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오전 6시30분에 하동 화개장터 인근에서 출발한 15인승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버스에는 내년 하동 일원에서 열리는 ‘하동세계차엑스포’ 관계자와 대렴차문화원(원장 김애숙) 관계자, 홍순창(화개제다 대표) 한국차생산자연합회장 등이 타고 있었다.
이날 서울행은 6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코엑스 3층 홀에서 개최되는 ‘제19회 국제차문화대전’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대렴차문화원이 ‘조선의 선비차의 풍류’ 주제로 선비차 시연을 하기로 돼 있다. 필자가 선비차 시연을 맡은 것이다.
이 행사는 ‘티월드 페스티벌(Tea World Festival)’이 주최하고 주관한다. 2003년에 제1회 국제차(茶)문화대전을 시작해 올해 제19회를 맞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茶)전시 행사로 알려져 있다.
코엑스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반쯤 되었다. 필자가 참여하는 행사는 오후 2시부터 3시까지였다. 시연을 할 무대 주변을 둘러보니 참가 부스들이 많았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참가 부스의 수가 1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오후1시 반쯤 돼 가져간 한복으로 갈아입고, 흑립(黑笠·갓)을 썼다. 필자는 선비 두 분께 차를 우려 대접하는 선비 팽주(烹主)였다.
상석에 앉을 선비 한 분은 구례 피아골 중기마을에 귀촌하신 분이었다. 필자와 대렴차문화원에서 두어 번 선비차 다례 준비를 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다른 선비 한 분은 서울에 계시는 한 박사님이었다.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됐다. 대금 연주자의 연주가 시작되자 필자가 앞에서고, 그 뒤에 한 박사님, 그리고 그 뒤에 상석에 앉을 선비님이 뒤따르며 무대에 올랐다. 무대는 생각보다 넓었다. 학춤을 추시는 분이 관객들 사이에서 훨훨 춤을 추면서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에게 함께 인사를 드린 후 필자는 찻상 앞에 앉아 차를 우렸다. 찻상은 미리 차려져 있었다. 이날 차를 우려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목례를 한 후 “차를 올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먼저 했다. 그런 다음 가장 먼저 한 동작이 퇴수(退水) 잔을 뒤로 물리는 것이었다. 화로 위에 물을 끓이는 탕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상 아래에 놓인 다건(茶巾·네모지게 작게 접혀 있음)을 양손에 잡고 뚜껑을 열어 탕 그릇 아래에 놓인 나무접시에 내려놓았다.
이제 찻상에 덮어놓은 상보(床褓)를 걷어야 한다. 팔을 뻗어 양손으로 덮여있는 보의 가운데를 잡고 필자의 무릎 사이로 가져와 반으로 접은 후 길이도 반으로 접어 오른쪽에 있는 퇴수 잔 뒤에 살며시 놓았다. 다음 동작으로 다관(茶罐·차를 넣어 우려내는 주전자 및 그러한 용도의 그릇) 뚜껑을 열어 찻상 아래로 내려놓고, 오른쪽에 놓인 표주박으로 물을 떠 물을 식히는 그릇에 두 번 부었다. 이 그릇을 대개 다완(茶碗)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다완은 차사발을 의미한다.
여하튼 그런 다음 왼손에 다건을 들고 오른손으로 물이 든 그릇을 들어 다관에 부었다. 다관의 뚜껑을 닫은 후 다관을 오른손으로 들어 필자의 찻잔과 접대할 손님들 찻잔에 차례로 물을 부었다. 찻잔을 데우기 위함이었다.
다시 다관의 뚜껑을 연 후 표주박으로 물을 두 번 떠 물을 식히는 그릇에 따랐다. 이 그릇의 물을 다관에 옮겨 부었다. 그런 다음 차호(茶壺·차를 넣은 자그마한 항아리)에서 차를 옮겨 담을 손잡이가 없는 차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잡아 배꼽까지 가져온 후 왼손바닥에 올려 숟가락의 배가 위로 보도록 한 후 차호 뚜껑을 열었다. 차호를 가져와 차 숟가락에 돌리면서 차가 나오도록 해 담았다. 그 다음에 차가 든 숟가락을 양손으로 다관 위로 가져가 부었다. 다관 뚜껑을 닫고 차가 우려지도록 두고 찻잔에 든 물을 퇴수 잔으로 옮겨 부었다. 이때 왼손에는 다건을 든 상태였다. 퇴수 잔으로 가져온 물을 오른손으로 부은 후 바로 다건을 든 왼손으로 오른손과 양쪽으로 찻잔을 들어 원위치로 가져다 놓았다. 같은 동작으로 찻잔 세 개를 원 위치 시킨 후 다관을 오른손으로 잡아 차를 찻잔에 따랐다. 이때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다관 뚜껑을 누르고 다른 네 개의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잡아 필자의 찻잔부터 차를 따랐다. 상석(上席)의 손님 찻잔에 가장 늦게 차를 따랐다.
이제 찻잔을 손님들 찻상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자의 찻상에서 낮고 작은 상으로 찻잔을 옮겼다. 이때도 동작을 주의해야 한다. 찻상 아래에 있는 찻잔 받침대를 들고 필자의 잔부터 잔 받침대에 옮겨 찻상 아래에 놓는다. 그런 다음 손님의 찻잔을 잔 받침대에 옮겨 작은 상 위에 놓는다. 이어 상석 손님의 잔도 같은 동작으로 작은 상위로 옮긴다. 이 동작에서도 찻잔 받침대가 필자의 찻상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작은 찻상을 들어 손님들에게 가져갈 다동(茶童)이 없어 선비인 필자가 직접 했다. 작은 찻상을 손님들 쪽으로 가져가 손님들 찻상으로 찻잔을 옮겼다.
찻잔이 손님들 앞에 다 놓아진 후 팽주인 필자가 목례를 한 후 “차를 드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그런 후 손님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손님 한 분이 “차가 맛이 있습니다.”라고 하자, 필자는 “과찬이십니다.”라며 겸손의 예를 올렸다.
차를 다 마신 후 담소가 끝나자 필자가 차를 물렸다. 손님들의 찻잔을 작은 상으로 옮겨 필자의 찻상으로 가져와 빈 찻잔을 찻상에 올렸다. 찻상 보를 걷을 때의 반대 동작으로 찻상 위를 덮은 후 물을 끓인 탕 그릇의 뚜껑을 덮었다. 그런 다음 가장 마지막 동작으로 퇴수 잔을 원위치로 옮겼다. 이제 선비차 다례 시연이 끝났다. 그동안 대금 연주와 학춤 추기는 같은 무대에서 계속 진행됐다.
다례 시연이 끝난 후 필자를 포함한 선비 두 분과 대금 연주자·학춤 춤꾼, 김애숙 대렴차문화원장 및 홍순창 한국차생산자연합회장이 무대로 올라와 함께 객석을 향해 인사를 했다. 이렇게 ‘제19회 국제차문화대전’ 첫날 무대행사 중 하나인 선비차 다례 시연을 마치고 다시 같은 버스를 타고 화개의 집으로 밤늦게 내려왔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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