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열리는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약칭 ‘차사랑’)의 차회(茶會)가 두 달 만에 열렸다.
지난 5월 28일 오후 5시에 화개 섬진강변에 있는 부춘다원(富春茶園)에서 회원들이 모였다. 이번 차회의 팽주(烹主)는 부춘다원의 여봉호(61) 명장이었다. 회원 5명이 매달 돌아가면서 차를 내는 팽주를 하는데, 4월 달은 여 명장이 차를 만드느라 바빠서 차회를 열지 못했다. 세종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대전에서 생활하는 김시형 국장은 바빠 잘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참석했다. 차사랑 회원이 100% 참석한 것이다.
이날 차회가 열리기 전에 필자가 은거하고 있는 목압서사(木鴨書舍)에 백경동 차사랑 회장과 김 국장, 그리고 인천에 사는 백 회장의 대학 친구가 방문했다. 차를 마시다 필자의 차밭에 찻잎을 따러 올라갔다. 땀을 흘리며 한 시간가량 찻잎을 땄다. 김 국장은 대전 인근에 있는 텃밭에 차씨를 좀 심었다고 했다. 지난해 필자가 준 차씨였다.
백 회장의 친구는 산에서 자라는 식물들에 대해 잘 알았다. 그래서 필자는 “‘나는 자연인이다’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 같습니다”라며, 농담을 했다. 그러자 “시골 경험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분은 낫으로 필요 없는 두릅과 억새 등도 잘라내었다.
산에서 내려와 딴 찻잎을 채반에 늘어놓은 후 차회 장소인 부춘다원으로 갔다. 고향인 악양 평촌마을에 집을 지어놓고 주말에 내려오는 신판곤 대표도 왔다. 경기도 용인에서 “어젯밤에 왔습니다”라고 했다. 부산에서 온 백 회장의 대학 친구 두 사람이 더 참석했다. 또 악양에서 차를 만들며 수행을 한다는 여성 차인 한 분도 참석했다. 차를 마시다 화개면 소재지에 있는 두부요리 전문 식당인 ‘콩사랑 이야기’로 모두 옮겨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와 다시 부춘다원으로 가 본격적으로 차를 마셨다. 부춘다원은 차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어서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차를 우려내면서 여봉호 명장은 참석자들과 차를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부춘마을 출신인 여 명장은 주로 발효차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형제봉에 쌍봉 묘가 있던데 누구의 것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 명장은 “예전에는 형제봉 바로 아래까지 사람이 살았다. 아마 형제봉 인근에 살던 사람이 쓴 무덤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형제봉은 부춘마을 위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 정상은 1,000m가 넘는다. 여기에 서면 장엄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이어 부춘다원에 차 만들기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만든 녹차를 내놓았다. 아홉 번 덖은 차라고 했다. 당일치기로 멀리서 와 찻잎을 따 덖은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야게(맛내기)’가 덜 되었지만 그래도 맛이 좋았다. 여 명장은 “1인당 1kg이하로 따게 하고, 참가비는 1인당 5만 원을 받는다. 사람이 10명이 되지 않더라도 팀당 50만 원을 받는다. 부탁을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만 사실은 귀찮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차, 저 차 마시다 나중에는 구지뽕 차와 비트 차도 마셨다. 여 명장이 워낙 다양한 차를 만들고, 또 이날 여러 차를 내놓아서 그야말로 배가 부르도록 차를 마셨다.
저녁 8시 반쯤 공식적인 차회를 마치고 부춘다원에서 나와 헤어졌다. 섬진강의 밤 모습을 보는 느낌이 좋았다. 백경동 회장은 친구들과 화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찻집인 ‘녹향’에 가 차를 한 잔 더 마신다고 했다. 녹향 주인인 오신옥 차인의 남동생이 백 회장의 친구라고 했다. 필자는 집으로 와 연빙재(淵氷齋)에 앉아 차를 한 잔 더 마셨다. 그런데 밤 10시 반쯤에 백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함께 숙박하기로 한 펜션에 늦게 간 탓에 방이 없습니다. 연빙재에 가 하룻밤 자도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누추하지만 오세요. 여기서 주무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며칠 전 백 회장이 “차회 마치고 친구들과 연빙재에서 하룻밤 자도 됩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필자의 큰 아들이 “친구 세 명과 함께 금요일(27일)에 가 놀다 일요일(29일) 오후에 올라갈 것”이라고 미리 예약을 해놓았다. 그 내용을 백 회장께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차회 전날 큰 아들이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일이 생겨 다음에 가야겠다.”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차회 당일 백 회장께 “아들이 일이 생겨 오지 못하니, 연빙재에서 주무시라.”고 말하니, “이미 펜션에 예약을 해놓았습니다.”라고 답했던 것이다.
좀 있으니 백 회장 일행이 도착했다. 백 회장 등이 낮에 찻잎을 딴 게 있어 “혹시 찻잎 비비는 체험 해보시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마침 다른 분이 “차를 만들 때 같이 좀 부탁드립니다.”라며, 찻잎을 맡겨 놓은 것도 있었다. 백 회장과 친구들은 찻잎을 비볐다. 잎이 커 손으로 비비는 게 쉽지 않았다. 다 비비자 연빙재 방바닥에 늘어놓고 불을 올렸다. 필자가 “찻잎 냄새가 나는데 주무실 때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백 회장 일행은 “괜찮습니다. 찻잎과 함께 자는 영광을 누려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두 달 만의 차회는 막을 내렸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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