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하동 악양에서 지인이 가꾸고 있는 화원을 방문해 꽃들을 보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흔히 말하는 ‘시크릿 가든(비밀의 화원)’이었다. 개인 화원 겸 수목원이었다.
화원을 가꾸고 있는 분은 필자와 차회(茶會)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신판곤(69) 대표님이다. 그는 악양 평촌마을 출신이다. 신 대표님이 어릴 때 평촌마을 버스종점 인근에서 부모님께서 두부집을 운영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조선 말기에 정3품인 중추원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셨다고 했다.
신 대표님은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도 용인에서 섬유원단절단기를 생산해 국내·외에 판매하는 ‘삼성엔에코’를 운영하면서, 주말에 평촌마을로 내려와 화원과 수목원을 가꾸고 있다.
할머니 묘소가 이전에 남의 땅인 현 수목원 윗부분에 있어 벌초를 하거나 성묘를 다닐 때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그러다 20년 전에 묘소가 있는 산 1만 평이 매물로 나와 당시로서는 시세보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지만, 자금을 융통해 구입했다. 고향집이 있던 자리는 아니지만 고향 동네였다.
주말마다 이곳에 내려와 산을 수목원처럼 가꾸다 산의 아랫부분이 회남재 올라가는 도로변에 붙어 있어 3년 전에 도로가에 2층 집을 지었다. 1층은 지인들과 차를 마시는 등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고, 2층은 침실이 있는 공간이다.
그는 산을 화원과 수목원으로 가꾸기 위해 포클레인 기사 자격증을 딴 후, 아예 중고 포클레인 한 대를 구입해 운전을 하며 직접 작업을 하고 있다.
필자는 신 대표님의 안내로 이날 1만평이나 되는 화원과 수목원을 둘러본 것이다. 집 주변으로 화원이 조성돼 있다. 아름다운 외국 장미만 30여 종이 넘고, 이곳에 심은 꽃 종류는 100가지가 훨씬 넘는다. 필자는 겨우 몇 종만 알 수 있었지만, 신 대표님은 모든 꽃의 이름 뿐 아니라 식물에 대한 구체적인 식생 조건 및 환경까지 알고 계셨다. 화원 위 수목원에는 없는 나무가 없을 정도이다.
비밀의 화원을 뜻하는 시크릿 가든은 알다시피 미국의 소설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190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2020년에 마크 먼든 감독에 의해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에 현빈과 하지원이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방영됐다. 현재는 우리나라에 시크릿 가든이라는 식당과 카페 등도 많이 생겨 이 단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필자는 화원과 수목원을 둘러보면서 신 대표님으로부터 많은 꽃 이름을 들었지만 다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꽃과 식물들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아마 표준 식물명이 아닌 것도 있을 수 있다.
목수국·홍조팝·독일아이리스·데일릴리·일본아이리스·미국산딸·토종다래·방풍·엉겅퀴·버들마편초·병꽃·무늬비비추·마가렛·달맞이꽃·토종야생수국·개량보리수·능수매화·능수벚꽃·자귀나무·흰조팝 등이다. 매실도 여러 종이 있었다. 일본 오매부시용으로 주로 쓰이는 남고를 비롯해 청매·홍매가 많았다. 감나무와 밤나무 등도 많았다.
필자가 농담조로 “여기 시크릿 가든에 입장료를 받아야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신 대표님은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라고 말했다.
화원 위쪽 수목원도 신 대표님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1만 평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길을 포클레인으로 직접 만들어 놓아 이날 그의 지프차를 타고 다 보았다. 그러니까 1만 평 전체를 다 가꿔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신 대표님이 제주도의 수목원을 비롯해 국내 여러 곳의 수목원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이곳 시크릿 가든을 가꾸기 위해 여러 곳의 수목원 및 화원을 답사하셨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집 위 수목원 가운데쯤에는 또 다른 집이 한 채 있었다. 곳곳에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한 연못에는 분수대까지 설치돼 있었다. 신 대표님이 스위치를 올리니 분수대의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차나무도 많았다. 그가 직접 심은 것이라 했다. 찻잎을 몇 개 따 보니 차나무가 건강하고 좋았다. 신 대표님은 “언제든지 찻잎 따 가시라”고 하셨다.
집 가까운 화원의 잔디밭에는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형이 있고, 예쁜 그네도 있었다. 장미 덩굴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놓은 곳도 두세 군데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이름을 모르는 예쁜 꽃들이 너무 많아 한참동안 화원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한편 이튿날 필자의 친구 부부가 놀러와 이 시크릿 가든에서 바라보이는 구재봉에 함께 올랐다. 그런 다음 남명 조식 선생이 고개를 넘다 돌아갔다는 회남재에 가면서 신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다. “친구 부부와 회남재에 가는 길입니다. 혹시 비빌의 화원을 좀 구경하고 가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니, “그렇게 하시라”고 해 승낙을 받고 화원을 구경했다. 신 대표님은 이때 용인에 올라가 계셨다.
친구 부부는 “너무 예쁘다. 지리산 골짜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화원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라고 연신 칭찬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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