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11년이 되는 날이다. 역사적으로 세계 3대 원전사고라고 할 미국의 스리마일섬원전사고(1979년 3월 28일, 6등급), 옛 소련의 체르노빌원전사고(1986년 4월 26일, 7등급),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2011년 3월 11일, 7등급)는 문명사적 전환을 일으킬 정도의 엄청난 재앙이었고, 특히 체르노빌, 후쿠시마참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지난 3월 4일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지아원전 탈취 과정에서 포격을 벌이다 원전시설에 화재를 일으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원전은 자칫 잘못해 사고라도 발생하는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영국 BBC방송은 후쿠시마원전사고 10주년 하루 전날인 2021년 3월 10일 ‘후쿠시마 참사: 원자력 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Fukushima disaster: What happened at the nuclear plant?)’라는 특집기사를 방영했다.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주민 15만명 이상이 대피해야 했고 10년이 지나도 사고지역은 그대로 남아있고 많은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본 당국은 이미 수십조원의 비용이 든 이 작업을 끝내는 데 최대 4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위키피디아, 일본 언론 등을 참고해 후쿠시마원전사고 피해를 종합해보면 우선 방사성물질이 있는 지정 폐기물(하수 진흙, 볏짚 등)은 2020년말 현재 10개 광역지자체에 33만6000t이 남아 있다(닛케이산업신문, 2021년 3월 28일). 2015년 3월 현재 원자로 내의 핵연료 거의 대부분이 용융했으며, 2020년 3월 현재 방사능오염으로 인한 귀환곤란지역이 나고야시와 거의 같은 면적인 337㎢에 이른다.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원전 처리수 총량 125만t(탱크 1,000기)의 해양방출을 정식결정해 후쿠시마주민과 우리나라, 중국 등으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있다. 도쿄신문은 2016년 3월 현재 피난중 ‘원전 관련사’가 적어도 1368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3월 4일 후쿠시마·군마〮·지바주민의 3건의 피난집단소송에서 처음으로 도쿄전력의 배상이 확정됐다. 최고재판소가 2심 판결 중 약 3600명에게 총액 약 13억9천만엔의 지불을 명한 부분을 확정했다(교도통신, 2022년 3월 4일).
후쿠시마원전사고에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 할까? ‘후쿠시마원전사고 정부조사위 보고서 핵심해설서’인 『안전신화의 붕괴』(하타무라 요타로 외, 김해창 외 역, 2015) 말미에는 정부조사위원장을 맡았던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가 후쿠시마원전사고에 배워야 할 사고대처 7가지 마인드를 첨부해놓았다. 그것은 향후 원전사고나 각종 안전사고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지혜가 들어있다.
첫째, 있을 법한 일은 일어나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일본의 전기품질을 과신한 나머지 1993년 원전안전설계심사지침을 바꿔 장기간 교류동력 전원상실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도쿄원전이 장기간 전원상실을 예상한 준비, 훈련 필요성을 느끼지 않다가 대참사를 맞게 된 것이다.
둘째,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인다. 후쿠시마원전 설치허가 신청 당시 쓰나미의 예상 높이는 당시 최고치인 칠레지진쓰나미에 준한 3.1m였고, 그후 6.1m로 높였다. 도쿄전력은 13m 이상 거대 쓰나미가 올 확률이 0.1%라고 예측했으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셋째, 모든 것은 변하므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도쿄전력은 지진학의 발전으로 후쿠시마현의 태평양 연안 쓰나미 습격 가능성 정보에도 주목하지 않았고, 스리마일섬원전사고나 체르노빌원전사고, 프랑스 브라이에원전의 홍수로 인한 전원상실사고 등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 매뉴얼에 집착해 일상적인 사고예방만 해왔던 것이다.
넷째, 가능한 한 모든 예상과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후쿠시마원전의 경우 사고 전 지진에 대한 예상과 준비는 상당히 잘 돼 있었지만 대쓰나미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수밀문(水密門)을 설치하고, 비상발전기만 있었어도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는데 ‘원전 안전신화’에 도취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다섯째, 형식을 만들어 놓은 것만으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만들어놓은 구조의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 후쿠시마원전사고 당시 SPEEDI(신속 방사능영향예측네트워크시스템)라는 방사능측정예측장비가 있어 방사성물질이 날아가는 방향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정보를 공표하지 않아 피난에 활용되지 못했다. SPEEDI 운용자들이 이 시스템 구축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 VTS의 존재처럼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섯째, 위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험에 바로 맞서서 논의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원전은 원래 극히 위험한 것인데도 어느새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절대안전 신화에 너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직시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내부고발자가 보호받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일곱째,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해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하타무라 정부조사위원장이 1999년 일본의 핵처리회사인 JCO임계사고 조사차 일본 기술자들을 인터뷰한 미국 정부 조사단원에게 들은 얘기로 일본 원전기술자 가운데 한사람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술자가 자신의 생각을 외부를 향해서 발언가능한 정부가 아니면, 원자력을 다룰 자격이 없다고 미국 기술자가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는 매사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가능한 개인을 길러내고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고예방 또는 대체에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체르노빌원전사고를 보고도 당시 일본 원전 당국은 남의 일로 봤다.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우리나라 원전 당국과 기술자들도 한결같이 “우리나라와 일본은 다르다”고 강조해왔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 후보간 ‘탈원전 대 탈원전 반대’가 뚜렸했고, 특히 제1야당 후보의 ‘원전 맹신’은 심히 우려된다. 후쿠시마참사 11년을 맞으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원전 안전신화’에서 깨어나 실질적인 사고(事故) 가능성을 예상하고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비무환, 무비유환임을 잊어선 안 된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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