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2시 “목압마을 청년들(?)은 마을회관으로 집합하라”는 이장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물의 취수원(取水源)에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취수원은 마을 위 국사암에서 산 정상으로 1km가량 위쪽에 있는 작은 폭포다.
목압마을은 물이 좋기로 화개골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삼신봉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표수이기 때문에 물이 맑고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세안을 하면 마치 비눗물처럼 미끄럽다. 찻물로는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오후 2시쯤 필자는 마을회관으로 갔다. 정말 목압마을 남자들은 다 모였다. 필자의 집 아래쪽에 있는 청산민박의 통칭 ‘이센’(82) 어르신도 오셨다. 10명은 되는 것 같았다. 대충 평균 나이를 셈해보니 일흔은 되었다. 필자의 집에서 맥전 쪽 방향에 사시는 목사님도 오셨다. 목사님도 일흔이 넘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분들과 이장님의 트럭을 타고 국사암 주차장까지 올라갔다. 거기서부터는 거의 직선거리로 걸어 올라갔다. 필자가 재작년에 마을의 물 담당을 할 때 자주 오르내렸던 길이다. 역시 올라갈수록 산죽(山竹) 군락이 길을 막고 있다. 계곡 쪽으로 실 같은 길이 거의 끊어진 곳이 나왔다. 필자가 물 담당을 할 때 여름 장마에 올라오다 여기서 미끄러져 계곡 바위에 어깨와 머리 등을 다친 곳이었다. 오늘은 미끄럽지 않았다. 그래도 위험해 왼쪽의 산죽을 잡으며 갔다.
등산용 스틱을 짚고 맨꽁무니에서 힘들게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큰 바위가 물을 취수하는 그 부분을 덮고 있었다. 보통 큰 바위가 아니었다. 덮고 있는 부분이 납작해 바위를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몇 사람이 밀어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바위에 줄을 감아 그 줄을 건너편 나무에 매 당기기로 했다. 젊은 축인 RG펜션 박 사장님(62)이 쇠줄을 연결해 손잡이를 당겼나 놨다 반복하니 줄이 팽팽해졌다. 이제 줄이 팽팽하다 못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바위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분이 “그 나무에서 줄을 풀어 그 위에 있는 나무에 매 다시 해보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줄을 바위 위쪽 부분으로 옮겨 다시 감았다. 그 줄을 바위와 거의 수평으로 있는 다른 나무에 묶어 같은 방법으로 당겼다. 줄이 끊어질 듯 너무 팽팽했다. 그래도 바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순간 줄이 “탁” 소리를 내더니 끊어졌다. 다행이 줄 옆에 아무도 없어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바위가 30t은 넘겠다.”라고 이장님이 말하셨다. 사람들은 다시 바위 주변에 모여 해결책을 모색했다.
“어쩌면 좋노? 여기까지 포클레인이나 장비가 올라올 수 없는데, 큰일이네.“
이장님이 바위의 이쪽저쪽을 살펴보시더니 말하셨다.
“바위가 깔고 앉은 취수 통로를 포기하고 그 옆에 통로를 다시 만드는 건 어떨까?”
‘복오리민박’의 김갑득(67) 사장님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셨다.
“그것도 한 방법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장님도 도리가 없는 듯 고민스레 말하셨다. 사람들은 각자 서거나 앉아서 고민을 했다. 요즘 비가 계속 내려서 그런지 위에서 폭포 위에서 물은 철철 흘러내렸다.
“큰일이네, 그렇다고 헬기를 부를 수도 없고….”
관아수제차 이승영 사장님(62)과 RG펜션 사장님은 바위 밑을 계속 긁어냈지만 역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위를 부수면 비용이 많이 들어. 인건비가 만만찮을 건데….”
소위 ‘노가다’ 경험이 많은 김갑득 사장님이 또 한 마디 하셨다.
“여하튼 오늘은 모두 철수합시다. 방법이 없네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장님이 말하셨다.
필자의 장화는 양쪽에 물이 많이 들어와 질퍽거렸다. 장화가 오래된 데다 차산 초입의 막사 위쪽 작은 차밭에 난 대나무를 해마다 자르다 몇 번 찔려 바닥면에 물이 새는 것이다. ‘장화를 새로 하나 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장화를 신고 계셨다.
“하하 다들 운동 잘 했네….”
뒤에 서서 내려오시는 한 분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일렬로 서서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걸어 국사암까지 내려왔다.
국사암에서 목압마을 청년들(?)은 이장님 트럭을 타고 마을회관으로 왔다.
“배고픈 사람 있습니까? 짜장면 좀 시킬까요?”
이장님이 털썩 주저앉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일한 것도 없는데 무슨 짜장면을? 그냥 집에 갑시다.”
RG팬션 사장님이 말했다. 그렇게 집에 오니 오후 3시 반이 좀 넘었다.
다음 날 이장님이 마을 주민들의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셨다.
‘돌을 깨기로 했습니다.’
<시인, 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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