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점심 무렵 부산에서 정말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 ‘부산고전연구회(釜山古典硏究會)’의 교백(校帛) 조양숙(曺良淑·71) 회장님과 유재(遊齋) 이동춘(李東春·72) 고문님 등 세 분이 지리산 화개골에 있는 목압서사를 방문하셨다.
낮12시쯤에 목압서사에 도착하시어 발효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 유재 선생님이 정리하여 편한 『명심보감강설』을 목압서사로 보내셨다. 그 책에 교백 선생님의 사진과 약력이 함께 실려 있어 필자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유재 선생님과의 몇 차례 통화에서 간단 간단하게 교백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교백 선생님은 부산고전연구회를 만들어 고전, 특히 그중에서도 유교경전인 사서(『대학』·『논어』·『맹자』·『중용』)를 위주로 시민강좌를 하고 계신다. 그 사이 사이에 『명심보감』과 『소학』 등을 강의하신다. 유재 선생님이 필자에게 보내신 『명심보감강설』은 그렇게 공부하신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드신 것이다.
교백 선생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면 일찍이 고전인문학에 뜻을 두고 회산(淮散) 이태수(李泰洙) 교수님과 자곡(慈谷) 김민한(金玟漢) 교수님께 사사하신 후 1998년부터 부산고전연구회에서 한자 부수,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추구(推句)』, 『계몽(啓蒙)』 등 기초공부에서부터 사서를 23년째 강의하고 계신다. 그동안 『추구강설(推句講說)』·『계몽편강설(啓蒙篇講說)』·『이야기 논어강설 Ⅰ·Ⅱ·Ⅲ』·『대학·중용강설』, 그리고 이번에 『명심보감강설』 등을 엮으셨다.
그동안 교백 선생님은 4서를 네 차례 강의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아이고, 정말 대단하십니다”라며, 그 노고 및 지식에 경의를 표했다.
그동안 유재 선생님은 부산고전연구회에서 공부하신 사서 중 『맹자』를 제외한 『대학』·『논어』·『중용』을 정리해 책으로 내셨다. 그 외에 유재 선생님이 동아대학교에 재직하실 때 교직원 동아리인 서예반에서 서예와 한시를 배웠는데, 그때 배운 한시의 내용 역시 정리해 책으로 펴낸 『한시강설(漢詩講說) 2·3·4』 세 권을 갖고 오셨다. 유재 선생님께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열정과 성실함에 감복했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유재 선생님은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공대학장과 산업정보대학원장, 교무처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셨다. 교외 활동으로는 대표적으로 대한인간공학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지금은 공학회 고문을 맡고 계신다. 동아대에서 2014년 퇴임하신 후 현재는 동아대 명예교수로 계시면서, 부산고전연구회에서 고전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계신다.
그는 퇴임하면서 동아대 재직 기간 동안의 이력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하여 책을 펴내셨다. 당시 동아대에 근무하고 있던 필자에게도 그 책을 주셨다. 필자는 읽어보곤 “참으로 성실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영국신사처럼 아주 깔끔하고 점잖은 분이다. 학교에 있을 때 필자는 유재 선생님과 함께 회의에도 참석하고, 종종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다.
이날 유재 선생님의 친구 분도 함께 동행하셨다. 목압서사에서는 지난달인 7월 1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 전시회를 갖고 있다. 목압고서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서당의 교재’를 주제로, 목압문학박물관에서는 ‘하동의 대표 작고 문인들’을 주제로 각각 전시회를 열고 있지만 마침 서사 내부 공사로 전시물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차를 마신 후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쌍계초등학교와 쌍계사 매표소를 지나 쌍계사 입구에 있는 수석원식당에서 식사를 할 요량으로 식당으로 향했다가 인근에 있는 ‘하동야생차 박물관’에 가 잠시 둘러봤다.
식사를 하면서 또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재 선생님은 1년 전에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는 “약간 야위기는 했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또 ‘매일 딸집에 가는데 거기서 다헌 선생이 국제신문에 연재하는 글을 읽는다’고 하셨다. 유재 선생님의 고향은 경남 진주시 진성면이다.
교백 선생님은 “조부 때 아주 거부(巨富)였는데, 선친께서 재산을 다 잃으셨다”며, “집에 고서들이 있어 보고 자랐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집안의 그러한 전적들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고전인문학 공부를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교백 선생님은 여성이지만 키가 크고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유재 선생님은 “지금은 서면 영광도서 내에서 수업을 한다”며, “김윤환 회장님과 사진작가이신 사모님과도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필자는 “예전에 제가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시절 그 사모님으로부터 연꽃을 소재로 한 사진집을 얻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식당의 내부와 외부에 전시된 수석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또 나누었다. 유재 선생님은 “우리는 쌍계사를 둘러보겠습니다. 시간 내주시어 고맙습니다.”라고 악수를 건네셨다. 필자는 “제가 오늘 오후 3시 30분에 면소재지에 있는 화개치과에 예약돼 있어 안내를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유재 선생님은 “다음에 오면 1박을 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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