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도 중반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기념해야 할 날도 많다. 달력을 보면 남은 4월만 해도 19일은 4·19혁명 기념일, 20일은 장애인의 날, 21일은 과학의 날, 22일은 정보통신의 날, 25일은 법의 날,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다. 그런데 국가 차원을 넘어서 전 세계가 기념 또는 기억해야 할 날이 4월에 있다. 그것은 4월 22일 지구의 날(The Earth Day)이다.
지구의 날은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제정한 세계 기념일이다. 1969년 1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의 대규모 기름유출사고에 충격을 받은 미국의 상원의원 게이로드 닐슨(Gaylord Anton Nelson)이 주축이 돼 1970년 4월 22일 지구의 날 선언문을 발표하고 행사를 연 데서 비롯됐다. 닐슨 의원은 미국 각지에 대기오염, 동물 멸종 등을 주제로 토론회 등을 열어 2000여만이 환경실천 행동에 나서게 했다. 이날 뉴욕 5번가에서 자동차 통행을 금지시키고 60만여 명이 센트럴파크 환경집회에 참여했다. 그날 이후 미국환경보호청(EPA)이 만들어지고, 대기청정법, 멸종위기종보호법 등 환경 법률이 잇달아 제정됐다. 1990년부터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지구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2009년 유엔은 이날을 ‘어머니 지구의 날(International Mother Earth Day)’로 세계 기념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환경부가 2008년부터 4월 22일부터 약 일주일간 ‘기후변화주간’을 운영한다. 시민단체는 올해도 4월 22일 오후 8시 전국적으로 ‘지구를 위한 10분간 소등’ 행사를 갖는다.
‘지구의 날 네트워크’(https://www.earthday.org)는 ‘지구의 날 2022’ 테마로 ‘우리 행성에 투자하라(Invest in Our Planet)’고 외친다. 적어도 이날을 계기로 ‘지금, 모두 함께, 모두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매일’ 해나가자고, 그리고 ‘대담하게 행동하고, 널리 혁신하고, 공평하게 실행하자(act boldly, innovate broadly, and implement equitably)’고 제안한다. 지구의 날 네트워크는 지구의 날에 인식해야 할 5가지 사실과 실천해야 할 3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지구의 날에 마음에 새겨야 할 사실은 △인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우 높아졌다 △음식물쓰레기를 적게 배출할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 △기후변화는 온도와 날씨에 큰 영향을 준다(지난 50년간 미국 기온 2℃ 상승, 강수량 5% 증가) △기후변화는 97%의 과학자들이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데 동의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치적으로는 논쟁 중이다 △이산화탄소 최고 배출국은 1위가 중국(30% 차지), 2위가 미국(15%)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날 실천 사항으로 △탄소발자국 줄이기를 위해 자가용 대신 카풀이나 대중교통, 자전거를 이용하기 △옷장을 새로 정리하거나 쇼핑습관을 바꾸기 △육식에서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기(탄소배출량의 1/4~1/3이 육류산업과 관련.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채식 전환하면 배출량 60% 감소 가능, BBC 보도)를 제안한다.
우리는 국경일을 비롯한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기념일은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지구시민’으로 알아야 할 ‘세계 기념일’은 잘 모른다. 세계의 각종 기념일을 소개하는 ‘내셔널 투데이(https://nationaltoday.com)’를 보면 지구의 날 외에도 한번쯤 생각했으면 하는 날이 아주 많다. 2월 2일 세계 습지의 날, 3월 3일 세계 야생동물의 날, 3월 18일 세계 재활용의 날, 3월 22일 세계 물의 날, 5월 20일 세계 벌의 날, 5월 22일 세계 생물종 다양성 보전의 날, 6월 8일 세계 해양의 날(우리나라는 5월 31일 바다의 날),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6월 17일 세계 사막화방지의 날, 10월 18일 세계 산의 날 등 다양하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 참새의 날(3월 20일), 세계 지렁이의 날(10월 21일)도 있다.
지구의 날을 맞아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지구를 사랑해야 하는가이다.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생명터전이 바로 ‘하나뿐인 지구’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지구나 땅은 ‘어머니 대지’로 불려왔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라는 말을 많이 썼다. 우리나라도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천지부모(天地父母)’를 강조했다. 해월 선생은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지금 사람들은 다만 부모 포태의 이치만 알고 천지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알 지 못하느니라.”라고 일갈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환경사상도 자연과 하나 되는 생각들이 많다. 고수레(고시레), 까치밥, 콩세알 이야기가 그렇다.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내거나 야외 나들이를 갈 때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던지는 일은 자연에 이를 고하는 행위이고, 까치밥은 감나무에 열린 홍시를 다 따지 않고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놓는 것이다. 조상들은 콩을 심을 때 세알씩 심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날짐승이, 또 하나는 땅벌레가 먹고, 나머지 하나를 우리 인간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심었다고 하지 않는가.
지구의 날에 꼭 되새겨봤으면 하는 글귀가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이다. 1854년 미국 제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인디언 추장 시애틀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했을 때 시애틀 추장이 답한 내용으로 요지가 이렇다.
‘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프랭클린 피어스)이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듯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우리가 땅을 당신에게 판다면, 기억하라. 공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공기는 모든 목숨 있는 것들에게 정신을 나눠준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쉬게 해 준 바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둬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도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칠 건가?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땅에 일이 생기면 땅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생긴다. 우리는 안다. 땅은 사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모든 사물은 우리 몸을 연결하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편지는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한 ‘고문서 비밀해제’로 1970년대에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피어스 대통령은 추장 시애틀의 편지에 감복한 나머지 이 지역을 시애틀이라고 명명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잠 못드는 시애틀’로 유명한 ‘시애틀시’라고 한다. 류시화가 엮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2017)에 시애틀 추장의 편지글 전문이 나와 있는데 일독을 권한다.
1992년 리우회담 이후 널리 알려진 환경 캐치프레이즈가 ‘Think Globally Act Locally’이다. 1994년 영국 맨체스터 지구환경회의에서는 지구환경 보전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 및 책무를 규정한 ‘지방의제21(Local Agenda 21)이 채택되기도 했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이제 우리도 지구시민으로서 생활 속에서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하자!’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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