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91) - 화개차 홍소술 명인 타계
1958년 화개장터 앞 ‘화개제다’ 설립, 최초 ‘화개 차’ 상품화
평소 “화개 차를 세계 최고의 차로 만드는 게 제 꿈” 소원함
농가에 차씨 나눠줘 심게 해 현재 화개지역 차밭조성 공 커
조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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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9 00:06 | 최종 수정 2022.02.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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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화개차(花開茶)를 처음으로 산업화시킨 ‘화개제다’의 홍소술 명인(농림수산식품부 지정 대한민국 식품명인 30호 죽로차 제조·가공부문)이 8일 오전 0시 8분에 92세로 타계했다. 빈소는 하동병원장례식장(경남 하동군 하동읍 회심길 25), 발인은 오는 10일 오전 8시, 장지는 하동군 공설봉안당인 하동금오영당(진교면 달구지길 95-5)이다.
1931년 경북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출생한 홍 명인은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역이 야생녹차의 원향임을 확인한 후 이곳으로 들어왔다. 1958년 화개장터 앞인 화개면 탑리 원탑마을(현 ‘옛날국밥’ 식당 일원)에서 화개제다를 설립하고, 화개 녹차를 처음으로 산업화·상품화 시켰다.
이후 1960년 화개지역에 야생녹차 밭 1만 평을 확보했으며, 이어 1961년에 제1 공장을 준공했고, 1962년부터는 홍차도 제조해 판매했다. 1965년부터는 수제녹차를 시판했으며, 1975년에는 공장을 증축했고, 아울러 전남 보성지역에 녹차 밭을 조성했다. 1982년에는 보성군 회천면에 제2 공장을 준공했으며, 1990년에는 하동군 악양면에 녹차 밭 2만평을 추가로 조성하는 등 녹차사업을 계속 늘려나갔다. 이미 1960년대에 ‘화개 옥로차’ 브랜드로 일본과 대만, 중국 등에 진출했다.
평소 “화개 차를 세계 최고의 차로 만드는 게 제 꿈”이라고 소원했던 홍 명인은 또 녹차 대중화를 위해 1980년부터 다도 교육장을 운영했으며, 한국차인연합회 고문과 하동녹차발전협의회 회장, (사)한국차생산자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의 녹차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화개제다의 차는 1995년 ‘제15회 차의 날 명차 품평회’에서 ‘1995년 올해의 명차’로, 그리고 ‘한국차인연합회 최우수 명차(名茶) 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하동군 최우수 명차 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중국 국제 명차 대회 은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한국차생산자협회 녹차품평회 우수상’을 수상했고, 무농약 인증을 획득했다. 2006년에는 한국 명차 품평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 산업 포장 수상과 함께 대한민국 식품명인을 인증 받았다. 2012년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2013년에는 일본에서 국제유기농 인증서를 획득하는 등 차와 관련해 많은 상을 받았고, 인증서를 획득했다.
홍 명인이 인정받은 분야는 대나무 숲에서 이슬을 먹고 자란 찻잎을 따서 만든 죽로차의 제조 기능이다. 그가 만든 죽로차는 찻잎이 연하여 솥에서 덖어 비빌 때 그 잎에 미세하게 상처가 나므로 물에서 잘 우러나며, 일반 녹차에 비해 타닌 성분이 적고 맛이 부드러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2년 전부터는 장남이자 화개제다 죽로차 전수자인 홍순창(64·경제학 박사) 한국차생산자연합회 회장과 공동으로 화개제다를 운영해왔다. 홍 명인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홍 명인은 그동안 대중적인 차와 명품 수제차를 함께 생산해 차 문화의 저변 확대에 주력해 왔다. 또한 그는 한국 차 산업을 부흥시키며 화개 지역을 야생차 생산지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도 차 산업이 화개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전통 수제 녹차 명인인 박수근(76) 씨는 8일 홍 명인의 빈소를 찾아 “홍소술 명인은 화개지역에 녹차생산을 이끌었던 분으로 그 공이 지대하다. 그는 당시 소득이 별로 없던 화개지역 개별농가에 차 씨를 나눠주며 심게 해 잎이 올라오면 그것을 수매했다. 홍 명인의 덕분으로 화개지역이 우리나라 차의 본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며, 홍 명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t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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