작정을 했다. 작심삼일은커녕 하루도 못 버티는 꼴이다. 옆 침대 동료에게 물어봤다. 옥상인 11층은 하늘공원인데, 흡연 구역이 있다고 한다.

1층까지 내려가 후문으로 구멍가게에 가서 담배를 한 갑만 샀다. 요놈만 피고 새 환경에 적응되면 안 피워야지, 하는 변명으로 내 ‘의지박약’을 합리화했다. 다시 11층 하늘공원으로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연거푸 2대를 피워댔다. 한 대 더 필까 말까,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찾아서 부리나케 병실로 갔다. 간호사는 혈액대체제를 수혈했다. 그리고 내일 검사를 위해 자정부터 일절 금식하란다. 담배는 물론 물과 껌도 안 된단다. 자정부터이니, 다시 옥상으로가 한 대 더 필까?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이튿날, 아침밥도 굶고 08시45분에 30분 동안 MRI를 찍었다. 연이어 골밀도 검사를 하고 CT도 촬영했다. 뒤이어 복부와 허벅지 그리고 무릎의 초음파 검사까지 했다. 검사 중간에 진료실로 가서 담당의의 진단을 받았다. 진료실의 화면에 내 다리뼈의 엑스레이 사진이 선명했다. 내심 ‘내시경 시술’을 바랐고, 아마 인공관절을 해야 할 정도로 연골이 망가지지는 않았겠지, 하는 소망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인공관절 수술’이구나, 의사가 말하지 않아도 직감했다. 무릎을 기준으로 아래위 뼈가 딱 붙어있었으니까. 아래위 뼈 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굵은 금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에게 수술 안내를 받았다. 내시경 시술은 250만~300만 원, 인공관절 수술은 450만~500만 원 예상한다. 시술은 10일이면 퇴원하지만, 수술은 수술 후 3주는 입원해야 한다. 예약을 할 때 이미 들은 내용이다. 새로운 건 여차저차한 부작용과 주의사항이었다. 인공관절 수술은 절대 작은 수술은 아니고, 재활에도 세월이 걸린단다. 그런가? 찢어진 살갗 몇 바늘 짚는 것처럼 간단하고 가벼운 일은 아니구나! 어쨌건 당연하고 본연의 임무이겠지만, 간호사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챙겨줌이 자상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12시 45분에 내과전문의로부터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들었다. 아무 이상이 없단다. 다만 문제될 정도는 아니지만 지방간이 조금 있단다. 알콜성 지방간이겠지. 그야 입원 기간에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니 자연 치유가 되겠지. 오후 4시 5분에는 심장초음파 검사를 했다. 역시 정상이다. 이젠 본 게임인 수술만 남았다. 이제부터 내일 수술까지는 아무 일도 할 게 없다. 수술 때문에 모든 걸 금식해야 한다. 물도 마실 수 없다. 

하늘공원으로 올라갔다. 의료진 누구나 말리지만, 까짓 담배쯤이야.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건강은 상이고, 질병은 벌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내가 벌을 받은 것인가. 아니다. 연골 마손(磨損)은 질병이 아니다. 많이 사용했으니 당연히 많이 닳았지. 우리 몸의 장기(臟器)나 부품은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다. 많이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거나 약화된다. 관심해야 할 것은 무엇을 위해 많이 사용했느냐, 이다.

60대 중반인데도 아직 염색치 않은 흑발이다. 아직 맨눈으로 책을 읽는다. 작년 건강검진에 의하면, 심혈관 나이는 50대 후반이다. 부모 잘 둔 덕이겠지만, 많이 걸어서 부모덕을 온전히 지킨 공도 있지 않겠는가. 장시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음에 무릎 건강을 해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덕에 ‘읽는 것’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뽑아내는 능력을 갖췄다. 즐기는 행위는 각자의 사정과 형편과 성향에 따라 다양하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 중 돈이 가장 적게 드는 게 ‘읽으며 즐기는 일’이다. 물론 없어서 읽기를 택했는지, 읽기만 하기 때문에 없게 되었는지 알쏭달쏭하다. 어쨌거나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여 병실에서 잔다고 서러워할 이유는 없다.

조송원

마는, 이 논리는 순전히 내 외쪽생각이다. 옆과 위아래 피붙이들은 내 수술비 감당하랴 신경 쓰랴, 야속한 생각이 들겠지. 다들 여유로운 살림은 아닌데. 너무 내 위주, 편의대로 산 후과일까? 너무 손바닥을 펴고 살아온 것일까? 손을 움켜쥐고 있으면, 아무도 빼앗아 가진 못한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도 쥐어줄 수도 없다.

정신줄을 놓지 않은 사람이 대지를 딛고 살면서 어찌 제 몸 제가 건사해야 함을 모르리오. 뜻을 세우고, 세운 뜻대로 사는 사람은 가슴에 큰 칼 하나는 품고 있는 법이다. 품은 칼이 아직 나뭇가지 하나 못 자를 만큼 무디다. 갈고 또 갈고 벼리고 벼려왔다. 더 늦기 전에 드는 칼로 완성할 수 있을는지. 피붙이들은 물론, 그간 베풀었던 선후배 지인들, 그날을 믿어주고 기다려 줄 수 있을는지. 부디 주먹을 움켜쥐지 말기를······.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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