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국민 MC’ 송해 선생이 지난 6월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황해도 재령 출신의 실향민으로 악극단 가수로 데뷔한 고(故) 송해 선생은 다재다능한 예능과 입담으로 잘 알려진 희극인이었다. 지난 1988년부터 2022년까지 34년 동안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로 최고령 TV 음악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장례는 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으로 치러졌으며, 고인의 유해는 부인이 잠들어 있는 대구 달성군 옥포리 송해공원에 안치됐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지난 6월 12일 낮 방송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은 국민 MC 송해 추모 특집 ‘송해를 기억하며’로 꾸려졌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번 방송에서 제작진은 송해의 생전 인터뷰를 전했다. 영상 속 송해는 “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다”라며 “하루 전에 내려가 맛있는 음식도 먹고 특산품을 알아두니 자신감이 생기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세 살부터 115세까지 많은 분들이 출연했고, 그 분들에게 배운 게 많다. 평생에 더 없는 교과서였다”라며 “전국노래자랑은 시청자가 주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제작진은 ‘우리들의 영원한 MC 송해,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라고 추모의 메시지를 보냈다(뉴스1, 2022년 6월 12일).
고 송해 선생은 1987년 당시 21살이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개인적 고통을 갖고 있음에도 1988년부터 매주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5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해줬다. ‘영원한 현역’으로 장수하신 송해 선생은 행복한 웃음을 주면서 행복한 삶을 살다 가신 분으로 우리 국민 마음 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고래로 여러 철학자들의 ‘행복론(Eudaemonics)’이 있다. 그중에서 ‘3대 행복론’이라고 한다면 힐티(1891년), 알랭(1925년), 러셀(1930년)의 『행복론』을 든다.
칼 힐티(Carl Hilty, 1833-1909)는 독일의 법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삶과 인간, 사랑, 일, 죽음 등의 주제에 대해 많은 사상서를 저술했는데 이 책은 에세이에 가깝다. 인간은 사랑과 책임감에 따라 일에 몰두하고 거기에 의미를 찾아 무언가를 창조하고 성공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가장 숭고한 시간 소비 방법은 일과 사랑이다. 재산 명예 권력은 진정한 행복을 주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한 비결은 ‘먼저 손을 대보는 것’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우선 생각하는 것’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 쉴 것’ ‘쓸데없는 활동으로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않을 것’ 등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알랭(Alain, 1868-1951)은 프랑스의 철학자로 본명은 에밀 오귀스트 샤르티에이며, 알랭은 필명이다. 행복론은 1925년 행복에 관한 93편의 어록을 모은 것이다. 알랭은 건전한 신체로 마음의 평정을 얻을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이런 사람은 불행하다’며 불행한 인간의 특징을 적고 있는 게 재미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일시적인 신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에도 우리 인간은 그것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키는 버릇이 있다. 즉, 우리는 별 이유도 없는데 필요 이상으로 ‘불행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랭은 이처럼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정념(情念)’이라고 부른다. 이런 행동을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내일 대지진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말처럼 불명확한 상상에 휘말려 생기는 불안이나 공포가 정념의 정체이다. 감정을 관리하는 것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성, 행복은 스스로의 손으로 잡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힐티는 종교적 도덕적 관념에서 행복을 추구했고, 알랭은 문학적, 철학적으로 행복을 추구했다면 러셀은 현실적 문제를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행복을 추구했다고 하겠다.
베트런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영국의 철학자, 수학자, 사회비평가이자 노벨문학상(1950년) 수상자이다. 러셀은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의 자세, 사고방식과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행복한 사람의 자세나 사고방식은 이렇다. 무엇이든 흥미를 가져라. 인간은 피곤할수록 외부에 대한 흥미가 줄어든다. 외부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면서 점점 더 피곤해지는 이 악순환을 끊을 것.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취할 것. 객관적으로 생활하며 자유로운 애정과 넓은 흥미를 가진 사람이 될 것. 무의식의 벽을 뚫고 자신의 심층심리와 진지하게 맞설 수 있을 때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론은 뭘까? 나는 언제인가부터 ‘일십백천만 행복론’이란 나름의 행복론을 갖게 됐다. 20여 년 전 사석에서 시민운동가인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힌트를 얻어 그 뒤 나의 ‘개똥철학’으로 삼게 됐고, 틈틈이 주변 사람에게 이 행복론을 ‘전도’하고 있다.
일. 하루에 한 번쯤은 크게 웃자. 하루에 크게 웃을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마는 웃음은 기쁨이자 평화이다. 평화는 그 자체가 환경을 보전하는 힘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는가. 엔돌핀을 생산하는 묘약인 웃음. 하루를 웃고 살려면 웃음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유머나 개그도 좀 챙겨놓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재미난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 언제든지 기꺼이 웃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갖자.
십. 하루에 열 곡 정도 노래를 부르자. 설거지를 하든 길을 걷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한 엔돌핀 생산에 도움이 된다. 외롭고 괴로울 때 노래는 진정제 역할도 한다고 하지 않은가. ‘전국노래자랑’이 장수프로그램인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이제는 잊어버린 유행가나 팝송 가사도 되내보자. 나이가 들면서 흘러간 유행가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나의 애창곡 리스트를 한번 만들어보자.
백. 하루에 자신의 글 100자 정도는 쓰자는 말이다. 100자 정도의 글이란 간단한 메모식 일기를 쓰든지, 아니면 자기 감정을 시로 표현을 하는 정도의 글이리라. 나의 일상을 글로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다짐의 글도 필요하지 않을까. 적자생존. 즉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천. 하루에 남의 글을 1000자 정도는 읽자. 자기가 쓴 것보다는 남의 글을 많이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1000자 정도 읽는 것은 적어도 하루에 책 몇 페이지는 읽자는 뜻이다. 독서는 지식과 지혜를 가져다 준다.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서적도 챙겨 한 번쯤 사서 읽어보자.
만. 만은 무엇일까. 하루에 적어도 10000보는 걷자는 것이다. 가능한 한 자동차를 타지 말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보자. 나는 가끔 강의할 때나 모임에 가서 이 ‘일십백천만 행복론’을 곧잘 써먹는다. 그중 ‘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대부분이 “하루에 만보 걷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 말고 하루에 ‘만’자를 넣어 할 수 있는 다른 것은 없는지 물어본다. 그러면 대답도 걸작이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만 원만 쓰자”고 한다. 옆에 있는 사람은 “하루에 만 원을 자기발전을 위해서 쓰자”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하루에 만 원을 이웃을 위해서 쓰자”고도 한다. 말 된다. 그런 와중에 예전에 어떤 분이 일어서더니 “하루에 만족하자”며 좌중을 평정했다. 이렇듯 일십백천만 행복론은 행복을 퍼뜨리는 ‘행복바이러스’다.
가능하면 가까운 거리는 걷자. 자동차를 두고 골목길을 걸으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작은 풀꽃의 생명력도 느낄 수 있다. 출근을 할 때 나는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자고 다짐한다. 노래라도 흥얼거려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꽃피우는 것이리라. 이러한 행복론을 실천하면 절로 즐겁고, 건강한 생태적인 삶에 조금은 근접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 단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만 말이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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