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12) 코로나시대, 광안리 갈매기와 ‘갈매기 친구들’

김 해창 승인 2022.03.21 09:40 | 최종 수정 2022.04.17 21:30 의견 0

갈매기 환송제가 열린 광안리 해변 [사진 = 배정선]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부산 사직야구장에 롯데자이언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울려 퍼지던 ‘부산갈매기’의 가사이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새, 갈매기. 부산갈매기를 제대로 보려면 광안리해변이 제격이다. 이곳엔 사람과 갈매기 사이에 30년간의 ‘러브 스토리’가 있다. 

광안리해변에는 갈매기와 더불어 ‘갈매기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 친구들’은 20여 년 전부터 매년 11월 1일 갈매기 환영제를 시작으로 다음해 3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환송제를 열어왔다. 적어도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전까지는. 50명쯤 되는 ‘갈매기 친구들’은 겨울철 전후 약 4개월간을 매일 회원 3~4명이 번갈아가며 새벽녘에 나와 이곳 광안리 갈매기들에게 ‘아침밥’을 줘 왔다. 그런데 이러한 갈매기와 인간 간의 사랑은 코로나로 인해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갈매기 친구들 회장이자 사진작가인 배정선 씨는 “지금까지 20여 년간 갈매기들에게 새벽마다 생선모이를 주고 갈매기들이 광안리를 찾고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환영제, 환송제를 하며 즐거워했던 일들이 이제는 아련해 마치 전설이나 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며 “하루빨리 코로나가 지나가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이러한 축제를 시민과 함께 멋지게 다시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이 일은 처음 시작한 사람은 고 오건환 교수(부산대 지리교육학과, 2006년 작고)이다. 광안리에 살면서 아침 산책을 즐겼던 그는 1988년 겨울철 먹을 것이 없는 이곳 갈매기들을 위해 ‘옛날 충무집’에 부탁을 해 생선내장, 껍질 등 민락회센터의 생선 찌꺼기 한 두 버킷을 모아 해뜨기 직전 옛 파크호텔 앞 백사장에서 10여 년간 모이 주기를 해왔다. 오 교수가 병석에 눕게 되자 배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갈매기 친구들’과 함께 모이주기와 환영제, 환송제를 계속 이어왔다.

가끔 행인들 중에서 갈매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이 야성을 해치고 해변을 오염시키는 것 아니냐고 입을 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갈매기들이 생선내장을 그 자리에서 멋지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늘었고 한 때는 ‘갈매기를 보면서 선을 보면 잘 산다’고 해 인근 커피숍 등에서 선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가 오고 나서는 모든 게 바뀌었다. 우선 공식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금지됐다. 갈매기 환영제, 환송제 행사도 불가능해졌다. 더욱이 새벽마다 해왔던 갈매기 모이주기도 어려워졌다.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횟집에 사람들이 찾지 않자 횟집에서 나오는 생선내장 같은 모이가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매기 친구들의 활동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중단’ 상태라고 한다.

지난 1996년 3월에 시작된 ‘갈매기 환송제’는 2019년 3월에 24회를 끝으로 중단됐다.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해 색소폰 기타 연주도 하고, 노래와 춤, 영상작품전, 갈매기학술제 등을 통해 갈매기와 인간과의 교감을 표현해 지역의 소중한 축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광안리 갈매기들은 부산의 정을 먹고 사는 ‘부산갈매기’다. 그래서 그런지 이 녀석들은 다른 곳의 갈매기보다 어리광이 심하고 사람들에게 친근하다. 

[사진 = 배정선]

배 회장은 예전에 ‘갈매기 일지’를 써왔다. 2006년 3월초 일지의 한 구절은 갈매기에 대한 사랑이 녹아나 있다. ‘지난 주말 광안리 해변에는 새우깡갈매기로 더 잘 알려진 붉은부리갈매기 550여 마리와 재갈매기 30여 마리, 괭이갈매기 10여 마리 등 모두 600여 마리의 갈매기가 왔다. 입소문도 빠르지. 어린 철새들이 많이도 몰려왔다. 1일엔 약 30마리, 2일엔 50마리, 3일엔 60마리. 아 오늘은 부쩍 늘었어. 오늘 맨 앞에 발을 다친 갈매기가 있네. 내일은 꼭 그에게 부드러운 내장과 살점을 두어 번 던져줘야지…. 못내 마음이 무겁다.’ 

광안리를 찾는 부산갈매기는 철새로 붉은부리갈매기, 재갈매기, 괭이갈매기가 대표적이다. 몸길이로 보면 크기가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 순이다. 갈매기는 동물사체, 작은 조류, 어류, 곤충류와 바닷말, 이끼류 등을 먹는 잡식성 조류다. 부산시는 1978년 갈매기를 부산의 상징새로 지정했다. 갈매기는 옛 시에는 백구(白鷗)로 소개된다.

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에 배 떠 있다.
왕래 백구는 무삼 뜻 먹음인지.
이후란 공명을 떨치고 너를 좇아 놀리라’.

조선조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 척화를 주장했던 정온이 벼슬을 탐내지 않고 갈매기처럼 유유히 살겠다는 내용을 담은 시조이다. 선조들은 갈매기와 이처럼 대화를 나눴다.

부산엔 해수욕장, 포구마다 갈매기가 있다. 부산 광안리에는 갈매기를 사랑하는 ‘갈매기 친구들’이 있다. 아마 지구상에 사람과 갈매기가 환영제와 환송제를 통해 사랑을 나누는 이런 ‘갈매기 축제’는 광안리 빼고는 없을 것이다. 도시 속에서 인간과 자연과 공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축제.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말처럼 청소년에게 꿈을 줄 수 있는 갈매기. 코로나19가 걷혀지고 우리들 마음속에 갈매기와 함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갈매기와의 공존의 꿈’을 되찾을 축제의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광안리바닷가에 띄워 보낸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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