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2) 침팬지의 정치학
김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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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20:57 | 최종 수정 2022.01.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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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도 여지없이 뉴스의 톱을 장식하는 것은 코로나19와 더불어 정치 이야기다. 특히 오는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2달도 채 남지 않았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비호감이 높은 가운데 당초 높았던 제1야당 후보의 지지율이 연말연시 여당 후보의 지지율에 역전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마타도어, 인신공격, 침소봉대, 포플리즘이 난무한다. 자당 후보에게 “연기를 잘해 줄 것”을 공공연히 주문했던 제1야당의 총괄선대위원장은 최근 후보와 결별했다.
또 다른 야당의 한 후보는 제1야당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힘입어 지지율이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 정권교체냐 정권안정이냐?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지금의 정치이다. 정치판은 포커판이요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국민의 눈에는 ‘포커페이스’로 보이는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동물들도 소위 ‘정치’를 한다고 한다. 그 세계도 정적에 대해 정치적 음모를 꾸미고 마키아벨리즘의 권모술수가 있다는 말이다. 프란스 드발(Frans de Waal) 박사가 지난 1982년에 펴낸 『Chimpanzee Politics(침팬지 정치학)』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스티븐 하트 박사의 『동물의 언어』(김영사, 1996)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드발 박사는 네덜란드 아르넴의 부르제스 동물원에서 대규모 침팬지 집단을 연구한 결과 침팬지가 계산된 속임수를 쓰는 듯이 보이는 여러 행동을 관찰한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이에른이란 침팬지가 니키라는 침팬지와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한 결과 이에른은 니키가 볼 때만 절뚝거렸다는 것이다.
또한 푸이스트라는 침팬지는 화해의 제스처를 가지고 속임수를 썼다. 그 놈은 싸움에서 궁지에 몰리면 싸움을 멈추고 팔을 천천히 앞으로 내민다. 상대방이 그 화해의 제스처에 답하려고 하면, 푸이스트는 갑자기 상대방을 붙잡고 다시 공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에게 먹이를 달라고 할 때 곧잘 손을 내미는데, 지지를 호소할 때도 이와 똑같은 동작을 하는 등 상당히 유연성을 가진 의사소통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궁리, 2007)에선 더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이 책은 드발 박사가 힘센 침팬지 수놈 세 마리를 자세히 관찰해본 결과 가장 힘이 세 보이는 놈이 다른 두 수컷의 움직임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방심하자 어느 날 그 둘이 동맹을 맺어 한꺼번에 쳐들어오는 바람에 거꾸러져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그 놈이 다음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권좌를 탈환하고, 다시 찾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탐탁치는 않지만 자신을 공격했던 수컷 한 놈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더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세 마리 수컷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 뒤에는 암컷이 ‘배후조종’을 하는듯한 면도 있었다고 한다. 드발 박사는 수컷이 침팬지 사회를 주도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수컷의 정치적 생명이 짧은데 비해 암컷은 상대적으로 오래 권력을 향유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라이프 세계의 야생동물』(1980)를 보면 침팬지들은 식사를 할 때도 차례가 있다고 한다. 가령 산더미 같은 그레이프푸르츠를 발견했을 경우, 제일 지위가 높은 수컷이 먼저 먹고 난 다음에 두 번째 신분의 수컷, 다음에 암컷 그리고 어린 침팬지 순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침팬지는 지위다툼, 동맹과의 연합, 기만행위, 화해의 모습을 보인다. 침팬지는 공유된 권력과 화해로부터 오는 이익을 이해하는 정치적인 동물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선거판이 더 달아오르면서 여야불문하고 후보 단일화 움직임을 비롯해 정치인들의 합종연횡이 횡행할 것이다. 만약 침팬지들이 이번 대선을 본다면 무엇을 배워갈까. 오는 3월 9일 대선 이후 승자와 패자 모두 진정 공감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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