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만 아니면 전국이 벚꽃축제로 주말에 교통체증을 이룰 때이다. 우리 아파트단지도 벚꽃이 한창이다. 봄노래 중에도 벚꽃노래, 그중에도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귓가에 맴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주말에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원을 다녀왔다. 하동 화개 십리벚꽃길엔 벚꽃이 만발했다. 4월 초인데도 매화꽃이 다 지지는 않았다. 청매실농원은 1966년 홍쌍리 여사가 매실나무를 심어 지금은 10만 그루의 매실을 자랑한다. 지금 우리가 멋진 벚꽃이나 매화꽃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수 십년 전에 이들 나무를 심어 잘 기른 덕이다. 4월 5일은 식목일. 올해는 청명(淸明)·한식(寒食)이 겹친다. 예로부터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놔도 산다”는 말처럼 나무심기에 좋은 날이다.
그렇고 보니 어릴 적 시골 있을 때, 그리고 부산에 와서도 단독주택에 살 때는 집 담벼락 아래 빈터에 꽃나무를 심기도 했지만 아파트로 옮긴 뒤로는 나무심기를 한 기억이 없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지향하면서 산림청의 산림정책이 우왕좌왕이란 말도 나온다. 탄소흡수량 운운하면서 오래된 나무를 뽑아내고 어린 나무를 많이 심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대체로 20~30년 된 나무가 탄소를 많이 품는다고 산림청은 강조하지만 2014년 「네이처(Nature)」지엔 대부분의 나무는 150년이 돼도 연간 온실가스 흡수량이 둔화되지 않고 순흡수원 기능을 한다는 16개국 과학자들의 공동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인 소나무(30년생)는 연간 8~9kg의 탄소를 흡수한다(산림과학원의 주요 산림수종의 표준탄소흡수량, 2019). 승용차 1대의 연간 평균 주행거리 1만5000km에 휘발유 1500ℓ(평균 연비 10km/ℓ 가정)를 소비한다고 보고 휘발유 1ℓ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2.3kgCO2(https://www.env.go.jp)을 곱하면 연간 3.45tCO2(탄소톤)이 발생한다. 이를 상쇄하려면 차 한 대당 소나무 약 400그루(약 1000평)의 숲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과학적 분석과 함께 종다양성이나 경관성 등 종합적인 숲 가꾸기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절실하다.
그런데 도시 생활, 특히 아파트생활을 하면서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심지 못하는 게 참 아쉽고 안타깝다. 수 십년 자란 멋진 벚나무 가로수도 재건축을 하면 그냥 베어진다. 1990년대 후반 일본 규슈지역을 다녀왔는데 후쿠오카에서는 시가 일반 주택에서 꽃나무를 일정 비율 이상 심으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주택녹화협정’이 있었고, 기타큐슈시에선 시와 공장이 일정 비율의 녹지를 조성하면 지방세를 감면해주는 ‘공장녹화협정’ 제도가 있었는데 퍽 인상적이었다. 재개발 재건축을 할 때 탄소중립시대에 걸맞게 녹지를 보호하는 정책을 적극 폈으면 한다.
나무를 심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나무에 대해서 좀 더 알고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를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나무를 사랑하게 되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보이는 나무는 예전에 보아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게 됩니다.”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나무 1, 2권 』(박승철, 2021)에서 저자는 조선시대 유학자 유한준의 글 가운데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 볼 줄 알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이 아니다”는 구절을 이렇게 바꿔서 풀어놓았다.
수많은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알기는 어렵지만 생활 속에서 만나는 꽃나무는 관심을 갖고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벚나무만 해도 종류가 많다.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 섬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꽃벚나무, 능수벚나무, 잔털벚나무 등 10여 종이 넘는다. 아파트 단지나 공원, 가로수로 만나는 것은 대부분 왕벚나무다. 나무 잔 가지가 처지는 것은 처진올벚나무로 능수벚나무 또는 수양벚나무라고도 한다. 이들 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산에서 주로 만나는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벚나무는 꽃과 잎이 같이 피는데 잔털이 많다면 잔털벚나무, 털이 없지만 꽃차례(花序) 꽃자루가 있는 것은 그냥 벚나무다.
어떻게 이런 나무들이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됐을까. 예를 들면 참나무 이름도 가지가지다. 신갈나무는 옛날 나무꾼들이 짚신 바닥이 헤지면 이 나무의 잎을 깔아 ‘신을 간다’란 뜻에서 ‘신갈’나무가 됐다고 한다. 떡갈나무는 시루떡을 쌀 만큼 넓은 잎을 가졌다 해서 붙여졌단다. 뽕나무는 열매인 오디를 너무 많이 먹다보면 방귀를 ‘뽕뽕’ 뀌게 된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단다. 생강향 나는 잎을 가졌다고 해서 생강나무, 흰꽃 흐드러지게 피면 이밥(흰쌀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팝나무, 조밥을 생각나게 한다고 해서 조팝나무 등 나무이름은 그 쓰임새나 특성과 관련돼 지어진 것이 많다. 이름을 알면 나무가 보인다.
『재미있는 우리나무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허북구 외, 2004)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이름의 유래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나무와 친해지는 지름길은 그 이름의 유래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 이름에는 생육 특성, 색깔, 용도, 도입지, 인간과의 관계 등 많은 요인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식물의 이름은 보통명과 학명으로 나뉘는데 보통명은 다시 표준어인 정명과 방언인 이명으로 나뉜다. 학명은 식물학자에 의해 명명된 세계 공통어로 주로 라틴어로 돼 있다.
나무 이름에 사용된 접두어를 통해서도 나무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갯’ ‘두메’ ‘물’ ‘바위’ ‘산’ ‘섬’ 등은 나무의 자생지를 나타내는데 ‘갯버들’ ‘두메오리나무’ ‘물싸리’ ‘산개나리’ ‘섬백리향’ 등이 그렇다. ‘개’ ‘나도’ ‘너도’ ‘돌’ ‘새’ ‘참’ 같은 접두어는 진위 여부나 품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개다래, 개벚나무, 개오동’ 등은 기준이 되는 나무에 비해 품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른 데서 유래한 것이다.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있는데 원래는 완전히 다른 분류군이지만 둘다 밤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한 것이다. ‘돌배나무, 돌매화나무’는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 것에서 유래하고, ‘참꽃나무, 참오동나무’는 품질이 좋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가는’ ‘가시’ ‘털’의 접두어가 붙는 이름은 나무의 잎이나 줄기 등의 특성을 나타내는데 ‘가는잎버드나무’ ‘가시오갈피’ ‘털오리나무’ 등이 그 예다. ‘각시’ ‘난쟁이’ ‘애기’ ‘왕’ ‘좀’ 등은 식물의 크기나 특정 기관이 작아 귀여운 데서 유래된 것으로 ‘각시고광나무’ ‘난쟁이버들’ ‘애기동백’ ‘좀자작나무’ ‘왕대’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산행이나 산책을 갈 때 ‘나무도감’ 한 권 정도 챙겨 가면 더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학생들 마음 속에 ‘자기나무’ 한그루씩은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 도쿄의 한 초등학교의 ‘학년나무 물려주기’ 행사라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학년마다 나무를 지정해 심고 가꾸며 이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식을 전교생이 참여해 축제 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친구들과 함께 심은 ‘자기나무’를 졸업 후 20년, 30년 뒤에 찾아가 학창생활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그런 학교 숲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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