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93) - 화개 예술인들, 경남 고성 ‘동시·동화나무의 숲’ 나들이
고성시외버스터미널 앞서 화개 예술인들 합류
'동동숲'에 가 배익천 동화작가 안내로 숲 산책
매화, 목련, 수선화 등 꽃 피어...10년간 숲 가꿔
조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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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8 15:33 | 최종 수정 2022.03.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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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오전 9시 못 되어 필자는 부산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남 고성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비는 1만1000원이었다. 전날 부산에 볼 일이 있어 화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시45분 버스로 부산으로 갔다. 일을 보고 남천동 여동생 아파트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고성으로 가는 버스는 남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가 잠시 쉰 후 고성 배둔터미널에 들러 손님을 내려주고 고성터미널에 오전 10시 30분경에 도착했다. 필자가 은거하고 있는 하동 화개에서 예술인들이 타고 오는 차에 합류하기도 되어 있었다. 전화를 하니 “이제 하동”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 고성 송학동 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가야 또는 고자국으로 불리던 정치체의 왕릉급인 이 고분을 동아대박물관이 발굴을 할 때 국제신문 기자였던 필자는 당시 박물관장이던 심봉근 교수와 몇 차례 이곳으로 와 취재를 한 덕에 특종을 하였다. 송학동 1호분은 남북으로 쌍분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에 봉토로 연결하여 마치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방후원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전방후원분은 아니었다. 취재를 하던 당시의 생각들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고분을 둘러본 후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나무판매장으로 갔다. 고성산림조합에서 키운 나무들을 전시해 팔고 있었다. 고성군 대산면에 있는 ‘동시·동화나무의 숲’(이하 동동숲)에 가 식수를 할 나무를 한 그루 구입할 생각이었다. 백도봉숭아나무가 눈에 들어와 샀다. 구례 5일장에서 필자의 집 텃밭과 차산에 심을 나무를 몇 그루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이곳에서 그냥 구입하기로 했다. 호두·홍시·자두·밤나무 등을 구입해 양손에 들고 가 버스터미널 앞에서 기다렸다. 차가 도착하자 합류해 우리나라 대표 동화작가인 여동(如湩) 배익천(裵翊天·73) 선생이 운영하는 동동숲으로 갔다.
동동숲에 도착하여 필자의 집 위쪽인 화개 목통마을에 거처하고 있는 신애리(63) 시조시인 등이 식사 준비를 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 송정욱(66) 어린이도서관장이 고성 거류초등학교 문해교실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문해교실의 담임이기도 한 송 관장은 이곳 대산면 출신으로 대산면장과 고성군청 과장으로 퇴직한 후 동동숲에서 몇 년째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담임으로 있는 문해교실에서는 지역의 문맹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을 깨우치게 해 시와 산문, 일기를 쓸 수 있도록 가르친다. 그 어르신들이 만든 문집을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38년간 근무한 신애리 시인은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 제목의 초등학생들의 시조집 10여 권을 동동숲에 기증했다. 신 선생은 근무했던 여러 초등학교의 아이들에게 시조를 가르쳐 해마다 학생들의 시조집을 발간한 것이다. 신 시인이 여동 선생에게 이 시조집 발간 이야기와 곧 자신의 수필집을 발행한다는 이야기를 한 후 동행한 거문고 연주자인 율비 김근식(70) 선생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 몇 곡을 불렀다.
페인트칠을 하다 왔는지 옷에 페인트 자국이 많이 묻은 송 관장은 “도서관 위쪽에 어린이들을 위한 별도의 도서관을 짓는 중인데 일 하러 가야 한다”며 먼저 나갔다. 여동 선생은 우리 일행을 데리고 2만6천 평의 숲을 안내했다. 숲은 여동 선생과 이 숲을 구입하는 데 예산지원을 한 감로(甘魯) 홍종관(洪鐘寬·74) 선생과 감로 선생의 부인인 예원(藝園) 박미숙(朴美淑·65) 선생이 10년 동안 삽과 곡괭이 등으로 소위 ‘노가다’를 해 일구고 있다. 부실한 필자도 지난해 잠시 이곳에서 일을 돕다 허리를 다쳐 애를 먹은 적도 있다. 감로 선생과 예원 선생은 부산 수영구 민락동 바닷가에서 방파제 횟집을 운영해 얻는 수익금을 이 숲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산에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내고 그 옆으로 동백나무와 맥문동, 편백 등을 심어 놓았다. 심어놓은 곳곳에 목련과 매화가 피어 있었다. 여동 선생은 “꽃이 좋은 산복숭아를 많이 심었다”며, 산 전체에 심어놓은 산복숭아를 가리켰다.
동동숲을 찾는 방문객들을 위해 여동 선생과 감로 선생 등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지는 필자가 잘 알고 있다. 여동 선생은 “저 아래 마을에 있는 동백나무에서 씨가 떨어져 아기 동백이 많이 자라 주인 할머니에게 5만 원을 주고 얻어와 심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에 저승사자가 와 나를 데려가려고 한다면 이 동백들이 자라 피기 전에는 안 된다고 말 할 것”이라고 해 모두 웃었다.
필자가 미안할 정도로 여동 선생은 터가 좋은 곳을 골라 땅을 팠다. 가져온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필자가 나무 주위를 밟은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숲에 심어놓은 나무와 식물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가 수십 번이나 손에 물집이 터지도록 곡괭이 등으로 만들어놓은 오솔길을 따라 우리 일행은 걸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걷다보니 송 관장이 일하고 있는 곳에 다다랐다. 굴참나무 등을 연결해 자그마한 도서관을 짓고 있었다. 나무를 자르지 않고 모두 살리면서 짓는 중이었다. 송 관장이 알고 있는 목수 몇 분이 수시로 와 자원봉사로 일을 도우고 있다고 했다.
산 위쪽에는 7, 8년 전에 심어놓은 매화 10여 그루가 은은한 꽃을 피워 아름다웠다. 곳곳에 차나무도 많았다. 다 둘러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추위가 느껴져 모두 건물로 내려와 식당에서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셨다. 시간이 어느덧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우리 일행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동동숲을 떠나오는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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