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13) 삼짇날, 제비를 반기는 마음

김 해창 승인 2022.03.28 11:13 | 최종 수정 2022.04.17 21:30 의견 0
어미가 날아오자 먹이를 달라고 일제히 입을 벌리는 어린 제비들 [사진 = 김시환]
어미가 날아오자 먹이를 달라고 일제히 입을 벌리는 어린 제비들 [사진 = 김시환]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라/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은/ 언제나 모습 꿈 속에 있네/ 먹구름 울고 찬서리 친다 해도/ 바람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당신의 마음 품으렵니다….’

가수 조영남의 번안곡으로 잘 알려진 라틴계 구전 민요곡 ‘제비’의 가사이다. 또한 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 ‘봄’은 ‘푸른 바다 건너서 봄이 봄이 와요. 제비 앞장 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라며 제비가 봄의 전령사임을 노래로 알려준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새가 제비 아닐까 싶다.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 이야기를 보면 선조들에게 제비는 가족같이 친근한 새였다. 제비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제비가 사람을 어르면 비가 온다’는 속담은 제비가 사람 옆을 살짝 스치듯 날아가면 비가 온다는 말이다. 제비는 높은 곳에서 생활하는데 비가 오거나 오기 전날엔 습도가 높아 먹이를 잡기 위해 낮게 날기에 이를 보고 선조들은 비가 올 거라 짐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제비가 높이 떠돌면 날이 갠다’는 속담은 궂은 날씨에 제비가 하늘 높이 떠서 날아다니면 곧 날이 갤 징조라는 말이다. 이처럼 제비는 일기를 나타내는 전령사이기도 하다. ‘제비가 집을 안으로 들여 지으면 장마가 크게 진다’거나 ‘제비집이 허술하면 큰 바람이 없다’는 속담도 있다. 제비가 집을 허술하게 지어도 될 정도라면 태풍이 올 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또 ‘제비가 새끼를 많이 낳는 해는 풍년이 온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간다’는 속담도 있다. 우리 선조들에게 제비는 복을 주고 제 할 일을 다 하는 이로운 새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요즘 도시에선 제비 보기가 참 어려워졌다.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일도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우리 집만 해도 부모님과 함께 3대가 같이 살던 1990년대 중반까지 비록 콘크리트였지만 옛 단독주택의 1, 2층 사이 처마같은 공간 밑에 제비가 집을 짓곤 했는데 요즘엔 아예 제비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예로부터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했다. 삼짇날은 양력으로 치면 올해는 4월 3일이다. 

제비는 주로 유라시아대륙 중·남부, 아프리카 북부, 북미 중·남부에서 번식하고, 아프리카 남부, 인도, 동남아시아, 필리핀, 뉴기니, 남아메리카에서 월동한다. 여름철새인 제비는 3월 하순에 우리나라에 와서 번식하고, 10월 하순까지 머문다. 주로 농지, 하천 등 넓게 열린 곳을 빠르게 날아다니며 곤충을 잡아먹는다. 그런데 도시화되고 농약 등으로 인해 그 수가 크게 줄어든 데다 진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둥지를 만드는 데 그런 재료 구하기도 어려워 요즘 도시의 인가 근처에서는 거의 제비를 볼 수가 없게 돼 버렸다. 제비는 날이 쌀쌀해지면 강남으로 가는데 여기서 강남은 중국 양쯔강 이남지역, 즉 동남아 일대를 말한다.

제비는 흥부전을 통해 ‘권선징악’의 교과서로 우리 조상들의 마음 한켠에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화되면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잃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봄이라는 계절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아닐까. 예전엔 삼짇날이 되면 아이들은 물 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또한 시골 가정에서는 이날 진달래꽃을 따다 찹쌀가루 반죽에다 참기름을 발라 둥근 ‘화전(花煎)’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쑥잎을 따서 찹쌀가루를 섞어 쑥떡을 해 먹기도 했다. 봄을 오감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날이 삼짇날이었다.

김해창 교수
김해창 교수

특히 삼짇날 제비를 보면 ‘풍등(豊登)’이라고 해서 손을 흔드는 풍습이 있었다. 제비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제비에게 절을 세 번 하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풀었다가 다시 여미면 여름에 더위가 들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풍등은 그해 풍년을 기원하며 제비를 처음 맞아 인사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지금은 이러한 풍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혹시 어디를 가든 올해 처음 제비를 보거든 풍등의 옛 풍습을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 이젠 제비를 보는 것만으로 올 한해 마음으로나마 ‘풍년’이자 ‘대박’이라 생각하자. 나아가 풍등의 마음을 출근길 집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새와 새봄의 풀꽃들에게도 보여주면 어떨까.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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