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축년(辛丑年)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인 12월 28일 오후8시에 지리산 화개동 깊은 골짝에 있는 목압서사(木鴨書舍)에서는 남들이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을 자그마한 행사가 열렸다.
목압서사 내 연빙재(淵氷齋)에서 가진 『천자문』 책거리 자리였다. 참석자는 훈장인 필자와 학생인 청계(靑磎) 송승화(宋昇華·40) 화개악양농협 대리 두 사람 뿐이었다.
연빙재는 목압서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에는 ‘목압서사 12월 초청특강’이 있었다. 주제는 ’지리산 유람록‘으로, 필자가 강의를 했다. 지난달인 11월 26일 오후 6시 30분에는 ’팔만대장경과 하동‘ 주제로 최영호 동아대 교수가 특강을 했다.
연빙재 현판 글씨는 장석영(張錫英) 선생의 문인으로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서예가로 활동한 경북 성주 출신의 극암(克菴) 이기윤(李基允·1891~1971) 선생이 쓴 것이다.
『논어』 「태백(泰伯)」편에 보면 “曾子有疾 召門弟子曰啓予足 啓予手 詩云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증자유직 소문제자왈계여족 계여수 시운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소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증자가 병이 들어 (위중하여) 제자들을 불러 말하였다. “이불을 걷고 나의 발을 보라. 이불을 열고 나의 손을 보라. 『시경』에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다가가듯, 얇은 얼음을 밟아가듯’이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일을 면하게 되었구나. 제자들아!>
‘戰戰’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兢兢’은 경계해 삼가는 것이다. ‘臨深淵’은 떨어질까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履薄氷’은 빠질까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증자는 그가 온전히 몸을 보전한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몸을 보전하는 어려움이 이와 같으니 이제 죽음에 이르러서야 몸을 훼손하는 것에서 벗어났다고 말한 것이다.
즉 연빙재 현판은 ‘언제나 깊은 물가에 임한 듯, 얇은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세상살이를 하겠다’라는 다짐의 뜻이 담겨있다.
말이 길었지만 청계는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지난 2월부터 매주 한 주도 빠지지 않고(여름 방학 2주 제외) 천자문 공부를 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여 역사와 한문 등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 있었기에 일반인들보다 공부가 빨랐다. 필자도 대학 사학과 출신이지만 사학과에서 역사와 한문독해를 가르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공부한 기본 내용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청계는 아주 성실하고 학구적인 사람이다. 그동안 길든 짧든 목압서사에서 공부한 사람(어른과 아이들 포함)이 숫자로 따지면 30여 명이 되지만, 그중 청계가 가장 착실한 편이다.
이제 해가 바뀌면 첫 주와 둘째 주는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셋째 주부터 청계와 『소학』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필자와 『명심보감』을 별도로 읽고 있다. 청계의 부모님께서는 청계가 어릴 적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 등의 고전 책을 구입해주시어 한문공부를 하도록 하셨다고 했다. 그런 데다 사학과에서 여러 공부를 하여 사서삼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력과 많은 구절 등을 알고 있다.
청계는 이날 천자문의 마지막 구절까지 다 읽은 후 가진 책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일찍부터 천자문을 접해 왔지만, 나이 40세에 완독을 해 너무 기쁩니다. 천자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 자연에 대한 이해,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할 자세 등 여러 가지를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천자문을 읽었기 때문에 제 삶은 더 유의미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계속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청계의 어머님인 김옥순(金玉順·70) 여사님은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악양정(岳陽亭)에서 음력 4월 15일마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을 기리는 덕은사(德隱祠) 석채의(釋菜儀)의 여유학(女幼學)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어머님께서도 역사와 한문 등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다.
청계는 이어 “천자문에 그렇게 많은 지식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만약 천자문을 완독하지 않았더라면 너무나 억울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밤 11시 반까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연빙재 내부에 있는 화로에는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장작을 가져와 계속 불을 지폈다. 송년회까지 겸해진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필자는 2017년 초에 화개 목압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사차원에서 목압서사를 열어 인문학 강의와 천자문을 비롯해 사서삼경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목압서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강의와 행사는 무료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