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는 아홉 살에 경기도 청계사에서 출가하여, 열네 살에 계룡산 동학사로 왔다. 깨달음을 얻은 후 17년간 머물었던 동학사를 떠나, 서산의 천장암으로 갔다. 천장암에서는 속가의 형인 태허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경허가 찾아가자, 태허스님은 난감해 하며 경허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 그렇지 않아도 의지할 데 없어 찾아온 속가의 모친을 어쩔 수 없이 노보살님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게다가 아우네 형님이네 이렇게 되면 내 무슨 얼굴로 사미승들을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허의 생각은 달랐다.
“형님은 중국 제나라 도기스님이 법문을 하러 갈 때마다 어머니를 등에 업고 다니며 손수 봉양했다는 이야기도 못 들으셨습니까? 어머니 몸이 내 몸이라며 대소변까지 손수 받아내며 모셨습니다.” 속가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것을 늘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태허스님과는 달리, 경허는 어머니 모시기를 극진히 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리고, 틈틈이 법문도 들려주고, 적적해할 것 같으면 말동무도 되어 주었다.
하루는 경허가 공양 시간에 즈음해서 어머니 방으로 갔다. 염불도 외지 않고, 부처님께 예불조자 드리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아, 그거야 늙고 귀찮아서 그렇지. 그리구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배운 게 없어서 그런지 염불도 잘 외워지지가 않어. 그렇다구 설마한들 내가 극락왕생을 못할라고. 아들을 둘씩이나 부처님께 바쳐서 스님이 되어 계신데, 안 그런가?”
때마침 사미승이 아침 공양상을 들고 들어왔다. 모친이 수저 들기를 기다린 경허는 나지막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 아침 공양은 어머니 몫까지 두 그릇을 다 제가 먹으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와 저는 모자지간이니 어머니 몫까지 제가 다 먹고, 어머니는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부를 것이 아닙니까?”
“원 세상에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들어보겠네.”
“어머니, 제가 어머님 밥까지 먹어도 어머님 배가 불러지지 않습니다. 자기 밥은 자기 입으로 자기가 먹어야 배가 불러지는 법입니다. 예불을 드리는 것도, 염불을 외는 것도, 불공을 드리는 것도 꼭 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윤청광/고승열전14.경허-
고통도 불공과 같다. 내 몸의 고통은 그 누구도 대신 아파해 줄 수 없다. 죽고 못 산다는 반쪽인 사랑하는 사람, 그가 진통제를 맞는다고 내 통증이 진정되는 것은 아니다. 복을 짓고 은총을 받음도, 고통을 견딤과 이겨냄도 모두 자신이 할 탓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천도제로 영가를 극락으로 보내지요”, “천인감응이니 하늘이 알아주겠지요” 란 동정심 깊은 말들은 어쩜 체면치레의 빈말이 아닐까?
수천 년 동안 인류의 3대 적은 기아와 질병과 전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이 문제는 이제 인류가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고대 이집트나 중세 인도에 가뭄이 들면 인구의 5%~10%가 사라지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1692년과 1694년 사이에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약 280만 명의 프랑스인이 굶어죽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는 굶어서 죽기보다는 많이 먹어서 죽는다. 2014년에 21억 명 이상이 과체중이었다. 반면 영양실조를 겪는 사람은 8억 5,000만 명이었다.
1330년대에 시작된 흑사병은 쥐와 벼룩을 통해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대서양 해안에 다다랐다. 7,500만 명에서 2억 명에 이르는 사람이 죽었다. 이는 유라시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수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염병은 과거 천 년 동안에 비하면 큰 위협이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암과 심장병 같은 비감염성 질환으로 죽거나, 단순히 노환으로 죽는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사망 원인의 약 15%가 인간의 폭력이다. 반면 20세기에는 그 비율이 5%에 불과하고, 21세기 초에는 약 1%로 줄었다. 2012년 세계 사망자 수는 약 5,600만 명이었다. 이 가운데 62만 명이 폭력으로 죽었다(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12만 명, 범죄로 죽은 사람이 50만 명이었다). 반면 80만 명이 자살했고, 150만 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농담 같지만 실로 설탕이 화약보다 더 위험하다.-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신에게 제물을 바쳐서가 아니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서도 아니다. 하늘에 천제(天祭)를 지내서도 아니다. 서낭당에 치성을 드려서도 더더욱 아니다. 인지의 발전, 곧 과학혁명과 기술혁명 덕이다.
얼마 전 익히 아는 화개 목압서사의 고전인문학자를 찾아갔다. 그는 직접 가꾼 차(茶)밭에서 손수 찻잎을 따서 녹차와 발효차를 만든다. 자신이 즐길 만큼만 남기고, 대부분은 지인들에게 보내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아래채의 당호에 눈길이 머물렀다. ‘연빙재’(淵氷齋)! 무슨 뜻? 조해훈 박사가 나직이 느릿하게 이야기했다.
“예전 할아버지가 쓰신 건데, 깊은 연못가에 머무는 듯,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아하, 다산의 여유당(與猶堂), 『도덕경』의 경구와 같은 뜻이구나. “신중하기(與)는 겨울에 내를 건너는 듯하고, 삼가기(猶)는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 무릇 선비의 몸가짐을 이른 말이구나!
종교적 심성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시킨다. 기도로써 은총을 빌고, 불공으로 가피를 바라고, 서낭제로써 보살핌을 얻고자 함은 지극히 인간적 욕망일 뿐이다. 절대자(신, 부처, 하늘, 서낭신, 그리고 진리)는 존재해야 한다.
“지금 나의 포부와 행위가 과연 절대자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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