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전(澗田) 이정희 형이 아들 재승(24)과 함께 온다고 연락이 왔다. “점심 전에 도착할 테니 같이 점심 먹읍시다.”라고 했다. 지난 14일 아침이었다.
낮12시 조금 못 되어 함양 마천 조동마을에 거처하고 있는 율전(栗田) 정성기(丁聖起·앞서 쓴 글에 율전의 성(性)을 정(鄭)으로 잘못 썼음)가 먼저 도착했다. 곧 이어 이정희 형과 재승이 도착했다. 집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등을 하고 있는 유명 브랜드인 한샘에 근무하는 재승이는 얼마 전에 이곳 목압서사에 한 번 다녀갔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 말로 외모가 아이돌처럼 생겼다.
정희 형이 닭을 가져와 백숙을 끓여 먹었다. 요리도 정희 형이 직접 했다. 정희 형은 최근에 ‘희야네 푸드코트’라는 식품업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닭을 비롯해 가져온 몇 가지 요리 음식도 그가 취급하는 품목이었다. 본채 앞마당에 테이블을 펴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정희 형이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요리도 잘했다. “예전에 학원에서 함께 학생들 가르치던 여선생님이 전주에서 오기로 했다”고 이야기 했다. 좀 있으니 머리가 허연 남자분이 운전하는 차에 그 여선생님이 타고 오셨다. 지금은 전주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라고 했다. 전주에서 사업을 하신다는 남자분이 여선생님을 “원장님”으로 호칭했다.
점심을 먹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이번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아 날씨가 많이 가물어 계곡에 물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물놀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물이 많아도 물살이 세 좋지 않다.
다들 물에 들어가 계곡에 있는 큰 바위에 앉았다. 정희 형이 “황근희 회장이 손주가 와 있어 망설이다가 결국 오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송담(松潭) 박주동 형도 경기도 광명시에서 온다고 문자가 왔다. 대구에 있는 죽계(竹溪) 이경우도 온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율전은 막걸리 안주로 먹을 전(찌짐)을 사러 갔다. 정희 형은 물놀이를 즐겼다. 이전에는 필자도 함께 물속에 들어갔지만 백신 접종 이후 몸이 좋지 않아 바위에 앉아 햇빛을 즐기며 구경하는 재미로 앉아 있었다.
율전이 막걸리와 전을 구해 왔다. 계곡 속 큰 바위에 앉아 강한 햇빛을 받으며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여 원장님은 성격이 밝고 좋았다. 함께 오신 남자분도 성격이 좋으셨다. 남자분은 원래 고향이 순창인데 계속 전주에서 생활하고 계신다고 했다.
정희 형과 율전은 아예 윗옷을 벗고 물놀이를 즐겼다. 재승이는 물수제비를 떴다. 정희 형은 “이전보다 다슬기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년 전인가, 그때는 정희 형과 물속에서 다슬기를 제법 잡았다. 남자분이 바위를 뒤집어 억지로 다슬기를 한 마리 잡아보였다.
계곡 위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낚시를 했다. 필자는 “저걸로 뭘 잡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낚싯대를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바로 우리 곁까지 왔다. 여전히 낚싯대를 물속에 넣었다 꺼냈다 했지만 물고기는 달려오지 않았다.
두 세 시간을 그렇게 물에서 놀았다. 다른 벗들이 올 때까지 물에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들 집으로 올라왔다. 마당에 테이블을 더 놓고 도재(陶齋) 황근희 회장 등이 도착하면 함께 먹을 저녁 준비를 했다. 역시 정희 형이 주도적으로 했다.
주동 형이 먼저 도착했다. 반가웠다. 주동 형은 거의 2년 만에 보는 것 같았다. 경우도 도착하고 황 회장도 왔다. 집이 공사 중이어서 벗들은 어지러이 널려있는 짐 정리를 해주었다. 아래채에 있는 짐들도 바깥으로 꺼내주었다. 정성기는 집안 아저씨로부터 얻은 현판을 아래채에 새로 걸어 주려다 여의치 않자 “다음에 달아주겠다”라고 했다.
이곳 지리산 화개골은 코로나 19 확진자가 없으나 요즘 워낙 민감한 시점이라 테이블 세 개를 각각 놓고, 2m 사회적 거리도 유지했다. 황 회장은 구미에서 올 때 돼지머리 고기를 많이 준비해 왔다. 고기를 구워 먹으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은 예전만큼 먹지 못했다. 나이도 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정성기는 “내일 사과과수원에 가 일 해주기로 돼 있어 새벽 5시 반쯤 출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고기와 이것저것 먹다 전주에서 오신 분들은 출발해야 한다며 일어섰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두 분은 출발하셨다.
그렇게 노는 사이 해가 지고 점차 어둠이 짙어갔다. 다들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지나간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시절 이야기와 아주 오래 전 모임 할 때 에피소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필자는 앉아 있기에 너무 피곤하여 미안하지만 먼저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정희 형과 재승이는 2층 방에서, 1층 가운데 공부방에는 황 회장 부부가, 1층 책방에는 경우와 율전, 주동 형이 자는 것으로 돼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근래 몸이 좋지 않지만 원래 당뇨 등 피곤기로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은 편이다. 황 회장 부부가 화개장터에 가서 섬진강재첩국을 사 왔다. 필자는 “아이고, 제가 가서 사 와 대접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아닙니다”라고 미안함이 커 말했다. 속이 넓은 황 형은 “누가 하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놀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라고 말했다. 역시 우리 문학회 종신 회장답다. 총무인 목헌(木軒) 박재범 선생은 학교 일이 바빠 오지 못했다. 그는 요즘 진학부장을 맡고 있어 곧 있을 수시 때문에 많이 바빴다.
정성기는 새벽에 떠나고 없었다. 정희 형이 가져와 끓여놓은 소곱창 국도 함께 먹었다. 벗들은 아침을 먹은 후 어제 정리가 덜 된 짐들을 또 치우고 옮겨주었다. 좀 늦은 아침을 먹은 후 경우가 먼저 떠났다. 주동 형이 다리를 절었다. 물어보니 “괜찮습니다. 조금 삐끗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주동 형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갈 길이 멀다며 떠났다. 정희 형과 재승이도 떠났다.
황 회장 부부에게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점심을 먹고 출발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양 면사무소 아래에 있는 목촌 돼지국밥집에 갔다. 거기서 밀면과 만두를 시켜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황 회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니 필자가 어젯밤에 자고 있을 때 주동 형과 경우가 또 재미있는 역사(?)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황 회장은 “이제 그런 에피소드를 그만 만들어도 되는데…”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점심을 함께 한 후 황 회장 부부도 악양에서 바로 떠났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영대글벗문학회 모임을 가지지도 못했다. 근자들어 이번 번개 모임에 조심스러워 하면서 가장 많이 모였다. 전주에서 오신 남자분이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대학 때부터 이렇게 30년 넘게 만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데 다들 대단하십니다”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코로나19 탓에 언제 또 영대글벗문학회 벗들이 다 모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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