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개골짜기 사람들은 찻잎 따느라 정신이 없다. 그동안 날씨가 하도 가물어 찻잎이 예년에 비해 적게 올라온다고들 한다. 그런 것 같다. 필자의 차밭에도 찻잎이 아직 많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필자는 오늘도 차산에서 혼자 찻잎을 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행동이 느리다보니 찻잎을 따는 손 역시 아주 느리다. 지난 해 친구 한 명이 차산에 올라가 함께 차를 따다가 필자의 손동작을 보고 “슬로우 비디오 찍는 것 같다”라고 놀려댔다. “찻잎을 전문적으로 따는 할머니들 10잎 딸 때 한 잎 정도 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찻잎을 따 파는 분들은 양을 늘려야 하므로, 섬세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빠르게 딴다. 하루 일당 받고 어느 다원에서 찻잎을 따는 분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필자와 차를 대하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주 곱게 찻잎을 딴다. 그러면 필자가 찻잎을 따는 방식을 한 번 이야기 해보겠다. 찻잎을 따는 방식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참고로 하면 된다.
①오른쪽 엄지손가락 손톱으로 찻잎을 꼭 눌러 끊어서 딴다. 그렇게 해야만 찻잎을 덖기 전에 찻잎의 끄트머리를 다시 손질하는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따는 찻잎이 1창(槍) 1기(旗)이든, 1창 2기이든 찻잎의 꼬리가 길어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槍)이란 찻잎 속에 든 코어(core), 즉 전쟁 무기인 창의 뾰족한 끝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기(旗)는 창을 둘러싼, 또는 창의 약간 아래에 깃발처럼 펼쳐진 잎을 말한다. 마치 창을 보호하기나 하는 것처럼 위치한다.
②찻잎이 좀 크면 1창 2기로 따는 게 차를 만들어 우렸을 때 모양도 예쁘고 찻잎 속에 든 성분도 고루 우러난다. 그러다보니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1창 2기를 거의 원칙(?)으로 여긴다. 하지만 반드시 1창 2기로 찻잎 따는 것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또 그렇게 되지 않는다.
③1창 2기로 해서는 안 되는 경우이다. 첫째, 1창에 가까운 1기는 예쁘고 무난한 데 좀 더 아래에 있는 나머지 1기가 잎은 작은데 연하지 않고 딱딱할 경우는 버려야 한다. 둘째, 1창과 1기의 크기는 조화롭고 적당한데, 그 아래에 있는 다른 1기가 어울리지 않게 큰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도 1창 1기로 만족해야 한다. 셋째, 1창은 벌레 먹은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드물지만 어쩌다 1기나 그 아래의 다른 1기의 잎에 벌레가 파먹은 자국이 있다. 이런 경우는 아예 잎을 따지 않거나 1창만 딴다. 넷째, 아래에 있는 다른 1기가 크기도 맞지 않을 뿐더러 색깔이 허연 경우가 있다. 이럴 때도 1창 1기만 취한다. 다섯째, 1창과 1기는 간격이 적당한데 그 아래에 있는 다른 1기가 너무 아래에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도 거리가 너무 먼 아래의 1기를 과감하게 버린다. 이럴 경우 1창 2기를 따 차를 덖으면 찻잎의 줄기 색깔이 벌겋게 변해 보기가 싫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살청(殺靑)이 잘 되지 않는다.
④차나무마다 잎의 크기나 색깔, 두께, 모양이 다 다르다. 찻잎을 어떻게 하든 많이 따 수매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걸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차를 만들어 품평회에 제출하거나 소위 고급차를 만들고자 한다면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같은 크기의 잎, 그리고 같은 모양의 잎을 따야 한다. 찻잎의 색깔도 진한 게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덜 진한 게 있다. 필자는 품평회에 제출하거나 의식적으로 고급차를 만들려고 애를 쓰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동일한 잎을 고집한다.
찻잎을 따는데 있어 좀 더 섬세한 부분들이 있지만 대강의 찻잎 따는 요령을 언급한 것이다.
차로 돈을 만들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런 필자를 보고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내 가족이 보다 좋은 기운을 가진, 그리고 보다 맛있는 차를 마신다는 생각을 한다면 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찻잎을 딸 때의 마음가짐이다. 필자가 이 부분에 있어 종종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바로 ‘무구지심(無垢之心)’이다. 한 치의 티끌이나 속됨도 없는 맑은 마음으로 찻잎을 따야한다는 것이다.
위 내용은 외롭게 차산에서 찻잎을 따며 터득한 필자만의 찻잎 따기 노하우이다. 멧돼지 몇 마리가 필자의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 약간 두려움을 느끼며 경험한 것이다.
2017년 3월부터 화개동 목압마을의 차밭 일을 시작해 6년째 찻잎을 따고 있다. 정글 수준이던 야생 차산을 낫 한 자루로 일궈 지금의 차밭을 조성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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