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흔히 여자들은 남자들을 보고 “모두 늑대”라 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보고 “야시(여우)”라고 부르기도 했다. ‘늑대 같은 사내’, ‘여우같은 계집애’ 등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던 말이다. 늑대는 음흉하고 사나운 동물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 ‘아기돼지 삼형제’ 등에 등장하는 엉큼하고 무서운 늑대가 떠오르기도 하고, ‘여량목양(如狼牧羊)’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늑대가 양을 기르는 격’이라는 뜻으로 탐관오리가 백성을 착취한다는 비유의 말로 『사기(史記)』에 나온다.
1960~70년대 박정희 시대 반공포스터에 북한은 늘 어린이를 잡아 먹으려하는, 눈이 새빨간 ‘늑대’로 자주 묘사됐다. 2000년대 들어 9.11테러 이후 ‘외로운 늑대(lone wolf)’라고 해서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일컫는 등 늑대는 그야말로 악의 상징으로 뇌리에 박혀 있다. 물론 ‘외로운 늑대’는 세상과 담쌓고 도도하게 소신껏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 긍정적인 면도 있기는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늑대의 이미지는 실제 늑대의 생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스웨덴 동물학자 에릭 지멘(Erik Zimen, 1941-2003) 박사는 『늑대-행동, 생태, 그리고 신화(Der Wolf: Verhalten, Ökologie und Mythos)』(2003)라는 책을 통해 늑대의 새로운 면을 소개했다. 에릭 지멘은 ‘늑대 연구가’로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는데, 독일 언론에는 ‘챔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 구달이나 ‘거위의 아버지’로 불리는 콘래드 로렌츠처럼 ‘늑대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이 책에 나타난 늑대의 진면목은 이러하다.
늑대는 부부애가 아주 좋은 동물이다. 늑대는 암수 한쌍을 중심으로 새끼를 포함해 10마리 정도가 한 가족을 이룬다. 암컷은 약 2개월의 임신기간을 거쳐, 한번에 5~10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는 2년쯤 자라면 부모의 곁을 떠난다. 수컷 늑대는 적을 만나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수컷은 주로 사냥을, 암컷은 육아를 맡지만 반대의 경우도 목격됐고,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남은 한 쪽이 단독 우두머리가 된다.
일단 부부관계에 들어가면 늑대는 정절을 지키며 한평생 서로의 반려가 된다. 새끼를 키우는데도 부부가 협력한다. 대장 늑대부부는 한 쌍이 우두머리가 돼 무리를 관장한다. 그런데 늑대세계에서 우두머리는 다른 동물과 달리 힘이 가장 센 놈이 아니라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늑대가 우두머리로 ‘추대’된다고 한다. 그 우두머리는 무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공격의 최선봉에 서는 등 무리를 위해 몸을 내던진다. 특히 대장 수컷은 무리사냥을 할 때 사냥 계획과 전술을 펴지만 주위에서 관망하고 있다가 사냥감이 힘이 빠졌을 즈음 마지막 숨통을 끊는 역할을 한다. 결정적일 때 리더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사냥하기 힘든 겨울철엔 전체 무리가 사냥에 나서지 않는 대신 노련한 대장 늑대가 단독 사냥을 해 전체를 먹여 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늑대는 가족 중 하나가 죽으면 애도를 표하는 행위를 하며, 더욱이 늑대 종족은 부모를 갑자기 잃은 다른 늑대 새끼들까지 거두어 키우는 습성을 갖고 있다.
늑대는 가정만 잘 다스리게 아니다. 늑대 가운데 힘이 센 리더는 먹이사냥에 앞장서지만 사냥한 먹이의 가장 맛있는 부위만 먼저 먹을 뿐 나머지는 다른 늑대들에게 남겨둔다. 그리고 늑대 사회는 나름 민주적이고 평등한 면이 있는데 야생 늑대는 개별 개체의 의견을 존중하며 일부 무리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는 것 같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늙은 늑대는 사냥 대신 무리의 새끼를 돌보고, 늑대 무리가 늙은 늑대를 먹여 살리는 등 ‘늑대공동체’의 노후가 보장된다.
늑대는 툰드라지역에서 순록 무리를 사냥할 땐 40~50마리가 협공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가 젊은 늑대에겐 ‘맞선의 장’이 된다. 적과의 싸움에서는 목숨을 거는 늑대지만 발정기에 멋진 암컷을 얻기 위한 동족 수컷끼리의 싸움에선 날카로운 이빨을 진짜로 쓰는 법이 없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한쪽이 급소인 목덜미를 드러내는 순간 싸움은 끝난다. 일종의 스포츠 룰이 적용되는 셈이다.
늑대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 ‘우~우~ 하며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하울링(howling)이라 하는데 주로 동료 늑대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사냥 중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늑대의 집단이 작을 때 규모를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늑대는 사방 10㎞를 한 가족의 영역으로 삼고 있으나 권역 내 초식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지 않는다. 양떼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병들어 보이는 놈만 골라 잡아먹는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은 늑대를 두려워하거나 애써 쫓아내지 않는다고 한다. 수명이 8~16년인 늑대는 매년 새끼를 낳을 수 있지만 먹이의 상황을 고려해 ‘산아제한’을 할 줄도 안다.
늑대는 태생적으로 ‘지속가능성’이 뭔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늑대는 지역 생태계의 지도자적 위치에 서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보면 늑대는 자연계에서 얼마 안되는 일부일처제 사회를 형성하고, 암수의 힘의 차이도 크지 않은 ‘성평등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늑대는 배우지가 죽지 않는 한 재혼하지 않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에서는 늑대는 짝이 죽자 재혼하기는 했지만 전처 사이에서 얻은 새끼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키우는 모습이 소개됐다(나무위키).
그리고 늑대가족은 새끼가 다 자라면 독립시킨다. 성체는 무리에 남아 동생들을 돌보거나 무리를 나와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무리로 들어가거나, 또는 같은 떠돌이 늑대들 중 이성을 만나 새 영토로 들어가 새끼를 낳고 새로운 우두머리 부부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하극상’이 적고 개에서 볼 수 있는 ‘근친상간’의 구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늑대는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단법인 일본늑대협회 홈페이지(https://japan-wolf.org)는 ‘사람이 늑대를 올바르게 대하고 있다면, 습격당하는 일은 없다. 늑대가 서식하는 북미, 유럽, 아시아 등에서 곰이나 멧돼지처럼 늑대가 사람을 습격했다는 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늑대가 복원되면서 양이나 염소 등 방목가축의 피해는 있지만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습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광견병에 걸린 늑대나 야생늑대를 길들이는 경우 등 극단적인 경우라고 한다.
로마 신화 속의 건국자인 로물루스는 늑대에게 키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상징동물은 늑대다. 몽골, 터키 같은 유목민족은 늑대의 습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심지어 조상신으로 생각한다. 몽골은 국조인 칭기스칸을 늑대의 후손으로 비유했다. 늑대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논란은 있지만 늑대가 인간을 키웠다는 역사적 사례로 유명한 ‘아말라(Amala)와 카말라(Kamala)’ 이야기도 있다. 1920년대 인도 벵골 지방의 늑대굴에서 발견된 2살, 8살(추정) 짜리 야생소녀의 경우 고아원에 보내졌으나 한동안 늑대와 같은 행동을 하다 인간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숨졌다고 한다.
6월 1일 민선 8기 지방선거가 이제 얼마 멀지 않았다. 요즘 휴대폰에 걸려오는 전화 태반이 여야 할 것 없이 모르는 예비후보자들의 홍보 전화이다. 선거기간 중 후보자들은 저마다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고 주민들에게 공약한다. 진짜 늑대의 생태를 알면 늑대의 리더십이 새롭게 보인다. 1970년대 전국 쥐잡기운동의 여파로 지금은 멸종된 이 땅의 동물 늑대. 오는 민선 8기 지방선거에서 진정한 ‘늑대의 리더십’을 가진 지자체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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