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3) 싸움을 피하는 새들의 지혜-공생(共生)
김 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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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10:57 | 최종 수정 2022.01.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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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까치, 독수리와 까마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대부분 독수리의 멋진 패배로 끝난다고 한다. 생태사진을 많이 촬영해온 김연수 문화일보 전 기자가 강원도 철원 토교저수지 앞에서 해마다 겨울이면 벌어지는 새들의 전쟁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독수리에 비해 3~5분의 1도 안 되는 텃새인 까치나 까마귀가 새들의 황제인 철새 독수리와 먹이싸움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까치나 까마귀는 서너 마리씩 집단으로 죽은 청둥오리나 쇠기러기 사체에 접근하는 독수리를 주로 등 뒤에서 꼬리나 날개를 공격한다. 결국 이 녀석들의 등쌀에 못이긴 독수리가 달아나는 모습을 자주 본다는 것이다.
흔히 야생동물의 세계에선 약육강식이 지배 원리라고 알고 있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냉엄한 생존경쟁의 현실. 인간 세상도 한평생 경쟁의 연속이다. 한 자리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야생동물의 세계라고 해도 생존투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크기나 같은 습성을 지닌 새끼리 같은 먹이나 번식 장소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살지만 먹이가 다르면 싸움을 할 일이 거의 없다. 맹금류인 왕새매와 참매가 그렇다. 왕새매는 논의 개구리나 뱀, 곤충 등을 잡아먹는 데 비해, 참매는 비둘기나 꿩 등을 주로 먹기에 서로는 먹이싸움을 하지 않는다. 같은 맹금류인 벌매나 솔개도 같은 동네 산에 나란히 사는데 벌매는 땅말벌 유충을 좋아하고, 솔개는 동물 사체를 먹기에 공존이 가능하다. 이는 어쩌면 태생에 따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새 중에는 같은 장소를 쓰지만 장소나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함으로써 서로의 경쟁을 피하기도 한다. 같은 숲에 살면서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 삼광조와 나무줄기에 붙어있는 갑충류 유충을 먹는 쇠딱따구리는 서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삼광조는 가는 나무줄기 끝 평지에 둥지를 짓고 살고, 쇠딱따구리는 나무줄기 안에 구멍을 뚫어 집을 지어 산다. 말똥가리와 올빼미는 서로 크기도 비슷하고 쥐새끼 등을 잡아먹는 등 먹이도 거의 같지만 서로 먹이 싸움을 하지 않는다. 활동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둥지도 말똥가리는 나무 위에, 올빼미는 움푹 패인 나무 속에 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물학 용어로는 ‘분서(分棲)’ 즉 서식지 분리라고 한다.
한편 다른 동식물과 잘 공존하는 새들도 많다. 가끔 목장의 소 등 위에 황로가 앉아 있는 사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황로는 소 등 위에 있으면서 땅 위 외적의 습격을 받을 염려가 없고, 땅에 있는 먹이를 발견하기에 편하다. 소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는 없다. 성질 좋은 소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가끔 미국의 초원 한가운데서 들소의 등 위에 머무는 작은 새를 본 기억도 있다. 이 새는 들소 등 위의 벌레들을 잡아먹는 대신 사자 등 맹수가 접근하는 것을 미리 알려준다.
봄이 되면 동박새, 찌르레기, 직박구리 같은 새들은 부지런히 동백꽃 등 꽃나무를 오가며 꿀을 취한다. 대신 동백꽃은 이들에게 꽃가루를 붙여 생명을 퍼트린다. 녹황색에 흰색 눈테가 있는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꽃가루를 날라주는 ‘조매(鳥媒)’ 역할을 한다.
소와 왜가리와의 관계는 ‘편리공생’, 들소와 작은 새, 동박새와 동백꽃과의 관계는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방적인 이익만 취하고 한편에게 손해를 끼치게 하는 것이 ‘기생’이다. 모두 생물학 교재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 세상도 점점 정글과 같은 경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레드오션 시장의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오력’을 강요하기보다는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 또는 이 둘을 조합한 새로운 가치의 시장인 퍼플오션(Purple Ocean)의 틈새시장을 개척해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갖게 하는 게 절실하다. 정치판도 ‘추잡한 경쟁’이나 ‘기생충 사고’에서 벗어나 ‘공생 관계’ ‘조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싸움을 피하든 새로운 영역을 만들든 어쨋든 동물로부터 공존공생의 지혜를 배워야겠다.
<경성대 황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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