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19) 경전하사(鯨戰鰕死)와 어부지리(漁父之利)

김 해창 승인 2022.05.08 10:34 | 최종 수정 2022.05.09 10:49 의견 0

우크라이나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미국·유럽 서방국가와 러시아·중국 옛 사회주의 국가 간의 ‘신냉전’을 넘어 자칫 잘못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무고한 시민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고, 전 세계가 전쟁 여파로 고유가 자재난 등 경제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으로 남북한이 아직도 휴전중인 한반도. 5월 10일 대한민국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그러나 여야는 소모적인 극한 정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북한 관계도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에서 국익을 잘 챙기며, 국내 정치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는가가 새 정부의 과제라 할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강자 사이에 낀 약자가 늘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한자로는 ‘경전하사(鯨戰鰕死)’ 또는 ‘경투하사(鯨鬪鰕死)’라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인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이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말로 당시 속담 130여개와 함께 소개됐다. ‘고래싸움에 새우 죽는다’는 말로 ‘큰 놈들 싸움 통에 작은 놈들이 화를 입는다’는 말이란다. 일본 속담도 우리와 똑같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鯨の喧嘩に海老の背が裂ける)’이다. 구한말이나 해방전후 역사를 보면 한반도는 열강의 싸움 속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해방이 됐지만 분단의 비극을 안게 됐다. 이런 점에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은 피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래와 새우와의 관계를 보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기보다는 ‘새우는 고래밥’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백과사전을 보면 고래는 포유동물로 이빨이 있는 이빨고래아목과, 이빨 대신 수염으로 먹이를 걸러 먹는 수염고래아목으로 나뉘는데 수염고래류는 이빨 없이 수염판으로 작은 생물들을 걸러 먹는다. 그 수염판 사이로 물을 내보내고 새우나 플랑크톤, 어류와 같은 생물들을 흡입한다.

고래는 몸길이가 1.3m 정도의 작은곱등어(45kg)에서부터 30m나 되는 흰긴수염고래(210t)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에 비해 갑각류인 새우는 길이가 수㎜부터 20㎝ 정도로 작다. 고래싸움으로 인해 새우등이 터지는 게 아니라 고래한테 새우는 먹이가 되는 존재이다. 덧붙이자면 고래는 엄청난 ‘먹보’이다. (재)일본고래류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고래류(고래 돌고래 범고래)가 먹는 먹이 소비량은 물고기, 오징어, 갑각류를 합치면 2.5~4.3억t으로 1996년 당시 전 세계 인간의 물고기 소비량 9천만t의 3~5배에 이른다(Tsutomu Tamura, Competition for food in the ocean: Man and other apical predators, 2001).

고래는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대량으로 먹고 동시에 대량으로 배설하는 똥은 동물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며 식물플랑크톤에 필요한 영양염이 되어 광합성을 촉진한다. 고래는 질소와 같은 영양분을 깊은 곳에서 표면으로 운반하고, 사후에도 분해돼 해저에서는 고래뼈 생물군집을 형성한다. 그래서 고래는 ‘탄소 저장고’로 바다의 이산화탄소를 묶어 지구온난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경전하사(鯨戰鰕死)와 다른 중국 고사성어에 ‘휼방지쟁(鷸蚌之爭) 어부지리(漁父之利)’가 있다. 흔히 ‘어부지리’로 잘 알려진 이 고사성어에서 휼(鷸)은 도요새를 말하고, 방(蚌)은 조개를 이른다.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싸우다가 결국 둘 다 어부에게 붙잡혔다는 것으로 양자가 이익을 위해 싸우다가 제3자에게 이익을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빗댄 우화이다.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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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도요새는 조개를 특히 좋아하는데다 몸집이 그다지 크지 않아 대합조개와 같은 큰 조개를 잡아먹는 것을 멀리서 보면 마치 새와 조개가 싸우는 것 같이 보인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도요새 전체 길이가 13∼66㎝인데 백합조개는 길이가 8.5~10cm 정도이다. 도요새를 중국에서는 지금도 한자로 ‘휼’을 쓴다. 가령 조개나 게류를 잘 먹는 흑꼬리도요는 중국이름이 한자로 ‘흑미휼(黑尾鷸)’이고, 세가락도요는 ‘삼지빈휼(三趾濱鷸)’이다. 세가락도요의 경우 몸길이가 20㎝ 정도인데 봄 가을 낙동강 하구를 지나가는 나그네새이다. 

그런데 ‘휼’이라는 한자를 찾기 위해 옛날 옥편을 찾아보다 ‘조부(鳥部)’를 훑어보니 우리가 지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새 이름 한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 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두루미 학(鶴)이나 갈매기 구(鷗), 비둘기 구(鳩), 기러기 홍(鴻)에서부터 조금 어려운 솔개 연(鳶), 매 응(鷹), 오리 압(鴨), 까치 작(鵲) 등도 있지만 자세히 보니 별의 별 이름이 다 있다.

그중에 대충 추려보면 두견새 견(鵑), 따오기 무(鶩) 같이 컴퓨터에 나오는 한자도 있지만 나오지 않는 글자가 훨씬 많다. 이러한 새 이름 한자는 직박구리 필, 때까치 격, 솔개 치, 할미새 령, 오디새 핍, 왜가리 괄, 해오라기 교, 참새 행, 수리부엉이 휴, 메추라기 모, 꾀꼬리 경(鶊), 꾀꼬리 앵(鶯), 수리 조, 수리 단, 들거위 륙, 접동새 제, 사다새 호, 물수리 악, 뜸부기 칙, 오리 요, 종달새 류, 동방꿩 치, 붉은꿩 별, 흰꿩 한, 꿩새끼 단, 해오라기 사, 종달새 무, 산까마귀 촉, 가마우지 로, 꿩 시, 파랑새 분, 종달새 모, 콩새 동, 두루미 추 등 잘 나오지 않은 글자가 150가지가 넘는다. ‘직박구리 필’은 새조(鳥)부 왼편에 낮을비(卑)자가 합친 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그런데 같은 새 이름이지만 원앙의 경우는 원(鴛)과 앙(鴦)으로 수컷·암컷을 구분하기도 하고, 같은 꾀꼬리지만 이름이 다 다르다. 앵무새도 앵무새 앵(鸚), 앵무새 무(䳇)가 따로 있는데 이를 합쳐서 앵무새라고 부른다. 꿩의 경우는 새끼꿩 치(雉), 흰꿩 한(鷳), 붉은꿩 별(鷩)로 이름이 각기 다르다. 일부 새 이름과 한자가 혼동된 경우도 있지만 망원경이나 쌍안경이 없었던 옛날에 어떻게 새 이름을 자세히 구별할 수 있었을까. 

다시 ‘휼방지쟁 어부지리’ 고사로 돌아가 본다.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발사 여파로 국내외 정세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정말 고사성어에 나오는 도요새와 조개처럼 남북이 늘 대립만 하고 싸운다면 결국엔 누구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어부지리를 노리는 주변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새삼 남북분단 현실이 가슴 아프다.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선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한 통합의 정치를 제대로 해서 국민이 분열되지 않고 지역균형을 이루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야도 더 이상 극한적 대립으로 국민을 피곤하고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소모적인 정쟁은 중지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더 이상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건설적인 정책 경쟁을 해야 한다. 서로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줄 것은 주는 ‘윈윈 정치’를 해야 한다. 

해방 전후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구같이 전해져 오던 말이 있다. “소련놈 속지 말고, 미국놈 믿지 말고, 일본놈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자.” 윤 정부 시대에 우리 국민들이, 우리나라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 없기를, 남북갈등으로 다른 나라에 어부지리 되는 일 없기를 두 손 모아 빈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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