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원칙이 있고 철학이 있다. 세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도 각양각색이다. 거기에는 개별적으로 세상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이치도 있고, 흔히 집안에 내려오는 ‘피’, 즉 유전적 요소도 작용한다.
모두(冒頭)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필자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요즈음 필자는 차산에서 살다시피 한다. 차산이라고 하면 대개는 예쁘게 잘 다듬어진 비탈의 차밭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의 차산은 6년째 차밭으로 개간하고 만드는 과정에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2017년 초에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목압마을에 들어와 낫을 들고 차산에 올라갔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잡목과 필자의 키보다 더 큰 차나무, 덩굴식물과 각종 가시들이 엉켜 정글을 이루고 있어 차밭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예전에 부산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마방지마을에서 배 농사를 지을 때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으려고 마을 변소를 죄다 퍼 빈 페인트 통에 담아 양손으로 들어 옮겼다. 곡괭이로 배나무 주변을 빙 둘러 파 돌 등을 꺼낸 후 변소에서 퍼온 똥물을 부었다. 그런 다음 흙을 덮어 그 위에 다시 소똥을 옮겨와 덮었다. 배 밭은 집 뒤 산에 있었다. 배 밭에 자라는 억새와 잡풀도 출근(당시 국제신문 근무)하기 전에 아침 일찍 낫으로 한바탕 베었다. 예초기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자면 필자는 요령이나 잔머리가 없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필자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비록 몸이 고되지만 자연친화적인 농사방법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지금 차산도 마찬가지의 신념을 갖고 가꾸고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좌(證佐)이다. 앞에서 유전적 요소라고 말한 부분과 연관이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성징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정과 이해득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견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신 분들이다. 그러다보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있는 것도 속고 사기 당해 모두 다 날리고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적자인생을 사셨다. 필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여하튼 다시 차산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엊그제 필자의 집 조금 아래에 사는 복오리민박집의 김갑득(67) 사장님이 “아이, 차밭을 손으로 일일이 그렇게 해서 언제 다 하겠소? 예초기로 싹 밀어버리지.”라고 말씀하셨다. 필자의 차산과 이어지는 산에서 고사리를 재배하기 때문에 가끔 필자가 낫으로 시나브로 일하는 모습을 보시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생각과 방법이 각자 다르다.
올해는 억새풀이 더 많이 번져 온 차산 곳곳에 그 허연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차밭을 유지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 감상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낫으로 잘라낸다. 하도 키가 커 보통 세 등분으로 자른다. 한 무더기 자르고 나면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을 헐떡인다. 봄·여름에 조금 돋았을 때 한 차례 잘랐다. 그런데도 또 자라 물기 마른 겨울철에 다시 잘라낸다.
억새풀은 그렇다 치고 잡목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처음 2, 3년간은 잡목을 지켜봤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다. 혹여 약재 나무이거나, 고로쇠나무이거나, 필요한 나무는 아닐까 싶어서였다. 가끔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차산에 올라가 “이 나무는 어떤 것입니까?” 여쭤봐 “쓸 데 없어. 베어버려.”라고 지적해주시는 잡목들을 베어냈다. 잡목이라도 조금 큰 것들은 그냥 둔다. 차밭이지만 다른 나무들도 있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잡목 배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겨울철에 해야 한다. 물기가 없어야 쉽게 벨 수 있다. 물론 톱으로 일일이 벤다. 아마 그동안 톱 대여섯 개는 버렸다. 아주 작은 것은 단조품 낫으로 몇 번 쳐 잘라낸다.
그리고 가시나무와 차밭을 덮고 있는 쇤 고사리를 베어낸다. 차나무도 아래 차밭은 필자의 대퇴부 정도 높이, 위 차밭은 허리 정도 높이로 키를 많이 낮추었다. 그 외에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해야 오는 4월 찻잎 채취할 때 겨우 마무리 한다. 찻잎을 따지 못해 차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차밭은 관리를 해야 한다. 한 해만 차밭을 묵혀도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필자의 차밭에 올라왔던 고고 동창이 “야, 다른 차밭은 예쁘게 잘 가꾸어져 있던데 네 차밭은 좀 엉성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화개동천 계곡 가 밭에서 가꾸는 차밭은 차나무를 계획적으로 일렬로 심고 기계로 깎아 가지런하지만, 필자의 차밭은 상황이 다르다. 마을 뒤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파른 야산인데다 오래 전에 누가 차씨를 심은 것인지, 아니면 자생한 것인지 모를 차나무가 무질서하게 있었다. 필자가 차밭 사이로 길을 내고 일렬로 조금씩 다듬어 이제야 차밭 모양이 조금 난다.
벌써 차밭에 있는 매화나무가 봉오리를 맺었다. 아마 얼마 있지 않아 아주 추운 날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매화꽃을 좋아하는 필자는 꽃을 보기 위해 나무 가지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키우고 있다.
기온이 낮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차산에서 종일 혼자 억새풀 자르고, 잡목 베고, 차나무 웃자란 것 정리한다. 동지가 지난 요즘 오후6시쯤 어둑해지면 산에서 내려온다. 내려올 때도 그냥 내려오는 게 아니라 지난해 베어놓은 잡목들 묶어서 지고 내려온다. 목압서사 아래채인 ‘연빙재(淵 氷齋)’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땔나무로 쓰기 위함이다.
차산에 올라와 있으면 마음이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하다. 어제 필자와 동갑인 벗과 이야기를 나누다 “더도 말고 한 여든까지만 차밭을 가꾸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낫질을 하면서 오롯이 이것저것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차밭이기 때문이다. 더 원론적으로 필자는 일 하는 걸 좋아한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t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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