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살고 있는 화개골 목압마을 버스정류장에서 18일 오후 1시15분 구례행 버스를 탔다. 정금마을과 가탄마을, 화개버스터미널을 거쳐 구례로 갔다. 구례의 지중화선 공사를 하는 탓에 원래는 5일 시장 도로변 축협 버스정류장에 정차했으나 구례병원 방향의 도로가에 세웠다.
5일간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인데다 구례시장은 3·8일에 서는 장이어서 오늘이 추석 전 마지막 장날이었다. 단감과 밤이 벌써 장에 나와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인데다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생각보다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적었다.
대형 주차장에서 장터로 들어서니 뻥튀기를 하는 곳이 옮겨져 있었다. 이전 자리에서 두 사람이 뻥튀기를 했었다. 군에서 배려를 해주었는지 두 사람 다 예쁘게 만들어진 새 점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구례시장 답지 않게 추석 장이 조금 싱겁다고 할까? 추석을 앞둔 장터치고는 흥도 없었고, 물건도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았다. 평소 장날 보다 나아 보이지 않았다. 장날 가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리는 과일가게의 아저씨에게 “많이 팔립니까?” 물어보니, “영 안팔리네요.”라고 말했다. 아마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넉넉하게 가지고 왔는지 과일 박스가 많이 쌓여있었다.
상추와 깻잎 모종을 파는 곳이 있었다. 상추 모종 3천 원어치와 깻잎 모종 2천 원어치를 샀다. 3주 전쯤에는 상추와 양배추 등의 모종을 사, 마당 공사를 하면서 돌담을 따라 만든 자그마한 텃밭에 심어 엊그제 한 번 따 먹은 적이 있다. 매일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며 정성을 기울인다.
조금만 더 있으면 국화꽃을 볼 시기이어서 그런지 꽃을 파는 점포에는 역시 봉오리를 맺은 국화가 많이 나와 있었다. 국화의 종류도 많았지만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3천 원짜리부터 10만 원짜리까지 있었다.
꽃 점포에서 장터 사거리 쪽으로 나오니 할머니 세 분이 누런 호박과 밤, 고구마 줄기 등을 팔고 계셨다. 이 분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신다. 그런데 손님이 영 없었다. 필자를 보고도 “야, 좀 사가소이.”라며, 몇 차례나 권했다.
어물전을 지나면서 보니 냉동된 흑산도 홍어를 마리당 3만 원에 팔았다. 필자는 홍어를 좋아하지만 요리를 할 줄 몰라 입맛만 다시다 지나쳤다. 다른 해물은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해물전은 더 손님들이 없었다. 역시 필자가 지나가니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마다 호객을 했다.
무 모종도 있으면 좀 구입할까 생각했는데, 무 모종을 파는 곳은 없었다. 겨울 무는 씨앗을 심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는 아직 한 번도 심어본 적이 없다. 필자가 오늘 구례장에 갈 때 모종만 사오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후 2시30분에 목압마을로 오는 버스를 타러 축협 앞으로 가니 역시 지중화선 공사로 ‘임시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시오’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대형 주차장을 지나 아까 내렸던 도로 건너기 전 길가에 서 있었다. 임시정류장 표지판이 넘어져 있어 일으켜 세웠다.
오후 2시40분이 되니 쌍계사를 거쳐 신흥까지 가는 버스가 왔다. 이곳에서 필자 혼자서 탔다. 그런데 어디서 탔는지 할머니들이 열 분가량 타고 계셨다. 구례 장에 오시는 할머니들은 필자보다 훨씬 똑똑하시다. 필자는 구례버스터미널과 이곳 사이의 임시버스정류소를 알지 못하는데, 이 할머니들은 어떻게 아시고 타신 것이다. 필자 옆의 할머니께서 구례 토지면소재지에 내리신다 하시어 대신 벨을 눌러 드렸다.
버스는 화개버스정류장에 들어갔다가 나와 가탄마을 방향으로 갔다. 정금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리셨다. 필자는 속으로 ‘저 할머니께서 이 버스가 정금마을을 거쳐 가는지 어떻게 아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여하튼 구례 장을 보시는 할머니들은 필자보다 훨씬 똑똑하시다.
집으로 돌아와 장에서 구입한 상추와 깻잎 모종을 바로 심었다. 텃밭은 얼마 전에 만들다보니 흙은 처음 작물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물론 텃밭 입구 쪽에는 상추와 양배추 등이 조금 심겨있다. 큰 돌들은 가려내었지만, 자잘한 돌이 많이 나왔다. 호미로 일일이 돌을 가려내 후 모종을 심었다. 무를 심을 공간은 남겨놓았다.
얼마 전 심은 상추와 양배추 사이에 상추 모종 30포기를 심었다. 깻잎 모종 10포기는 콜라비 옆에 심었다. 깻잎 모종을 20포기 산 것으로 기억하는데 10포기 밖에 없었다. 아마 파는 아주머니께서 착각을 하신 것 같았다. 필자도 생각 없이 주는 대로 검정비닐을 받아온 것이다. 깻잎 10포기만 제대로 자라도 먹는 데는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기온이 내려가는데 깻잎이 잘 자랄지 모르겠다.
텃밭에 별도의 거름은 하지 않고 녹차 마신 잎 찌꺼기와 과일 껍질 등을 뿌려 놓은 정도이다. 여하튼 모종을 다 심은 다음 물을 주었다. 그런 다음 저녁에 먹을 상추와 양배추 잎을 조금 뜯었다.
집안에 들어오니 서재 창 바깥으로 우리 집 고양이 네 마리가 다 모여 있었다. 필자가 2017년 봄에 목압마을 이 집으로 들어올 때부터 성인 고양이로 있던 ‘할매’, 그 후 태어난 ‘노랭이’가 두 번째 낳은 새끼들인 ‘순디’와 ‘순돌’이, 그리고 어릴 때 부모도 없이 우리 집에 와 눈칫밥을 먹으며 자라 얼마 전 순디의 새끼 3마리를 낳은 ‘점돌이’다.
착한 할매는 이제 늙어 몰골이 좀 그렇고, 이빨이 좋지 않아 먹는 게 수월하지 않다. 순디와 순돌이는 형제간 우애가 너무 좋고 순하기 이를 데 없다. 점돌이도 깔끔한 데다 예쁘고 정말 착하다. 점돌이는 아래채 기와지붕 사이에 새끼를 낳아 최근에 아랫집 어디로 옮겨놓았다. 얼마 전 밤에 집에 새끼들을 데리고 왔다가 키울 공간이 마땅찮은지 다시 데리고 갔다. 자신은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 새끼들을 수유하고 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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