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낙동강하구 일대는 새들의 천국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시베리아, 몽골 등지에서 큰고니, 큰기러기, 물오리들이 찾아왔고, 멀리 미국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민물도요도 이곳 하구를 찾아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낙동강하구가 계속 무분별하게 이용되면서 하구를 찾는 철새들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인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운영위원장 박중록)에 따르면 2004년 조사 이래 하구의 여름 대표 새인 쇠제비갈매기는 3000여 마리가 늘 찾아왔으나 지난해에는 200~300마리가 봄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을 뿐 하구에 둥지를 틀지 않았다. 연 평균 3000마리 넘게 찾아와 하구 갯벌을 하얗게 수놓던 겨울 대표 새인 큰고니도 5년 전부터는 1000마리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민물도요도 2000년대 초반 4000마리 정도 관찰되던 것이 근년에는 1500마리 정도로 줄어들었다. 철새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부산 낙동강하구의 자연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래도 낙동강하구는 여전히 ‘백조(고니)의 호수’이다. 전 세계에 부산만큼 고니가 많이 찾아오는 도시는 없다. 2007년 미국 피츠버그에 출장을 갔을 때 그 지역 체사피케만에 고니 30여 마리가 그해도 찾았다며 대서특필한 지역신문 기사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지난 2월 2일은 유엔이 국제기념일로 제정한 뒤 처음 맞는 ‘세계 습지의 날’이었다. 2월 2일의 2자는 두 마리의 고니를 연상케 한다. 낙동강하구는 지난해 10월 전후로 날아왔던 기러기, 고니 등 겨울철새들이 2월 접어들면서 조금씩 무리지어 북으로 떠난다. 새들의 장거리 이동은 죽음을 무릅쓴 모험이다. 이들은 어떻게 고향을 오갈까?
기러기, 고니, 두루미 등 큰 철새 떼는 주로 편대비행을 한다. 영어로 'V자'를 그리며 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역 V자’를 그린다. 한 마리의 ‘대장 기러기’가 앞에서 방향을 잡으면 나머지는 뒤에서 두 줄로 따라 간다. 이러한 철새들의 편대비행은 보기에 장관을 이루지만 실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체득한 지혜이다.
영국 런던대 제임스 어셔우드 교수(운동생물역학)는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기고한 논문에서 ‘큰 날개를 가진 새들이 날개 끝의 위치를 신중히 조절하고 날개 펄럭임을 일치시키는 이유는, 앞서가는 새가 만들어 내는 상승기류를 이용하고 비행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래서 편대로 나는 새를 바로 옆에서 보면, 뒤에 나는 새가 조금씩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럴 때 맨 앞에 선 선두는 별 도움을 받지 못한다. 정말 피곤한 자리이다. 그래서 철새들은 편대비행을 할 때 선두 자리를 바꾼다고 한다. 리더 혼자 앞서 무조건 끌어가는 대열이 아니다. 집단지도체제라고나 할까? 이렇게 편대비행을 하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비해 약 70%나 더 멀리 날 수 있다고 한다.
비행기의 편대도 1차 대전 때 철새의 V자 대열로 편대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철새의 비행을 보고 배운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생태학자 유진 오덤(Eugene Odum) 교수는 『생태학(Ecology)』에서 ‘철새는 체중의 27%에 이르는 지방 축적으로 약 950km를 무착륙으로 날고, 최고 2500km의 거리를 날 수 있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점보제트기의 경우 97t의 항공연료로 1만1000km를 한 번에 비행하지만 유류가 차지하는 중량은 비행기 전체 중량의 28%나 된다’고 했다. 현대 과학의 총아라고 하는 비행기도 결국 자연이 준 새의 신체 구조에는 못 미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철새의 장거리 여행 능력은 2009년 ‘얄비(YRBY)’로 유명한 큰뒷부리도요의 비행 기록으로 확인된 바 있다. 뉴질랜드에서 낙동강하구 간 약 1만km를 논스톱으로 날아온 것이다. 낙동강하구서 에너지를 보충해 알래스카까지 역시 6,000~7,000km를 논스톱으로 날아가고, 더 놀라운 것은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마친 뒤 뉴질랜드까지 약 8일에 거쳐 1만1,700km를 논스톱으로 날아 이동한 사실이 가락지, 위성추적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후 1만3,000km를 이동한 큰뒷부리도요도 나왔다고 한다.
셀마 라게론뢰프의 동화 ‘닐스의 신기한 모험’이나 캐롤 발라드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서처럼 철새들과 멋지게 한 번 하늘을 날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한편 이러한 기러기의 편대비행은 ‘도산(島山)사상’을 이어받은 사회단체 흥사단의 상징으로도 자리 잡고 있다. 선두 기러기의 지향과 헌신을 바탕으로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 협동적 공동체 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요즘같이 어려울 때 기러기, 고니처럼 V자 대열을 이루며 함께 날아가는 지혜가 아쉽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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