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44) 문리(文理)와 물리(物理)

조송원 기자 승인 2022.06.18 09:54 | 최종 수정 2022.06.20 08:56 의견 0
어느 일출 [사진 = 조송원]

공자가 동쪽 지방을 돌아다니던 중 두 어린이가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 까닭을 물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저는 해가 막 떠올랐을 때 사람과의 거리가 가장 가깝고, 해가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 사람과의 거리가 가장 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아이는 해가 처음 막 떠올랐을 때 사람과의 거리가 가장 멀고, 해가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 사람과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다.

처음 아이가 말했다. “해가 처음 막 떠올랐을 때는 수레의 둥근 가리개와 같이 크지만,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이르게 되면 쟁반과 같아지니, 이것은 먼 것은 작아 보이고 가까운 것은 커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른 아이가 말했다. “해가 처음 막 떠올랐을 때는 차갑고 서늘하지만, 그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이르게 되면 끓는 물속에 있는 것과 같이 더우니, 이것은 가까운 것이 뜨겁고 먼 것이 서늘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공자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두 어린이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아시는 게 많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열자列子/탕문湯問-

우리는 아직도 ‘해가 뜨고, 진다’(The sun rises and sets)고 말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심을 받았으니 우주의 중심에 거居해야 마땅하리라. 경험적으로도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기를 매일 반복하지 않던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두렵다던 파스칼, 그가 상상한 ‘무한’과 ‘영원’의 범위는 어느 정도였을까? 시선이 미치는 저 하늘에다 상상력을 좀 더 보탠 공간,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6,000년 전 쯤의 세월이 아니었을까?

현대과학으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직경은 대략 930억 광년 또는 8.8×10²⁶m이다. 우주의 나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등 족보로 헤아릴 수 없는 138억 살이다. 신동 소릴 들을 정도로 파스칼은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다. 곧 과학적 감수성이 예민했다는 뜻이다. 그런 파스칼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우주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스칼은 신을 어떻게 변증했을까?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넉넉히 죽일 수 있는’ 연약한 갈대인 게 사람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임에 위대함이 있다고 파스칼은 사유했다. 생각은 위대하다. 빛보다 빠른 유일한 그 무엇이다. 우주의 끝까지 빛은 930억 년 동안 쎄빠지게 달려가야 하지만, 인간의 생각은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의 위대함’은 인류 전체 중 소수 선각자의 몫일 뿐, 각 개인이 고루 향유하기까지에는 숱한 희생과 몇 세대의 세월이 필요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는 뜻은, 이성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일 뿐이다. 대부분의 행위는 감정을 통해 유발된다. 이성은 단지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생각은 위대하지만, 인간은 생래적으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이다. 어떤 진실을 알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깊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여담이지만 구두쇠의 한자말은 수전노守錢奴이다. ‘돈을 지키는 노예’라니, 재미있고 어쩜 정곡을 찌른 말이 아닌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성황 중인 ‘중국집’이 있다. 한 번씩 가다보면 종업원이 자주 바뀐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주인은 말하곤 했다. 한날은 딸이 맞선을 본다고 했다. 그래서 말했다. “한 1년 동거를 시켜보고 결혼 여부를 결정하면 되겠네. 사람은 겪어봐야 아니까.” 그 주인양반은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하고 말했다. 정말 이상한가?

미국 국회의사당 돔 꼭대기에 6m 높이의 자유여신상이 있다. 이 조각상을 설치한 인부는 모두 노예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조송원 작가

‘문리’文理가 트이려면, ‘물리’物理에 밝아야 한다. 평소 지론이다. 여기서 문리는 ‘깨달아 아는 길’(the line of thought)을 뜻하고, 물리는 ‘사물의 이치’(the laws of nature)를 뜻한다. ‘인간의 법칙’(윤리)와 ‘자연의 법칙’은 다르다. 우리 전통사상(성리학)에서도 ‘격물치지’格物致知라 하여,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을 택한 듯 했다. 그러나 실은 존재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했다. 과학혁명이 서양에 뒤늦은 이유이다.

공자는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불변의 태양에서 아마 지고불변(至高不變)의 ‘천명’의 좋은 예증例證으로만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평가를 내렸다. “무식한 양반 같으니!”

서가에 과학 책 한 권 없는 지식인, 그 지성에 의문을 표한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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