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7일. 올해 첫 찻잎을 따 ‘손 덖음차’(手製茶)를 만들었다.
어젯밤에 춥게 자 아침에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찻잎을 딸 채비를 하고 차산으로 올라갔다. 햇빛이 강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찻잎이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차밭이 높은 곳에 있는 데다 나무 그늘이 많아 잎이 늦게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농협에서는 지난 11일부터 찻잎을 수매하고 있다. 저 아래 섬진강 변의 부춘·상덕·영당마을 등 빠른 데는 열흘 전부터 찻잎을 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가을부터 필자가 낫 하나로 차산을 깔끔하게 정리를 해놓아 차밭을 이리저리 오르락내리락 다녀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뙤약볕 아래를 헤매고 다니다보니 목이 많이 말랐다. 다행히 오늘은 마실 물을 갖고 산에 올랐다. 점심때가 되어도 집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잠시 쉬면 그대로 곯아떨어질 것 같아 그냥 찻잎만 따기로 했다. 이유 불문하고 오늘 1kg을 따야만 했다.
차산을 서너 번 훑었다. 낙엽이나 잘라놓은 가느다란 잡목을 밟아 미끄러지기도 했다. 오후 4시반가량 되니 가슴에 맨 찻잎이 불룩한 느낌이었다. 피곤해도 조금만 더 따면 목적한 1kg은 될 것 같았다. 오른쪽 엄지손톱으로 찻잎을 꺾다보니 손톱 밑이 검게 변했다. 찻잎 딸 때 ‘녹색의 냄새’라고 할까? 차나무에서 찻잎을 딸 때 나는 독특한 내음이다.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분 좋은 초록의 내음으로 풀에서 나는 내음과는 전혀 다르다.
차산을 훑으면서 미처 꺾지 못해 벌써 쇠어버린 고사리가 보이면 손으로 꺾거나 뽑았다. 오후 5시반경에 차산에서 내려왔다. 해질 때가 가까워지니 말벌의 개체수가 늘어나 따라다니면서 필자의 머리 주변을 빙빙 돌아 겁이 나기도 했다. 정말 힘들게 예상했던 양 만큼 찻잎을 땄다. 집에 와 라면을 한개 끓여 먹고 잠시 쉬었다. 차 덖는 작업은 저녁 8시부터 할 생각이었다.
지난 3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황토로 차솥을 두 개 걸었다. 지난 해 2월 아래채와 창고에 불이 나는 바람에 차솥을 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차솥을 새로 건 후 오늘 처음 제대로 차를 덖는 것이었다. 오후 7시 반부터 차를 덖을 준비를 했다.
8시가 돼 차솥 아래에 불을 넣고 마른 수건으로 사용할 차솥을 여러 차례 닦았다. 그런 다음 뜨거워진 차솥 안에 굵은 찻잎을 넣어 덖으면서 솥 구석구석에 차 냄새가 스미도록 했다. 차솥의 온도가 300도가 넘었다고 생각될 무렵 찻잎을 솥 안에 넣었다. 찻잎의 양이 적더라도 덖어 완성된 차로 만드는 과정은 똑 같다.
여러 차례 덖는 과정에서 첫 덖음이 중요하다. 김장할 때 배추의 숨을 죽이듯 녹차도 마찬가지로 숨을 죽인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살청(殺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300도가 넘은 아주 센 불에 차를 덖어 숨을 잘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솥에서 꺼내어 비비는 작업이 순조롭다. 맛 또한 첫 덖음에서 결정된다고 할 만큼 의미가 크다.
손으로 첫 덖음 작업을 한 후 솥에서 빨리 찻잎을 꺼내 흩어 늘어야 한다. 솥에서 달구어진 찻잎의 열기를 식힌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발효가 될 수 있다. 식힌 후 손으로 비빈다. 첫 비빔에서 야무지게 잘 비벼야 한다. 손으로 수건이나 양말을 비벼 빨듯이 비비다가 찻잎을 나누어 원으로 또 비빈다. 그래야만 골고루 비벼진다. 비비는 이유는 찻잎에 상처를 내 차로 마실 때 잎 속에 든 녹차 성분이 잘 우러나오도록 하는 데 있다. 찻잎의 양이 많을 경우 유념기로 압착을 해 비비면 손으로 비비는 경우보다 녹차 성분이 더 잘 우러날 수 있다. 그래도 손으로 비벼야만 차를 만드는 자긍감이 훨씬 더 강하게 든다.
제대로 잘 비벼졌다는 생각이 들면 솥 안에 다시 넣는다. 여전히 불은 고온을 유지해야 한다. 6년 전 차솥을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만드는 전남 순천의 한 공업사에 가 100만 원을 주고 만들어 왔다. 그래서인지 일반 차솥보다 솥 안의 열기가 금방 식지 않고 오랜 시간동안 보존이 잘 되었다.
살청 작업이 생각보다 어렵다. 두 번째 덖는다. 두 번째 덖음은 첫 덖음보다 시간이 짧다. 이미 찻잎의 숨이 죽어있고 기본적으로 비벼져 있기 때문이다. 솥에서 꺼내 두 번째 비빈다. 비비는 방법은 첫 번째 비빌 때와 같다. 그런 다음 다시 솥에 넣고 다시 덖는다. 덖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덖는 시간은 줄인다.
이러한 방법으로 덖고 비비기를 다섯 번 하고 나면 찻잎이 조금씩 부서져 가루가 생긴다. 차를 덖는 횟수는 덖을 때마다 다르다. 찻잎이 머금고 있는 수분의 양과 덖을 찻잎의 양, 그리고 솥의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여섯 번째 덖은 다음에는 솥에서 꺼내 아주 살짝만 비비고 찻잎이 엉기거나 뭉쳐있는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털어준다. 그렇게 아홉 번을 덖었다. 솥에서 꺼내 찻잎을 펴 잠시 늘어놓았다. 손에는 차 덖을 때 나는 녹차 내음이 진하게 배어있다.
이렇게 덖어 차를 만들면 양이 아주 적어진다. 양이 적어 바로 1차 ‘시야게’(맛내기)를 하기로 했다. 먼저 건조를 시킨 후 ‘시야게’를 하기도 한다. 솥이 아직 뜨거워 불을 껐다. 그 상태에서 2시간가량 ‘시야게’를 했다. ‘시야게’를 하는 방법은 찻잎 위에 손을 대고 솥 안에서 골고루 열을 받도록 빙빙 돌려준다. 그러면서 한 번씩 두 손으로 찻잎을 뒤집어 준다. 양이 적으므로 사흘 정도 만든 차를 모아 전체적으로 ‘시야게’를 한 번 할 생각이다. 이제 건조만 시키면 오늘 손 덖음차 만드는 작업은 일단 마무리 됐다. 자정이 다 되었다. 완성된 차를 저울에 달아보니 120g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찻잎을 따 밤새도록 만들어도 차 한 통 정도 나왔다.
이제 이곳 화개에서도 이처럼 손 덖음차를 만드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살청기와 유념기로 쉽고 간편하게 만든다. 더구나 필자처럼 직접 차나무 가꾸기에서부터 손수 찻잎을 따 손으로 덖고 비벼 차를 만드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이 찻잎을 따 파는 것을 구입해 쓰거나 농협에 가 수매 한 것을 구입해 차를 만든다. 필자처럼 무식하게 차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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