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아침 7시 약간 못 돼 차산에 올라갔다. 고사리가 조금 올라와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겨울부터 계속 가물다가 며칠 전 비가 내렸고, 화개 십리벚꽃길에 꽃이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날도 추워 벚꽃 역시 예전에 비해 좀 늦게 피었다.
고사리가 일찍 올라오는 자리를 대충 알고 있기에 둘러보니 보이질 않았다. 고사리가 올라오는 장소가 넓지 않아 돌아다니며 보니 그래도 한두 개씩 보였다. 완전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꺾었다. 그러면서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낫으로 잘라놓은 억새 등 잡초들이 바람에 날려 차나무를 덮고 있는 게 있어 걷어 정리를 하였다.
지난해인 2021년에는 3월 19일에 첫 고사리를 채취했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10일이 늦었다. 또 지난해에 비해 양도 적었다. 키 큰 고사리는 겨우 한 두개였다. 고사리가 올라오는 장소를 다 돌아다니며, 억지로 따도 어른들 말로 ‘한 움큼’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주 금요일인 3월 25일 오전에 차산 정리를 모두 마쳤다. 그날 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비가 내리고 나면 고사리가 올라올 것 같아서 며칠 무리하게 차산의 남은 곳들까지 다 낫으로 베어내고 정리를 했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차산 정리를 시작했다. 해마다 봄에 고사리가 올라오기 직전에 기가 막히게 시점을 맞추어 정리를 마친다. 지난해 차산 오른쪽 위로 칡넝쿨을 많이 잘라냈는데, 올해도 여전히 숱하게 엉켜 있었다.
올해는 차산에 묵은 고사리며 억새, 가시, 칡넝쿨 등이 가장 많았다. 오늘 산을 돌아다니며 잘라놓은 억새 등에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그리곤 내려와 병원에 갈 준비를 하였다. 화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시 45분 부산행 버스를 탔다. 오늘 동아대병원에 3, 4개월에 한 번씩 가 검사를 받고 약을 타는 날이다. 마침 오늘 부산에서 귀한 손님들이 화개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데, 함께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가야했다. 진료를 보는 곳이 한 군데이고, 다른 검사가 없다면 날짜를 연기를 좀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 손님들 마중을 할 것인데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병원에 가면 채혈을 해야 하고, 심혈관센터에서 심전도검사도 예약이 돼 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접수하고 채혈을 한 후 순환기내과에 가 심전도검사를 받았다. 그런 다음 순환기내과 김무현 교수님에게 진료를 받은 후, 내분비내과 서성환 교수님에게 당뇨 관련 진료를 받았다. 당뇨수치가 또 올랐다.
심장약과 당뇨약, 고지혈약은 그대로 먹지만 콜레스테롤 약은 더 추가 되었다. 진료비도 오르고 약값도 올랐다. 병원 밖 참조은약국에서 약까지 타고 나니 시간이 오후 3시 반 가까이 되었다.
배가 고파 주로 가는 인근의 ‘할매집밥’ 식당에 가니 문이 잠겨있었다. 할 수 없이 그 아래 있는 ‘밀양국밥’집에 가 돼지국밥을 시켜 먹었다. 배가 고파다 보니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돼지국밥을 먹어 속이 좀 느끼해 국밥집 옆에 있는 카페 ‘FLUE 800'에 가 아메리카노를 진하게 달라고 해 한 잔 마셨다. 시간이 어중간해 다른 일을 볼 수 없었다.
커피를 급하게 마신 후 도로를 따라 내려가 버스정류소에서 15번 버스를 타고 사상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오후 5시30분 하동 화개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채혈 때문에 아침부터 굶고 오후에 돼지국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그 인근을 배회하다가 호두과자를 파는 곳이 있어 작은 것 한 봉지를 샀다. 화개로 오면서 버스 안에서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요즘 코로나 탓에 버스 안에서 음식물 섭취를 못하게 했다. 돈 주고 산 것이어서 먹고 버스를 타야 했다. 식으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미널 주변을 배회하면서 아이들처럼 봉지를 들고 다니며 먹었던 것이다. 그러니 뱃속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여하튼 그렇게 화개까지 와 집에 도착하니 밤 9시 가량 되었다. 매번 그렇지만 부산에 갔다가 오면 많이 피곤하다. 배가 고프지 않아 밥은 먹지 않고 저녁약을 먹은 후 녹차를 마셨다. 녹차를 마셔야만 속이 좀 가라앉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부산에는 초여름 날씨였는데 화개는 그렇지 않았는지, 아침에 마당에 내어놓은 고사리가 완전히 다 마르지 않았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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